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는 감독 자신에게나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에게 있어서 성공의 발판을 마련해 준 잊지 못할 작품이다. 나중에 카메론 감독은 2편을 통해 자신의 놀랍도록 창조적인 작품을 '완벽하다'는 감탄이 나올만큼 치밀한 완성도를 자랑하며 완결시켰고, 속편에 대한 팬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나는 2편을 통해 할 이야기를 다 끝냈다'며 3편의 제의를 거절했다. (실제로 '감독판' [터미네이터 2]를 보면 내용상으로도 '터미네이터'가 완전히 끝났음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나단 모스토우가 연출한 [터미네이터 3]는 여러모로 애물단지같은 작품이 되고 말았다. 이미 원작자가 할말을 다 했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그래도 돈되는 프랜차이즈를 어떻게든 울궈먹으려는 제작자의 욕심과 무리임을 알면서도 한번이라도 더 터미네이터로 분장한 아놀드의 모습을 보고 싶은 팬들의 욕구가 끊임없이 후속편을 낳아가는 원동력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라 코너 연대기]는 [터미네이터 3]에서 느닷없이 죽은 것으로 설정된 존 코너의 어머니, 사라 코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종의 외전격인 TV시리즈 물이다. 정식방영이 아니라 파일럿 방송분만 공개된 상태라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일단 파일럿 방송을 통해 본 [사라 코너 연대기]에 대해 몇가지 기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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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코너 연대기]는 [터미네이터 2]와 [터미네이터 3]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아직 존 코너(토머스 데커 분)는 학생의 신분이며, '사이버다인' 폭파사건 이후 경찰의 수배를 받은채 어머니인 사라(레나 해디 분)와 함께 쫓기며 살고 있다. 또다시 터미네이터의 위협을 받게된 그들에게 새로운 조력자로서 여성형 터미네이터(섬머 글루 분)가 나타나 미래의 분기점이 될 2007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것을 제안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사라 코너 연대기]의 이같은 스토리는 [터미네이터]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이용한다는 면에서 상당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특히나 '시간여행'이라는 개념이 핵심인 이상,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이미 미래의 이야기로 공개되어 버린 [터미네이터 3]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런 부조화를 예상해가며 각본을 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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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배역으로 넘어가 볼까. 사실 [터미네이터]시리즈가 인기를 끈데에는 제임스 카메론의 훌륭한 연출력과 각본의 힘이 컸지만, 각 캐릭터를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제네거'라는 공식이 있듯이 말이다. 따라서 [사라 코너 연대기]에서 터미네이터 역을 아놀드가 아닌 다른 배우(오웨인 요만)가 맡았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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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빈약하다. (사진은 [사라 코너 연대기]에 등장하는 두 명의 터미네이터)
물론 '터미네이터'를 아놀드 이외의 배우가 맡은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터미네이터] 1편에서 카일의 회상장면에 등장하는 터미네이터는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아니라 프랑코 콜럼부라는 단역배우였다. 그럼에도 이처럼 '터미네이터=아놀드'로 연상되는 것은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카리스마가 터미네이터라는 캐릭터에 기막힐 정도로 잘 매칭되었다는 얘기다. 단지 근육질 배우일 뿐인 오웨인 요만의 등장은 그런면에서 무척 실망스럽다.
타이틀롤인 사라 코너는 어떠한가? [터미네이터]에서 [터미네이터 2]로의 가장 두드러진 변신은 바로 사라 코너를 연기한 린다 해밀턴의 몫이었다. 평범한 여성에서 미래의 지도자를 키워낼 여전사로 변화하는 이 캐릭터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터미네이터 3]에서 퇴출당하는 바램에 기존의 팬들에겐 엄청난 욕을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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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사라 코너 역할을 맡은 레나 해디는 의외로 적역이다. 영화 [300]을 통해 강인한 여왕의 이미지를 심어줬던 그녀로선 다소곳한 여성형의 캐릭터보다는 전사형의 캐릭터에 더 어울리는 배우다. 근육질(?)의 잘 단련된 몸매를 보여주었던 린다 해밀턴에 비해 다소 깡마른 외모처럼 보이긴 하나, [사라 코너 연대기]를 책임질 주인공으로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터미네이터 3]에서 닉 스탈이 출연하는 바램에 '원숭이 처럼 생긴 배우가 영화 다 망친다'는 혹평을 들었던 미래의 지도자 존 코너 역에는 [터미네이터 2]의 에드워드 펄롱과 닉 스탈의 이미지를 적절히 섞은듯한 외모의 토머스 데커가 출연한다. 하긴 펄롱과 스탈의 모습이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으니, 변해도 한참 변한 존 코너의 과도기적 모습을 찾기위해 제작진도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파일럿 방송으로만으로는 일단 만족할 만한 캐스팅이다.
[사라 코너 연대기]의 가장 독특한 역할을 맡고 있는 여성형 터미네이터(특이하게 이 터미네이터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카메론'이다) 역에는 [파이어 플라이], [세레니티]에서 액션연기를 무난히 소화해낸 섬머 글루가 등장한다. 다소 동안이면서 커다란 눈망울이 인상적인 이 배우는 향후 [사라 코너 연대기]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뭐니뭐니해도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대신해 존 코너를 구하기 위한 '수호자'로 온 캐릭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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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머 글로(아래)는 다소 순한 이미지다.
인물들의 설정외에도 [사라 코너 연대기]는 [터미네이터]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를 사용함으로 이 작품이 극장판 [터미네이터]와 별개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가령 오프닝의 고속도로 주행 장면이나 극중 카메론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살고 싶으면 나를 따라오시오 (Come with me if you wanna live)" 하는 대사는 [터미네이터] 1편에서 카일이 사라에게 했고, 2편에서는 정신병동에서 사라를 탈출시키면서 터미네이터가 한 대사를 반복한 것이다. (아마 I'll be back이라는 대사도 곧 쓰일듯)
이처럼 [사라 코너 연대기]는 기존의 [터미네이터] 팬들을 기쁘게 해 줄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다. 물론 바뀐 배우들의 모습에 적응이 안되는 부분도 있고, 더욱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줄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갈것인가에 따라 이 작품의 평가는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터미네이터'니까 갖게되는 기대감은 다른 드라마와는 분명히 다르다. 2008년부터 방영될 [사라 코너 연대기], 부디 성공적인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
김정대님의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인생과 작품세계 - [터미네이터]편 바로가기
김정대님의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인생과 작품세계 - [터미네이터 2]편 바로가기
* [사라 코너 연대기]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Fox Broadcasting company.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터미네이터 2 (© 1991 StudioCanal Image S.A. All rights reserved.), 터미네이터 3 (ⓒ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All rights reserved.)
- 이후 공개된 TV시리즈의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다른 여러명의 배우들이 터미네이터를 연기하고 있으나 리뷰가 작성된 시점인 파일럿 방송에서는 일단 오웨인 요만이 메인급 터미네이터로 등장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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