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페니웨이 (admin@pennyway.net)
최근 헐리우드의 대세로 자리잡은 슈퍼히어로물의 홍수 속에서도 아마도 DP 회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장년의 남성들에게 있어 ‘원더우먼’은 각별한 캐릭터 일 것이다. 코흘리개 시절, 뭇 사내아이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던 린다 카터가 (그 당시로선)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나와 눈부신 아우라를 발산하는 그 모습에 넋을 잃었던 경험이 한 번쯤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원더우먼에 대한 이미지는… 그래, 말하자면 여신, 딱 그 느낌이었다.
훗날 나이가 들어 원더우먼이 DC 코믹스의 간판급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도, 마음 속의 원더우먼은 단순한 코믹스의 슈퍼히어로가 아닌, 린다 카터라는 배우의 모습 그 자체였다. 사실 그 이후로 몇 차례나 원더우먼의 리메이크 루머가 흘러나오는 듯 보였지만 쉽사리 성사될 수 없었던 이유는 신화적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일이 까다롭기도 하지만 린다 카터를 대체할 만한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갤 가돗이 DCEU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원더우먼 역할을 따 냈을 당시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갤 가돗의 시오니스트 논란도 그렇지만 체형적으로도 린다 카터와는 판이하게 다른 외모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 DC Comics,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의외로 [원더우먼]의 캐스팅 논란을 잠재웠던 건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였다. 사실상 조연 내지는 맛보기 정도의 역할로 내정되었던 원더우먼이 슈퍼맨과 배트맨, 그리고 둠스데이의 결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신랄하게 혹평을 받았던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유일하게 건질만한 부분이었다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덕분에 [원더우먼]에 대한 기대감은 급상승하기 시작했고, 갤 가돗의 캐스팅에 대한 평가도 전환점을 맞이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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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장면!!!
사실 [원더우먼]은 DC 코믹스와 워너 모두에게 있어 결코 실패해선 안되는 영화였다. 이미 그들은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의 참혹한 실패로 [저스티스 리그]의 초석을 송두리째 말아먹은 전력이 있는데다, [배트맨 대 슈퍼맨],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연이어 낮은 평점을 받으며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던 터라 더더욱 그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점에 개봉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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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슈퍼히어로 영화 사상 최초의 여성감독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패티 젠킨스 감독은 히어로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각성이라는 전형적인 영웅서사의 스토리를 설득력 있게 바꿔놓았고 캐릭터들의 성격을 디테일하게 빚어내며 걸작까지는 아니더라도 범작 이상의 준수한 작품으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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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해 반신반인의 여인이 헐벗고 굶주린 차림(?)으로 고대 유물인 검과 방패, 채찍을 휘두르는 [원더우먼]의 기본 설정은 현실성을 중시하는 최근 히어로물의 기조와는 다분히 상충되는 지점이 많은 요소를 내포한다.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아이덴티티에 대한 고뇌와 트라우마에 시달릴만한 여지도 적은 캐릭터다. 