커피의 본능은 유혹,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 탈레랑의 "커피예찬"
이제 한국에서도 인스턴트 커피나 자판기 커피가 아닌 원두의 향을 즐기는 커피 애호가들이 제법 많아졌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사교장이던 동네 다방은 사라지고, 별다방(스타벅스)이니 콩다방(커피빈)이니 하는 원두커피 전문점이 전국을 장악했다. 언제부터인가 점심시간 시내를 돌아다니는 젊은 여성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테이크 아웃용 커피잔이 들려있고, 한때 인터넷에서는 스타벅스를 즐겨찾는 여성들을 속칭 '된장녀'라며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서두에 언급한 탈레랑의 '커피예찬'에서처럼 잘 만든 커피한잔에서 오는 만족감은 어떤 금전적 가치로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씁쓸한 듯 하면서도 구수하고 혀끝에서 전해지는 달콤함, 거기에 매혹적인 향기까지.. 세상의 어떤 기호식품이 이처럼 오묘한 기쁨을 줄 수 있으랴.
원두커피의 매력이 한국인들을 사로잡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영화속 주인공들이 즐기는 커피 한잔의 여유를 보며 갖는 동경의 시각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에 영화속 커피에 대한 묘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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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커피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상업모델은 단연 '스타벅스'다. 1999년 신촌 이대앞에 1호점이 생길 당시 필자는 캐나다에 살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 필자는 '어떤 영화'를 보며 국내에도 스타벅스가 곧 생길 것을 직감했다. 바로 [유브 갓 메일]이라는 작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같이 보이는 이 작품을 들여다 보면 꽤나 강력한 스타벅스 PPL용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유브 갓 메일]은 영화의 초반부터 뉴욕시 모퉁이의 한 스타벅스 매장을 비중 높은 공간적 배경으로 선점한다.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주인공 남녀는 모두 같은 스타벅스 매장을 애용하며 이들은 하루의 일과를 스타벅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처럼 뉴욕커의 일상을 따라하고픈 관객들의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강력하게 뽐뿌질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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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서는.. 단지 커피 한잔만이 아니라 자아까지 발견하게 된다'는 영화속 대사처럼 스타벅스의 커피는 왠지모르게 럭셔리한 느낌을 갖게 해주는 서구식 문화체험의 온상처럼 그려지고 있다. 사실 [유브 갓 메일]은 커피의 맛 보다는 커피라는 기호식품을 스타벅스라는 브랜드와 연결시켜 원두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에 대한 동경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뭐 덕분에 한국인들은 '모카 프라파치노 그랑드'같은 생소한 이름의 커피도 자연스럽게 시킬줄 아는 내공을 쌓게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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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브 갓 메일]이 스타벅스로 대변되는 커피 프랜차이즈의 매력을 부각시켰다면,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은 가정식 드립커피의 맛을 보여주는 영화다. '집에서 먹는 듯한 식사'를 모토로 운영되는 카모메 식당은 손님의 취향에 따라 주먹밥에서부터 계피롤, 커피까지 만들어주는 다용도(?) 식당이다.
식당 주인인 사치에가 어떤 손님이 알려준 비법으로 손수 커피를 내리는 장면은 마치 집에서 부인이 해주는 정성스런 드립커피의 진수를 보여주며, 비록 화면상이지만 커피 필터를 타고 내려오는 커피의 향긋한 향이 식당 전체에 풍기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다. 흥미롭게도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비법은 단지 원두에 손을 대고 '코피 루왁(Kopi Luwak)' 이라고 주문을 외운다는 것이다. 여기서 코피 루왁이란 희귀하고 접하기 힘든 초고가의 커피로서 1년에 전세계적으로 300kg 미만의 소량만 생산되며 가격은 1kg에 1000달러에 이른다는 세계 최고의 커피를 말한다. ⓒ Media Suits. All rights reserved.
그렇담 이 코피 루왁의 정체는 도대체 뭐길래 이리도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일까? 그 정체를 알고 싶다면 [버킷 리스트]를 보길 바란다. 암에 걸린 두 노인이 평생 해보고 싶었던 10가지 일을 하기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의 [버킷리스트]에서 주인공들은 코피 루왁의 실체를 통해 리스트에 올라있는 '눈물날 때까지 웃기'를 성취한다. 코피 루왁이란 인도네시아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한 응가속에 소화되지 않은 커피 알맹이를 가공해 만든 커피로서, 극중 백만장자인 잭 니콜슨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커피의 정체가 고양이의 응가에서 나왔다니 웃길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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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응급시 약용으로서 커피의 효과를 다룬 영화도 있다. 다코타 패닝과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트랩트]에서 패닝은 천식환자로 등장하는데, 호흡곤란이 올 경우에 커피 진하게 타서 먹이라는 장면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일본 추리 드라마 [갈릴레오]에서도 똑같은 설정이 나오는데 커피속의 카페인은 피를 순환시켜 기관지를 확장시킨다는 설명까지 친절하게 곁들여졌다. 평소에 커피 속 카페인이 해롭다고만 여겨온 선입견에 비추어 볼때 의외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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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커피를 영화속의 중요한 소품으로 다룬 영화들은 많이 있다. 그토록 영화속에 다양하게 묘사되는 커피를 보노라면 새삼 커피의 오묘한 매력에 더욱 빠져들게 되지 않겠는가. 날씨가 쌀쌀한 요즘 따뜻한 드립 커피와 함께 오후의 여유를 만끽해 보시는 건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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