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집에 VCR 기기가 4대 있다. 뭐랄까... 이렇게 없는 집 살림에 많은 기기를 들여놓게 된 이유는 사실 [카우보이 비밥]의 에피소드 18화 '10년 후의 나에게'가 큰 영향을 주었는데, 해당 에피소드에서 베타맥스와 VHS의 규격차이를 모르는 주인공들이 재생기기를 찾아 개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렇게 구시대의 기기들을 구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겠다...는 뻘생각이 듦과 동시에 예비용 기기를 확보해두려는 욕심이 결합해서 그런 것이다.
여튼 그래서 집에는 LG의 구형 VHS전용 기기 한대와 슬슬 맛이 가려고 하는 소니 VHS전용 기기, 그리고 삼성에서 나온 DVD-VHS 콤보 2대가 있다. 요즘 주력으로 사용하는 녀석이 아래의 기기인데, 아마도 VHS에서 DVD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에 많이 팔렸던 제품이라 생각된다.
잠시 잡담을 좀 더 하자면, 만약 당신이 레트로 문화에 관심이 생겨서 VCR를 한 대 놓고 싶다면, 그냥 콤보 제품으로 가라고 권하고 싶다. 그 이유는 나중에 가서 한 번 더 말하겠지만 나중에 나온 가전일 수록 상대적으로 수리하기가 편하고, 스펙이 높아서 음성이나 화면 출력시에 확실히 구형보다는 더 좋은 결과물을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같은 비디오테잎이라 하더라도 어떤 기기로 출력했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완전히 다를 정도로 아날로그 방식의 기록물은 기기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최근에 만든 기기일 수록 화질이나 음질 보정 기능이 있고, 헤드 드럼의 구동방식이나 헤드의 숫자, 그리고 내구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있어서 하나 잘 굴리면 꽤 오래 즐길 수 있다. 아, 또 한가지 DVD-VHS 콤보의 장점 중 하나는 굳이 인코딩 기계가 없더라도 DVD로 변환이 가능해 아날로그 -> 디지털로의 저장이 초보자들에게도 쉽다는 것이다. (아, 이건 보급형 기기에는 없는 기능이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아직 중고장터에서는 DVD-VHS 콤보를 구입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심지어 미개봉 제품도 본 적 있는..) 그만큼 입수 난이도 자체는 낮은 제품이라 할 수 있는데, 문제는 특이하게도 VHS 구동은 정상인데, DVD 구동이 고장인 제품들이 많다는 점이다. 좀 이상하네... VHS쪽이 더 잘 고장나야 하는게 맞지 않나?
대체적으로 DVD와 같은 광학매체 기기들은 고장이 나기 쉬운데, 일단 픽업 자체가 소모품이라 이게 나가면 답이 없다. 대표적으로 DVD가 안 읽혀요... 이러면 그건 포기하시길.
그러나 가장 많은 증상이 바로 트레이가 안튀어나오는 증상이다. 이것땜에 중고시장의 판매자들이 "DVD는 고장입니다" 라고 내놓는 경우가 허다하며, 심지어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잘 되던 트레이가 안튀어나오는 증상을 겪게 된다.
필자도 두대의 콤보 중 한 대가 이미 그런 증상이 튀어 나왔고, 나머지 한 대도 되다 안되다 하는 증상이 있길래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사설 수리점을 알아보니 뭔 말하는 고장 원인이 천차만별이다. 모터가 나갔으니 갈아야 한다, 픽업이 나갔다(응? 픽업이 나갔는데 왜 트레이가 안 튀어나오....), 보드를 갈아야 한다 등등...
근데 사실 이런 사소한 고장들은 증상이 증상이니 만큼 수리가 간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본 결과, 결론적으로는 트레이를 구동시키는 모터와 트레이를 연결시켜주는 고무줄의 노화로 발생하는 문제란다. 그래서 일단 잽싸게 주문을 넣었다. 어떤 사이즈가 맞을지는 "니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해봤어" 모드로...
이제 수리를 시작해 보자.
분해는 옛날 기기 답게 무척 심플하다. 뒷면의 나사 3개만 풀어주면 뚜따가 된다. 이후 왼편에는 DVD 유닛이, 오른편에는 VHS 유닛이 드러난다. 흥미롭게도 VHS쪽 파트를 보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는 것이, 옛날 내가 금성사의 VHS를 분해해 자가수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되게 복잡한 느낌이었는데, 지금 보니 구동부도 단촐하고 무엇보다 고무줄로 링크된 파트가 전혀 없어서, 이래서 VHS 쪽은 고장이 잘 안나는구나 싶었다.
여튼 문제는 DVD 파트니까 왼쪽을 보자. 저기 검은 플라스틱으로 된 부분이 중요한 픽업을 보호하는 커버다. 옆에 결찰된 부위를 간단히 제껴주면 떨어진다.
그럼 픽업이 드러나고, 트레이가 왔다갔다 하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트레이의 빈 공간을 통해 트레이와 구동 모터의 레일기어를 연결하는 고무줄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걸 조심스럽게 빼내자.
빼낸 고무줄이다. 형태를 보면 알겠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고무줄의 탄성이 없어져서 저렇게 레일기어 연결부 모양대로 형태가 굳어져 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고무줄이 해당 레일기어를 돌릴 수 있는 마찰력과 탄성이 없기 때문에 기어가 헛돌게 되며 그것이 결국 트레이를 튀어나오게 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대략 빼낸 고무줄 보다 좀 더 작은 사이즈의 새 고무줄을 준비하자. 이걸 해당 위치에 교체해 넣으면 간단히 해결된다.
구동시켜보니 완벽.
이렇게 단돈 천원 남짓으로 장비를 고쳤다. 남아있는 고무줄이 한 다발이라 평생...은 못써도 이 짓거리를 취미로 하지 않을때까지는 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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