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앤트맨]은 MCU의 세계관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입니다. 주인공의 태생부터가 [어벤져스] 계열의 구심점인 토니 스타크와는 대척점에 서 있기도 하지만요. 이를 계기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도 참전하긴 합니다만 정작 [어벤져스] 시리즈에는 한번도 참여한 적이 없지요.
속편인 [앤트맨과 와스프] 역시 [어벤져스]를 딱히 의식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전편에는 팰콘이라도 나왔지만 이번 작품에선 MCU의 그 어떤 캐릭터와도 크로스오버하지 않습니다. 이번 작품은 [시빌 워]의 사건 이후 가택연금 상태에 놓인 스콧 랭이 어쩌다보니 실종상태였던 1대 와스프, 반 다인 여사의 텔레파시를 받게 되면서 핌 부녀와 함께 1대 와스프 구출작전에 나선다는 완전히 독자적인 내용입니다.
미션 자체가 핌 부녀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머물다 보니, 이야기의 전체적인 규모는 앤트맨 마냥 작아진 느낌입니다. 빌런(들)의 존재감이나 위기 의식도 그리 크게 와 닿진 않지요. 사실 빌런조차도 그의 행동 목적이 매우 사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다 보니 지구의 명운을 걸었던 어벤져스 팀의 활동과는 사뭇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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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블 작품답게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잘 빠졌습니다. 지루할 틈 없이 촘촘하게 내러티브를 전개해 나가며 캐릭터의 매력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새로 합류한 미셸 파이퍼는 마이클 더글러스와 좋은 캐미를 보여줍니다. 확실히 이런 배우들의 아우라는 나이가 들었다 한들 시드는 법이 없지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로버트 레드포드와 더불어 명배우를 잘 살린 케이스입니다.
액션도 괜찮습니다. 사물을 통과하는 고스트와 크기를 자유자재로 줄였다 키웠다 할 수 있는 앤트맨-와스프의 합이 잘 맞아 떨어지는 액션을 선보입니다. 전편처럼 하이스트 무비의 성격을 잘 살려 주인공과 악당, 여기에 제3의 세력이 끼어들어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를 표현한 것도 흥미롭습니다. 다만 빌런의 사연이 조금 진부하다보니 그에 따른 긴장감도 결여되어 있고 극적인 맛이 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럽지만 [앤트맨과 와스프]에게서 루소 형제가 품었던 야심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듭니다. 무난함의 함정이라기엔 조금 지나친 감이 있지만 마블 작품들 중에서 [앤트맨]이 가장 미지근한 반응을 얻었던 걸 생각해 보면 역시나 이 시리즈에서 강한 한방이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캐릭터의 한계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P.S
1.[앤트맨과 와스프]를 관통하는 코드는 역시 유머입니다. 특히 말장난이 압권인데, 마이클 페나가 맡은 루이스가 유머의 8할 정도를 담당하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역시 이런 건 번역이 잘 살려야 하는데 그런 기대는 버리심이…
2.로렌스 피시번은 [맨 오브 스틸] 때도 그렇고 별로 인상적이질 않네요. [매트릭스]와 같은 인생 배역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걸까요.
3.쿠키가 두 개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왜 앤트맨이 등장하지 않는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아마 [어벤져스] 시리즈의 팬이라면 이 작품에서 건질 건 이거 하나 밖에 없다고 느낄 분도 꽤 있을 거에요.
4.대놓고 현대 PPL 천지입니다. 산타페와 벨로스터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량들을 실컷 보여줍니다. 이러다가 정말 아이언맨 눈이 코나로 오버랩되는 장면을 MCU에서 볼 수 있는 건 아니겠죠? ㄷㄷㄷ
5.역대 MCU 작품 중에서 가장 사악하지 않은 악당들이 나옵니다. 한 명은 ‘내 목숨이 오늘 내일 하는 판국에 나도 좀 살자!’이고, 다른 한 명은 ‘거 참, 나 혼자 통으로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같이 동업 좀 합시다!’ 입니다. 참 소박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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