주인공만큼이나 매력적인 빌런들이 부족하다는 것도 핸디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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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은 이런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의 서막이었던 1차세계대전을 무대로 원더우먼의 상징과도 같은 페미니즘과 인류애에 대한 묘사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원작의 테마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한 뽑아내는데 성공했다. 첫 시사회가 열린 이후로 현재까지 로튼토마토의 신선도 지수는 여전히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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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에서 [원더우먼]의 역할을 너무나도 잘 대변하는 짤방 -_-;;
물론 아쉬움도 남는다. 다소 거칠게 다듬어진 각본과 결정적 한 방이 없는 하이라이트의 액션씬, 살짝 지루해 질 수 있는 영화의 템포 등 지적할만한 부분들도 적지는 않다. 그간의 DC 히어로물이 너무 실망스러워 상대적인 호평을 받는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일견 공감이 안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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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원더우먼]은 임계점까지 차 올랐던 DCEU에 대한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 작품임에 분명하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불투명해 보였던 [저스티스 리그]의 기대치도 덩달아 상승했고, [원더우먼]의 속편은 물론 향후 DCEU를 이끌고 갈 중심 캐릭터로서 원더우먼의 위상이 높아졌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블루레이 퀄리티
[원더우먼]의 영상 스펙을 보면 MPEG-4 AVC 코덱으로 인코딩 된 풀HD급 화질로 본편의 경우 평균 21 Mbps의 수치를 가진다. 이는 최근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기준점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인데, (참고로 [로건]의 경우 23~24 Mbps의 비트레이트 수치를 보여준다) 확실히 레퍼런스급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지지만 2시간 가량의 서플먼트를 수록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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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체감상 [원더우먼]의 화질 자체에 대해서는 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본 작품은 전통적인 35mm 필름과 아리 일렉사 65 디지털 카메라의 조합으로 촬영된 작품인데, 때론 고운 필름 그레인의 입자감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면서 영화의 고전적인 느낌을 강조하지만 칼 같은 가독성과 정밀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며 다양한 색온도를 기초로 한 색감이라든지, 암부와 명부를 모두 아우르는 계조의 변화도 만족스럽다. 사물 고유의 질감을 표현하는 -가령 배우들의 피부라든가 다이애나의 머릿결 같은- 면에서도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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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애트모스 7.1을 지원하는 사운드는 애트모스 최대 장점인 공간감과 디테일한 음향을 만끽하기에 약간의 부족함도 없다. 청음영역을 확대해가는 비행기의 활공이나 전방위적으로 날아들어오는 탄환, 파편이 분산되며 비오듯 쏟아지는 생생한 상황묘사는 관객을 1차세계대전의 전장 한 가운데로 옮겨온 듯한 느낌을 준다.
한스 짐머 사단의 루퍼트 그렉슨-윌리엄스이 작곡한 BGM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정키 XL이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선보인 'Is She with You?의 선율이 메인 테마가 되어버린 건 어쩔 수 없지만… -_-;;) 헐리우드 대작에 걸맞는 힘있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스코어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타이틀이다.
스페셜피쳐
전술했듯이 약 2시간 가량의 풍성한 서플먼트가 수록되어 있다. 우선 삭제씬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일전에 패티 젠킨스 감독 스스로가 “처음 편집본과 최종 편집본 사이에 많이 다른 점이 없고…(중략)… 영화에선 한 컷도 삭제하지 않았고, 촬영할 때 처음 각본과 여러 장면들의 순서도 바꾸지 않았다”고 말해 삭제씬이 한 장면도 없다는 식으로 와전된 바 있는데, 이 발언은 사실 블루레이 발매시 별도의 ‘감독판’을 내지 않겠다는 뉘앙스에 가깝다. 실제로 본 타이틀에서는 다음과 같은 총 6개의 삭제씬을 선보이고 있다.
