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들사이에 또다른 남녀가 끼어들어 3각, 4각의 애정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들 중 누군가는 부모와의 갈등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사랑은 한 사람의 불치병으로 인해 비극으로 치닫는다....' .
TV를 틀면 언제나 볼 수 있는 뻔한 내용의 드라마들. 이젠 하도봐서 지겨울 때도 되었건만, 이런 스토리를 골자로 한 드라마는 그동안 무수히 제작되어왔고, 앞으로도 제작되어질 것이다. 이제 관건은 극중의 대사라던가 주연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제작진의 연출감각이 드라마에 얼마나 잘 녹아있는가, 이런 것이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결정적인 요인들이 아닐까.
MBC에서 2002년 방영한 [네 멋대로 해라]역시 기존의 드라마가 가진 통속적인 러브스토리의 틀을 그대로 지닌 작품이라는 사실은 매우 의외의 경우라고 생각된다. 2002년 7~9월까지 20회에 걸쳐 방영한 이 중편드라마는 시청률 15%에 머문 평범한 드라마로 잊혀질 수도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방송이 종영되자 이 독특한 드라마의 구성에 매료된 매니아들, '네멋폐인'이라고 자청하던 이들에 의해 시청률도 높지 않은 이 작품은 단숨에 한국 전역을 뒤흔든 '네멋 신드롬'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 MBC/ Bitwin. All rights reserved.
이토록 열광적인 매니아들의 반응은 '네멋30'등의 카페가 설립되면서 급속도로 번져 나갔고, 비트윈에서 제작한 DVD는 드라마라는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어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는가 하면, 드라마의 촬영장소가 매니아들의 순례지로 변하는 등, 드라마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거머쥔 금세기 최고의 한국 드라마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럼 이 작품이 그토록 대단한 반응을 , 그것도 종영 이후에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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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인생을 가치있게 여기지 않은 한 청년이 소매치기로 인생을 낭비하던 중, 계층과 학벌이 다른 한 여자를 만난다. 여자의 이름은 전경(이나영 분), 남자의 이름은 고복수(양동근 분). 그리고 이들에게는 각기 사귀는 사람이 있다. 전경은 부잣집 댄디보이 한동진기자(이동건 분)를 만나고 있고, 고복수에겐 일편단심 치어리더 송미래(공효진 분)가 있다. 그들의 애정전선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다.
그러나 전경과 고복수가 처음엔 달갑지 않은 인연으로 맺어지게 될 때쯤 복수는 뇌종양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이제 그에게 있어 남은 삶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인 셈이다. 하루 아니 일분 일초가 그에게는 10년과도 같은 값진 순간들이다.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는 복수에게 가족과 이웃, 세상, 그리고 사랑의 의미는 그가 소매치기로 살아왔던 시간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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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복수는 변화한다. 그리고 이 세상 무엇을 바치더라도 아깝지 않은 사랑을 찾았다. 남은건 자신의 얼마남지 않은 인생을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이다. 복수에겐 시한부 인생의 선고가 삶의 끝이 아닌 시작의 전환점이 되었다. 전경과 복수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들의 사랑에 있어 어떠한 방해가 될지라도 그들은 결심한다. ' 내 멋대로' 하겠노라고!
스토리만 봐서는 자칫 신파조로 흐를 수 있는 소재임에도, 주인공 고복수를 연기하는 양동근의 모습에선 삶의 생기가 넘쳐흐른다. 그에게선 즐거움의 에너지가 발산되며, 긍정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몸소 보여주는 캐릭터다. 소매치기라는 밑바닥 인생이지만 그에게는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착한 마음이 들어 있으며, 누구보다 순수하고 열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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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은 어떠한가? 이나영이라는 배우를 빼놓고는 생각하기 힘든 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아버지의 반대속에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고수하며, 심지어 소매치기였던 사람을, 그때문에 자신의 절친한 친구가 죽었음에도 연인으로 받아들인다. 복수에게 미래라는 애인이 있음에도 복수가 양다리를 걸치는 것에 마다하지 않는 당돌함도 가지고 있다. 기존의 드라마가 비교적 열녀형, 범생형, 청순가련형 이미지의 여주인공을 선호했다면 전경은 그러한 상식을 과감히 깨는 캐릭터다. 어떤면에서는 이 드라마의 제목인 '네 멋대로 해라'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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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의 리얼하고도 사랑스런 연기도 물론 훌륭하지만 주변인물을 연기한 연기자들의 공로도 만만치 않다. 연기의 진정한 내공을 보여주고 있는 신구 아저씨는 고복수의 아버지 역할로서 부성애를 가진 홀 어버이의 모습을 정말 가슴벅찬 감동으로 그려냈다. 복수에게 실연의 아픔을 겪는 송미래 역의 공효진은 어떠한가? 특유의 거친 말투와 터프함을 지닌 생활력 강한 인물이지만 자신의 연인을 빼앗아간 전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미워하지 못하는 여린 마음과 의리를 가진 멋진 캐릭터가 아니었던가. 그 밖에도 이동건, 이세창, 윤여정 등의 연기 또한 작품내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에서야 다행이라고 느끼는 부분이지만 애초의 기획처럼 고복수 역에 차태현이, 전경역에 송혜교가 캐스팅되었더라면 지금같은 명작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까? 결과야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 만큼은 확실하다.
이 드라마로서 양동근과 이나영은 탤런트가 아닌, 영화배우로서의 주가가 급등했다는 사실이다. 이나영이 '네멋' 이전에 발표한 [후아유]란 영화는 드라마의 방영후 팬들에 의해 재평가받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며, 양동근 역시 [와일드 카드]라는 영화로 비슷한 개봉한 최고의 화제작 [살인의 추억]과 맞붙었음에도 좋은 평가를 받는 등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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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너죽고 나죽어~'식의 추한 애증관계를 드러낸 통속드라마의 성향으로 비추어 볼 때 이 작품은 매우 젊잖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인을 빼앗긴 한기자와 송미래는 쿨한 자세로 자신의 옛 연인에게 새로운 사람과의 행복을 바라며 좋은 관계로 남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전직 소매치기를 연인으로 택한 전경의 가족들도 그녀의 선택 (비록 그들이 그 내막을 모르긴 해도)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꼴사나운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역시 이 드라마가 지닌 미덕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이색적이다. 비록 고복수를 괴롭히는 역할로 박정달이라는 형사가 등장하긴 하나, 이 역시 나쁜 캐릭터로서가 아닌, 단지 복수와의 갈등관계에 놓인 인물로서만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의 악인은 이 드라마 상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멜로극을 가장한 일종의 판타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분의 귀천도 문제되지 않고, 모두가 적대적인 감정없이 살 수 있는 현실세계에선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이 말도 일리는 있다.
[네 멋대로 해라]는 분명 한국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음과 동시에, 한단계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킨 작품임에 분명하다. 이 후 공중파를 탄 드라마들, 이를테면 [발리에서 생긴 일], [다모], [미안하다, 사랑한다], [아일랜드] 등이 기존 드라마의 상투성을 깬 드라마로서 호응을 얻었던 것을 보면 [네 멋대로 해라]의 영향력은 앞으로 제작될 수많은 드라마들이 넘어야 할 하나의 기준점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아직 [네 멋대로 해라]를 감상하지 못한 분들, '네멋폐인' 세계로 초대하는 바이다.
* [네 멋대로 해라]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MBC/ Bitwin.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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