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진 것 처럼 영화 [알리타]는 유키토 키시로의 만화 [총몽]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일찍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이러 저러한 사정에 의해 결국 손을 놔 버린 작품이기도 하지요. 결국 [알리타]의 감독으로 낙점된 건 역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씬시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즈 입니다.
일단 여기서 궁금한 점은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제임스 카메론이 과연 [알리타]에 어느 정도나 지분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각본에 제임스 카메론이 들어가 있고 쇼케이스 영상에서 본인 스스로가 밝혔듯이 카메론은 [알리타]의 주요 스크립트를 이미 완성해 놓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로드리게즈가 다듬으면서 최종 컨펌 역시 카메론에 의해 이루어 졌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인 것이죠. 따라서 [알리타]는 ‘어느 정도’ 제임스 카메론의 작품인 셈입니다.
그간 헐리우드에서 일본 만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는 [알리타]가 처음은 아닙니다. 그 유명한 [공각기동대]나 [데스노트], [드래곤볼] 같은 작품들은 헐리우드 자본으로 탄생한 작품들이지만 모두 그 완성도에 있어서 처참한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알리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확실히 제작 과정에서 알리타의 그 ‘커다란 눈’이 공개되었을 때만 해도 팬들의 반응은 굉장히 좋지 않았습니다. 일본 만화 특유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해 문자 그대로 외형을 해석한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지요. 물론 이 ‘눈 크기’에 대한 제작진의 선택은 영화 상에서 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만… (이 이질적인 눈 자체가 알리타라는 캐릭터에 대한 ‘모종의 인식’을 관객에게 주입하는 역할을 하거든요)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여튼 이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알리타]가 공개되었습니다. 북미지역 시사회 후 메타스코어의 성적은 굉장히 실망스러운 수준입니다. 이 때문에 관객들이 갖게 될 선입견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미리 영화를 재단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말하자면 [알리타]는 평론가들이 보는 관점과 일반 관객들이 보는 관점, 그리고 [총몽]의 팬들이 보는 관점이 각각 다를 수 밖에 없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단점은 편집의 문제. 흐름이 적잖이 끊긴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도 박사가 알리타를 고철더미에서 꺼내어 자신의 가게로 데려오는 초반부터 ‘툭’ 끊기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처럼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상당히 러프하게 이어져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는 이야기의 톤이 너무 급격하게 달라진다는 것이죠.
이해는 갑니다. 사실 [알리타]는 (이야기의 전개 상) 원작의 3권까지를 영화화시켰습니다. 원작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기까지 만해도 볼륨이 상당합니다. 여기에 원작의 주요 설정인 모터볼 시합까지 미리 땡겨서 삽입하는 바람에 영화의 분량은 더 늘어나게 되었죠. 즉, 러닝타임에 집어넣을 수 있는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알리타]가 레퍼런스로 삼은 건 원작 그 자체라기 보단 [총몽] OVA 애니메이션임이 분명합니다. 아무래도 축약의 기준점을 찾기 위해서는 원작 만화의 호흡보다는 OVA 쪽을 참조하는 편이 훨씬 더 수월했겠죠. 툭툭 끊어지는 호흡의 문제가 OVA에 기초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납득할만합니다.
아마도 제임스 카메론이 직접 연출을 했더라면 122분이 아니라 150분 이상의 러닝타임으로 끌고 갔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합니다. 그럼 영화는 더 길어지겠지만 대신 편집은 보다 유연해졌을 거라 봅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임스 카메론 버전의 [알리타]가 지금의 결과물보다 나을 거라는 보장은 할 수 없을 겁니다. 아까도 말했듯 이 작품은 카메론이 ‘이름만 올린’ 그런 영화들과는 달리 진짜로 카메론의 영화거든요.
여타의 헐리우드 영화가 원작의 맛을 거의 날려버린 반면, [알리타]는 원작의 리뉴얼을 훌륭하게 해 낸 편입니다. 주요 설정과 장면들을 아주 잘 처리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영화에 걸맞는 각색을 거쳤습니다. 캐릭터의 구축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도 박사의 경우는 조금 아쉬운 감이 있지만 대신에 휴고의 캐릭터는 좀 더 살아났습니다. 알리타는 말할 것도 없지요.
클리셰의 범벅이긴 해도, 진부하다는 느낌은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락영화로서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은 아주 풍부해요. 시각적인 부분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현재까지 2019년 개봉작 중에서는 단연 독보적입니다.
다소 들떠있는 서사를 감수한다면 [알리타]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 중 최고의 컨버전을 자랑하는 작품일 겁니다. 그만큼 오락성은 확실하며, 세트의 구성과 미장센 또한 매우 우수합니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쇄할 만한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얘기이지요.
영화가 클리프행어식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습니다만 솔직히 저는 영화가 잘 되어서 3부작의 ‘완성된’ [알리타]를 보고 싶습니다. 그 때가 되면 분명 [알리타]는 지금보다는 더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P.S:
1.12세 영화치고는 액션의 강도가 상당한 편입니다. 아마도 ‘기계 몸’으로 이루어진 캐릭터들이 많아서 이겠지만 심장 약한 분들은 어느 정도의 텐션은 감안하셔야 합니다.
2.이야기의 흑막인 노바 박사의 배우를 알게 되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3.제프 파헤이나 릭 윤 같은 배우들이 단역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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