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공연

하얀거탑 - 캐릭터의 매력,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최고의 드라마

페니웨이™ 2008. 1. 1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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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뉴하트]라는 드라마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메디컬 드라마의 새로운 면모를 작품으로 기대를 모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사실 처음 우려되었던 것처럼 러브러브 모드가 추가되면서 '병원연애물'로 전락해 초기와는 달리 시청자들의 원성이 자자한 편이다. 물론 시청률은 꽤 잘 나오고 있지만, 역시나 한국 드라마의 정형성을 넘어서는데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에 입각한 메디컬 드라마는 역시 [하얀거탑]일 수밖에 없다. 방영한지 꽤나 세월이 흘렀지만, 이 드라마에 대한 리뷰를 안 하고는 손이 근질근질해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결국 하루 월차를 내어서 24시간 폐인감상모드에 들어갔다. ㅡㅡ;;


1.[하얀거탑]의 프로페셔널리즘

[하얀거탑]은 말그대로 국립대학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한 본격 메디컬 드라마다. 같은 병원을 소재로 다룬 MBC의 [종합병원]이나 SBS의 [외과의사 봉달희] 등과는 분명한 차별성이 돋보이는 작품인 것이다. [하얀거탑]은 그 첫장면부터 손에 땀을 쥐게하는 수술 시퀀스로 시청자들의 정신을 사로잡는다. 곧이어 전개되는 일련의 과정들도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통속극과는 전혀 다르다.

이를테면 의사라는 신분, 병원이라는 조직이 여타의 다른 회사들과 무엇하나 다를바 없는 암투와 배신, 증오로 얼룩진 삶의 전쟁터라는 것을 냉정하리만치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은 특히나 그간 메디컬(을 표방한)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처럼 단지 동경의 대상일 뿐인 의료인들의 삶과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서, 처절하다 싶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권력싸움의 본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하얀거탑]이 지닌 가장 강력한 에너지임과 동시에 2007년 최고의 드라마로서 손꼽힐 만한 자격을 부여한다.

ⓒ 김종학 프로덕션/ MBC All rights reserved.


이는 [하얀거탑]의 주 연령층이 2,30대의 직장인들이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이제 사회생활에 적응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 (혹은 익혀가는) 이들은 자신들이 현재 겪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순과 비열한 현실들, 좀 더 심하게 표현해 더럽고 치사한 조직사회의 부조리가 [하얀거탑]을 통해 표현되고 있음에 열광했다. 퇴근길 직장인들의 화두는 한동안 [하얀거탑]의 암투과정이었으며, 심지어 드라마가 종결되고 나서도 한동안 후유증을 남겼다. [하얀거탑]은 그동안 한국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했던 드라마의 본질을 꿰뚫는 작품이었으며, 그래서 더욱 빛났던 작품이다. 다만 이러한 작품의 원작이 일본의 동명 드라마였다는게 못내 아쉽긴하지만 말이다.


2.철저히 배제된 연애관

언제부터인가 한국드라마는 온통 치정극과 불륜으로 얼룩진 남녀들의 사랑싸움으로 대변되었다. 서두에서 밝혔듯, [뉴하트]도 현실감 넘치는 메디컬 드라마의 한계를 넘지 못한채 멜로의 비중을 키우는 실수를 되풀이하고야 말았지만, 적어도 [하얀거탑]은 다르다. 송선미, 임성언, 김보경과 같은 매력 넘치는 여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음에도 이들이 맡은 역할은 남자들의 사랑타령이나 받아주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만약 [하얀거탑]이 철저히 한국적 드라마로 각색되었다면 이윤진(송선미 분)은 평소 흠모해왔던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유부남 최도영(이선균 분)과 그렇고 그런 썸씽이 한번쯤 터졌어야 했고, 민수정(임성언 분)과 강희재(김보경 분)는 장준혁(김명민 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머리끄댕이 잡고 뒹구는 액션 씨퀀스(?)를 보여주었어야 옳다.

ⓒ 김종학 프로덕션/ MBC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하얀거탑]은 철저히 그런 치정극을 배제했다. 물론 극중 장준혁이 아내를 놔두고 또다른 애인에게 순정을 바치는 도덕적 결함이 있는 인물이긴 하나, 어디까지나 이는 드라마의 "설정" 그 이상도 아니요, 이하도 아니다. 이로인해 극 전체의 리듬이 깨지거나 흔들리는 일이 결코 없다. [하얀거탑]은 원래의 의도대로 병원내 권력암투의 실상과 장준혁의 야심만만한 도전을 조명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훌륭히 마무리 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진짜 드라마다.