▷ Boat Conversation
다이애나의 고향인 데미스키라를 떠나 트레버와 함께 보트에서 대화하는 장면의 삭제씬. 엄마가 자신을 흙으로 빚고 제우스가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하자 어이없다는 듯 트레버가 실소를 터트린다. 이어 인간 세상에서는 아이를 만드는 방법이 좀 다르다는 트레버의 말에 다이애나가 자신은 “육체적 쾌락에 대한 논문 12권 전집을 읽었다”고 자신만만하게 응수한다. 약간 15금적인 대화가 오고가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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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lfridge Shopping
옷을 사입기 위해 쇼핑을 온 다이애나가 여러 가지로 사고(?)를 치는 장면들. 구두의 굽을 부러뜨린다든가 하는 소소한 실수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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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liament Steps
군사회의에 참석해 발끈한 직후에 쫓겨다다시피 나온 다이애나가 트레버에게 항의하자 트레버가 그녀와 함께 전선으로 직접 가겠다는 약속을 하는 장면의 추가씬. 본편에서는 다소 진지한 톤으로 처리되었는데, 삭제씬을 놓고 보면 뭔가 궁시렁 대는 트레버의 모습과 그를 약올리는 듯한 다이애나의 모습이 유머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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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ning at the Train Station
동지들을 규합한 다음날 아침 기차역을 떠나는 풍경의 추가씬. 차창 너머로 문명세계 일상들을 신기한 듯이 쳐다보는 다이애나의 모습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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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rlie Never Sleeps
찰리가 자신은 절대 잠드는 법이 없으니 자신이 불침번을 서겠다며 큰소리를 치자, 다음 장면에서 골아 떨어진 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원더우먼]의 아쉬움 중 하나는 다이애나와 트레버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가 다소 빈약하다는 단점이 있는데, 바로 위에 소개한 “Morning at the Train Station” 삭제씬에서도 찰리의 모습이 담겨있는 걸 보면 영화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캐릭터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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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lk to No Man's Land
트레버 일행이 노 맨스 랜드를 지나며 지뢰를 발견해 이를 폭파시키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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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몇 가지 눈에 띄는 서플먼트를 살펴보자. 먼저 “Crafting the Wonder”는 원더우먼의 캐릭터를 최상의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어떤 캐릭터가 되었든 영화화하는 과정은 나름대로 힘들 수 밖엔 없지만 원더우먼의 경우는 훨씬 더 까다로웠다고 한다. 특히 원더우먼이 갖는 동정심이 충만한 영웅상은 기존 히어로와는 다를 수 밖에 없는데, 가령 골목에서 악당을 채찍으로 쓰러뜨리는 장면을 보면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해 윽박지르는 방식이 아니라 원더우먼이 무릎을 꿇고 ‘도와줄 테니 아레스의 행방을 알려달라’는 상냥한 태도로 접근한다. 이것은 미묘한 차이이지만 원더우먼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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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분짜리 영상인 “The Wonder Behind the Camera”는 여성감독에 의한 여성히어로의 영화라는 테마를 다룬다. 패티 젠킨슨 감독은 촬영장의 절반이 여자여서 이 점이 영화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하는데, 실제 촬영장에서 180명 정도의 여자에 둘러쌓인 채 작업을 했다고 한다. 페미니즘 같은 민감한 화두를 논하기에 앞서 여성들이 주도하는 영화가 주는 여러 장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부가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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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per Reel”은 필자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영상인데 NG 장면을 포함해 촬영장의 개그컷을 담아낸 9분짜리 영상이다. 갤 가돗이 술집의 리쿠르팅씬에서 발음이 꼬여 폭소를 터트리자 젠킨슨 감독이 쪼르르 달려와 교정을 해주는 장면을 보면 훈훈한 촬영장의 온도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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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A Director's Vision”이란 타이틀과 함께 총 5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부가영상도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영화의 각 주요 장면들에 대한 감독의 생각과 의도를 잘 알려주는 핵심적인 메이킹 필름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 맨스 랜드의 전투를 실감나게 만들기 위해 혹한의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노출이 많은 코스튬 차림의 갤 가돗을 외부 촬영현장에 직접 투입했던 감독의 강한 의지와 이를 감내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면 나름의 진정성이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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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다크 나이트] 삼부작 이후 DC 코믹스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라는 평가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건 갤 가돗의 원더우먼이 라이언 레이놀즈의 그린랜턴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기억되리라는 점이다. 과거 린다 카터가 원더우먼의 상징이었듯, 갤 가돗은 새로운 세대의 원더우먼으로 무난하게 각인될 듯 하다.
그녀가 구원투수의 역할에서 그칠지, 아니면 선발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완벽한 수작의 반열에 서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이지만 적어도 [원더우먼]으로 인해 DCEU는 한 숨을 돌린 양상이다. 이제 실체를 드러낼 [저스티스 리그]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은 높여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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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원더우먼 - 패티 젠킨스 감독, 로빈 라이트 외 출연/워너브라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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