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이름도 모르는 영화관련 상이 많다는건 익히 알고 있다. 이 조그만 나라에 뭔 영화제 상이 그리도 많은건지.... 웃기는건 공신력을 제대로 갖춘 상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는게 더 문제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상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이다. 대종상이야 후보에 오른 영화인들이 절반가량 불참해 한사람이 여러명의 트로피를 대리수상을 하는 촌극까지 벌어지는 영화제로 전락했지만, 그래도 청룡영화상은 국내에게 나름 제대로 된 영화제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말이다.
어제 오래간만에 일찍 퇴근해 집에 돌아와보니, 우중에도 불구하고 남산 자락밑에서 불꽃놀이가 펑펑 터진다. 가만 생각해보니 국립극장에서 청룡영화상이 열리는 날이다. 밥을 먹고 TV를 켜니 이미 시상식이 시작했고, 때마침 예년과는 달리 얌전한(?) 드레스를 입은 김혜수와 정준호가 다음 코너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베스트 드레서상.
전세계 이런 시상코너가 있는 영화제가 또 있을까? 심히 의심스럽다. 뭐 그러겠거니 싶어 보고 있는데, 한명도 아니고 5명의 여배우가 주루룩 불려나간다. 한명씩 불려갈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옆에는 부모님이 앉아계시는데, 서른넘은 내가 다 낯이 뜨거워진다. 마지막 박모양이 거명되고 상단에 오르는 순간, 이미 민망함은 도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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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영화제 시상식인가? 아님 패션쇼인가? 여배우들은 영화를 이끄는 배우인가? 단지 뭇 남성 팬들의 음흉한 눈요기를 위한 상품인가? 노출의 수위는 저들이 자발적으로 정한 것인가? 기획사가 의도적으로 지시한 것인가? 오만가지 잡생각이 머리를 뒤 흔들다 못해 결국 리모컨을 들어 TV를 끄고 말았다.
오늘 아침 역시나 각 포털은 절반쯤 가슴을 드러낸 여배우들의 사진을 메인에 장식하며, 아름답네 어쩌네 가식적인 멘트를 덧붙여 놓았다. 저게 진정 아름다운 것인가? 그렇게 아름답다면 왜 일반 여성들을 평상시 저렇게 드러내놓고 다니지 않는것인가? 옷이 비싸기 때문에? 허허.. 그건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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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드레스의 디자인이나 제질이 좋아서, 또는 여배우의 특성과 잘 어울려서 이쁘다고 말한다면 이해가 간다. 이건 누가봐도 헐벗고 굶주린 옷차림인데, 그걸보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건 과연 뭐냔 말이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영화제의 화두가 어떤 영화의 수상결과가 아닌 여배우들의 노출수위에 맞춰져 있는 것이 정상적인 현상이란 말인가?
헐리우드 배우들의 노출수위에 맞춰 야시꾸리한 옷을 입는 그것을 국제화 현상이라고 되도않는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배우라는 직업은 연기가 우선이어야지 노출이 우선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제 국내에는 인정할 만한 영화제가 단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잡다한 상들 모조리 없애고 차라리 하나로 통합했으면 한다. 그래서 여배우들의 패션쇼로 전락한 영화제의 품위를 좀 살리는 노력부터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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