3.[하얀거탑]의 대결구도

어떤 이들은 말한다. [하얀거탑]은 장준혁과 최도영의 대결이라고. 즉, 소신파인 최도영과 야심가인 장준혁의 싸움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말은 잘못되었다 (라고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엄밀히 말해 대결구도로 보자면 이 작품은 장준혁과 이주완 과장의 싸움이다. 나머지 조연들은 이들이 벌이는 싸움에 이리붙었다 저리붙었다 하는 세력 균형의 도구일 뿐이다. 최도영과 장준혁은 스타일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 인물이기에 대비되는 효과가 두드러지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립관계로 보기엔 여러모로 무리가 있다.

ⓒ 김종학 프로덕션/ MBC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장준혁과 이주완 과장은 여러면에서 닮은 인물이다. 야심을 성취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면이라든가 심지어는 선후배의 인연도 저 버리는 면까지도 닮아있다. 서로가 닮아있기에 이들은 죽일 듯이 싸운다. 드라마가 끝나가기 직전에 가서야 이들은 암묵적인 화해에 들어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일 뿐이다. 그러기에 [하얀거탑]에서 최고의 극찬을 받은 김명민 만큼이나 이주완 역의 베테랑 배우 이정길의 연기가 돋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얀거탑]의 사실상 투톱은 김명민과 이정길이었다.


4.캐릭터의 매력

장준혁은 악역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이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모든 것을 이루었지만 더 높은 곳만을 향해 가려다가 결국 많은 적들을 만들고 그로인해 스스로를 파멸시킨다.그럼에도 그가 밉지 않은 것은 어딘지 모르게 성공만을 위해 비굴한짓도 서슴치 않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 장준혁이라는 인물 속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의 모습은 조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샐러리맨들의 모습이며, 그가 싸우는 대상들 역시 우리 모두가 원치는 않지만 부딪혀야 하는 모든 상황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렇기에 장준혁은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 김종학 프로덕션/ MBC All rights reserved.


그렇다면 최도영은 어떤가? 이 친구. 별로 맘에 들진 않는다. 엄밀히 말해 최도영은 이기주의자다. 장준혁과는 달리 드라마에서 절대선의 위치에 선 캐릭터라 할지라도, 그의 행동은 그저 고고하기만 할뿐 현실적이지는 않다. 어쩌면 최도영은 현실세계에 있어서 장준혁보다도 더 미움받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타협을 모르는 그의 고지식함과 신의마저 저 버리는 그의 결벽증적인 정의감은 어쩐지 나에게 있어 거북스럽게만 느껴진다. 자신만의 깨끗함을 위해 주변의 모든 사람을 저 버릴 수 있을만큼 냉정하며, 또 확고하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착해보이지만 현실에 있어서 진짜 무서운 인물은 장준혁이 아니라 최도형이 아닐까.

그밖에도 [하얀거탑]에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난다. 제자와의 불꽃튀는 대결을 펼치는 이주완 과장(이정길 분), 권모술수의 대가인 우용길 부원장(김창완 분), 청렴결백한 오경환 교수(변희봉 분), 킹메이커 민충신 원장(정한용 분),  인권운동가 이윤진(송선미 분) 등 개성넘치는 주조연들의 캐릭터는 [하얀거탑]을 더욱 생기있고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로 만들어 놓았다.


5.원작의 훌륭한 로컬라이징

앞에도 언급했듯이 [하얀거탑]은 일본의 2003년작 하얀 거탑 (白い巨塔)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을 플롯을 거의 그대로 들여왔다고는 하더라도, 몇배나 박진감 넘치는 구성, 원작보다 더 훌륭한 캐스팅으로 평가받은 리메이크로서 더더욱 칭찬받을 만하다. 이는 훌륭한 각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 드라마의 현주소에서 꽤 의미심장한 것으로서 필요하다면 다른 나라의 원작을 들여와 제대로 '로컬라이징'을 거친다면 제2의 창작물로서 더욱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제발 뻔하디뻔한 제벌 로맨스나 3,4각 관계의 불륜치정극은 그만둬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6.총평

2007년 최고의 드라마로서 [하얀거탑]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블록버스터 [태왕사신기], [로비스트] 등이 있지만 [하얀거탑]의 가공할 만한 구성의 탄탄함에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다소 급작스럽게 마무리되는 결말에 허탈함과 슬픔을 느낀 애청자들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하얀거탑]은 지루함없이 20부작을 이끌고 나갔다는 대단한 장점이 있는 작품이다. 두 번째 감상임에도 20시간을 한자리에 (화장실가는 시간과 야식시간 제외) 앉아 있게 만드는 몰입도는 근래 몇 년간 제작된 드라마중 단연 최고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장준혁의 이전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 "하얀거탑 비긴즈"가 나와줬으면 한다. 그의 성장부터 결혼, 강희재와의 인연 등 다루어져야 할 것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어이, 이 블로그에 계속 남아있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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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마린블루스 (ⓒ Kim's Siliconsing Co. LTD. All rights reserved.)





* [하얀거탑]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김종학 프로덕션/ MBC All rights reserved.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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