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로보트 군단과 메카3 - 한국판 슈퍼로봇대전의 내막

페니웨이™ 2007. 11. 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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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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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려오는 슬픈 얘기를 하나 들려드릴까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어렸을 때 반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그 소년이 살던 곳은 서울 능동의 어린이회관에서 가까운 동네였는데, 여름방학이면 아이들이 어린이회관내의 '무지개극장'에서 상영하는 만화영화를 보고 가곤 했기 때문입니다. 근데 어찌된 일인지, 소년의 부모님은 단 한번도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화영화를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덕분에 그 소년은 친구들이 보고온 만화영화에 대해 열을 올리며 얘기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봐야 했지요. 아~ 얘기만 들어도 슬퍼지지 않습니까? ㅠㅠ

네, 그 소년이 바로 접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가장 기대했던 것 중에 하나는 1년에 한번 있는 어린이날, 'TV에서 무슨 만화영화를 해주나'였습니다. 그래도 TV에서나마 놓치지 않고 꼬박꼬박 본 덕택에 80년대를 주름잡던 웬만한 한국 애니메이션은 거의 다 섭렵했지만요. 뭐니뭐니해도, 김청기 감독의 작품들은 사내아이들에게 있어선 최고의 연예뉴스이자 로망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표절이니 어쩌니 말들이 많지만 적어도 그 시절에 있어서 그런것따윈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초등학교 사내 아이들에게 최고의 방학선물이었던 극장 애니메이션들.


그러나 그 시절의 어린마음에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로보트 군단과 메카3]입니다. [똘이와 제타 로보트]와 함께 198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사실상 김청기 감독의 마지막 셀 애니메이션으로서 개봉당시 어린이들 사이에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요, 그 이유는 '김청기 월드'(사실 그런건 없습니다만 편의상 그렇게 부릅시다 ㅡㅡ;;)의 모든 로봇이 출연하는 일종의 '슈퍼로봇대전'이라는 것과 이 작품이 [로보트 태권브이]의 스핀오프였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뭐라고라고라~ 태권브이 라고라? 그렇습니다. [로보트 군단과 메카3]는 김청기 감독의 분신인 태권브이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84 태권브이]의 짜릿한 컴백을 지켜봤던 어린이들에게는 최고의 방학선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Toei(東映) Animation 外

우린 이런걸 원했단 말이다!


물론 저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극장엘 못갔으므로.. ㅠㅠ) 이 작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때 느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로보트 군단과 메카3]를 접한 아이들은 이 작품의 자세한 내막도 모른채 마냥 즐거워 했으며, 자랑삼아 떠들고 다녔습니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저의 마음은 내심 부러움으로 가득했지요. 이때만하더라도 이 작품이 아이들의 순진한 동심을 마음껏 유린한 "괴작"이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 서울동화 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아이디어 하나는 높이 살만하다만...


그런데 왜 제가 나중에 이 작품을 접하고 분노하였느냐? 이제 그 이유를 살펴봅시다. 제목에서 알려주듯 '로보트 군단'은 김청기 감독의 작품속 메카닉이 다수 출연한다는 점에서 틀린말은 아닙니다. [혹성로보트 썬더A], [초합금 로보트 쏠라 123], [스페이스 간담 브이]가 모두 출연하긴 합니다. 문제는 이들 로봇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새로 그린 것이 아니라 기존에 만들어진 필름을 그대로 짜집기하는 '개념탈출'의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 서울동화 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이미 죽은 악당이 또나와?  ㅡㅡ ;;


우주에서 온 침략자에 대항하고자 박사들이 모여 로봇 군단을 조직한다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각 로봇은 '군단'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함께 손을 맞붙잡고 적에게 대항하기가 부끄러워서일까요? 아닙니다. 모든 필름을 이전의 작품들에서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옛날에 이미 싸웠던 적들과 또 싸우는 웃지 못할 촌극이 연출되고 마는 것입니다.

ⓒ 서울동화 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주인공들이 단 한번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사실 ㅡㅡ;;;;


더군다나 '태권브이'의 후예임을 자청하는 윤박사의 야심작. '메카3'는 어떻습니까? 태권브이를 대신해 지구를 수호할 진짜 주인공은 작품의 끝부분에 가서야 비로서 등장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부분만큼은 신작화를 집어넣었지만, 작품속에서 유일하게 연합전선을 펴는 썬더A와의 손발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게 문제입니다. 한동안 신나게 메카3에게 얻어맞던 악당로봇이 일순간 장면이 바뀌면 다시 썬더A를 두들겨 패고 있질 않나.. 아놔~ ㅠㅠ


이런 혼란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클라이막스에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얼마 되지도 않는 신작화 중에 메카3와 악당로봇이 1:1 대결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몇초만에 휘리릭~ 지나갑니다. 제 눈에는 분명 작화를 어떻게든 덜 그릴려고 잽싸게 처리한 부분임이 역력한데, 그 당시 제 친구들은 이 장면을 두고 이런 평가를 내리더군요 "메카3의 스피디한 움직임에 완전 반했다!" ㅡㅡ;;;

ⓒ 서울동화 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이 장면. 말 그대로 휙~ 지나가는 짧은 장면으로 되도록 작화를 덜 넣으려는 티가 역력하다.


중요한건 초반의 훈과 깡통로봇 철이가 등장하는 부분, 달기지의 습격장면은 모두 [슈퍼 태권브이]에서 가져 왔고, 그외의 90%이상이 기존 작품들에서 짜집기한 이 엄청난 괴작을 두고 그 당시 어린이들은 대단한 기쁨의 희열을 느꼈다는 겁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저는 그 순수한 동심에 끼어들지 못하고 분노를 삭여야 했지만요.

그나마 '메카3'의 디자인은 [트랜스포머]의 전신인 [다이아크론]의 '트리플 체인저'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디자인을 어찌나 노골적으로 베껴놨는지, [퍼스트 건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썬더A'나 [마크로스]의 '발키리'를 카피한 '간담브이'는 약과더군요. 물론 이 시기의 제작환경이 프라모델 업체의 수출용 재고 처분과 맞물려 있었기에, 디자인의 표절은 불가분의 관계였다고 하더라도. 정말이지 [로보트 군단과 메카3]만큼은 잊고 싶은 기억입니다.

Diaclone by ⓒ Takara Toys. All Rights Reserved.

메카닉 디자인도 일본의 [다이아크론]에서 그대로 베껴왔다.


모든 것을 한때의 추억으로 끝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이것이 한국 애니메이션사의 산 기록이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김청기 감독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게 되었는지, 왜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계보가 끊기게 되었는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 원인의 중심에 섰던 분들이라면 지금이라도 과오를 반성하고 발벗고 나서서 한국 애니메이션 부활의 움직임에 불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요? 온통 짜집기한 누더기 작품으로 아이들의 코묻은 돈을 받으면서까지 잇속을 차리려고 했던 배후의 그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김청기 감독이 모든 비난을 뒤집어 쓰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 [로보트 군단과 메카3]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서울동화 프로덕션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다이아크론 (ⓒ Takara Toys. All Rights Reserved.), 슈퍼로봇들 그림 (ⓒ Toei(東映) Animation 外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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