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페니웨이 (admin@pennyway.net)
현실화 된 거대 로봇 vs 거대 괴수
무릇 사내 아이의 마음 속에는 거대 로봇이 한 대쯤 자리잡고 있었다. 누군가의 마음 속에는 마징가 제트가, 누군가에게는 태권브이가, 누군가에게는 메칸더 브이나 슈퍼 그랑죠, 혹은 에반게리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 잠자고 있던 그 로봇들은 21세기 들어 CG라는 영화기술의 총애에 힙입어 빛을 보게 된 [트랜스포머]로 인해 눈을 뜨게 되었다. 거대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압도적인 거대 로봇의 존재감. 가슴을 뛰게 만드는 변 로봇의 박력과 육탄전의 쾌감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그 어떤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 DreamWorks Pictures L.L.C./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트랜스포머]가 일으킨 거대 실사 로봇영화에 대한 높은 기대치에 가장 근접했던 작품이라면 역시나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퍼시픽 림]일 것이다. 괴수물과 로봇물을 아우르는 -실상은 일본 서브컬처에 대한 델 토로의 2억 달러짜리 커밍아웃이었던- [퍼시픽 림]은 플롯의 설계와 진행 및 캐릭터의 구축에 있어 아쉬운 점들이 속속 드러나긴 했지만 모름지기 거대한 꿈을 품은 사내대장부들의 덕심을 제대로 훑어줬다는 면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었다.
ⓒ Universal Pictures.Legendary Entertainment . All rights reserved.
문제는 [퍼시픽 림]의 장점에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길예르모 델 토로가 구축해 놓은 방대한 세계관과 설정, 그리고 덕심을 울리는 우직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속편의 제작은 순탄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중국에서의 흥행이 속편 제작의 불씨를 살리게 되었지만 배급사와 감독, 그리고 주연배우가 통갈이 된 채 제작에 돌입한 [퍼시픽 림: 업라이징]의 기대치가 많이 반감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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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연출에 특화된 스티븐 S. 드나이트가 연출을 맡은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예상처럼 전작의 음침한 묵직함을 걷어버리고 밝고 가벼운 톤으로 분위기를 쇄신한 작품이다. 예거는 여전히 거대하지만 더 날씬해졌고, 움직임도 날렵해졌다. 배경이 대부분 밤 장면이었던 전작과는 반대로 주로 낮에 카이주와 대결을 펼치는 점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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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지향점 또한 전작에서 상당히 멀어져 있다. 일본 서브컬쳐의 오마주로 점철되었던 델 토로의 비전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철저한 헐리우드-차이나식 블록버스터의 전형적인 모양새다. 악당의 정체에 반전을 가미한 스토리도 살짝 더 복잡해졌지만 그렇다고 전편에 비해 우위를 점한 건 아니다. 떡밥의 회수나 캐릭터의 활용에 있어서 제법 깔끔한 플롯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도식화된 오락영화의 공식을 따라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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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타격감 위주의 전투에서 각종 전투 장비들을 탑재한 예거의 활약은 전편과는 확연히 달라진 점으로서 [퍼시픽 림] 만의 정체성이 희석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전편이 육중함이 느껴지는 험비를 보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매끈하게 빠진 포르쉐를 보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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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예거 대 예거의 대결이라든가 카이주의 합체라는 기믹을 도입해 전작과는 또 다른 볼거리를 시도한 건 긍정적인 변화다. 거대함에 압도되었던 처음의 설레임은 사라졌어도 한층 변화된 괴수와 로봇의 격돌은 여전히 가슴을 뛰게 만드는 뜨거운 기운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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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퀄리티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아리 알렉사 XT를 사용해 촬영했다. 주 카메라가 바뀐 만큼 화면의 구도나 색감, 화면비 등 모든 면에서 레드에픽을 사용한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비주얼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85:1의 꽉찬 화면이 아닌 2.39:1의 화면비로 보는 거대 로봇의 활약상은 가정용 디스플레이로 감상하기엔 다소 답답해 보이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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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야간 장면보다 환한 낮 장면이 주를 이루어 전반적으로 쨍하고 선명한 화질을 보여주며, CG와 실사화면의 이질감 없이 조화를 잘 이룬다. 예거의 동체 이곳 저곳에 나 있는 스크레치나 구석 구석 촘촘하게 배치된 금속 부품들과 패널라인이 생생한 현실감을 준다. 피부의 질감이나 직물의 텍스처, 땀과 같은 디테일한 요소들도 생생하게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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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는 돌비 애트모스와 돌비 트루 HD 7.1이 동시에 수록되어 있다. 밸런싱이 알맞게 조율된 볼륨과 각 채널의 배치, 그리고 공간감과 사물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사운드가 설계된 느낌이다. 이런 장르의 작품에 요구되는 관객의 기대치를 져버리지 않는 사운드로서 특히 예거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사운드가 일품이다. 흔히 액션 영화에서 베이스를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주변음이 묻혀 버리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간혹 벌어지곤 하는데, 본 블루레이는 주변 효과음과 작은 소리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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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피쳐
디스크 하나를 온전히 할애한 전작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본편에 삽입된 감독의 음성 코멘터리를 비롯해 제법 다채로운 부가영상이 마련되어 있다. 먼저 삭제장면들에서는 친절하게도 드나이트 감독의 음성 코멘터리가 함께 있어서 해당이 장면이 왜 삭제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삭제된 장면들은 다음과 같다.
▷ 제임스 건 파티 대체 장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제임스 건 감독이 파티장의 DJ로 등장한다. 그의 여자친구 젠도 함께 까메오로 출연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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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라, 쉐터돔 도착 1부: 영화의 리듬을 살리기 위해 삭제된 장면으로 아마라가 샤오의 부품을 훔쳐서 스크래퍼에게 장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이는 아마라의 은신처에 샤오의 스크랩 기사들이 걸려 있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 아마라, 쉐터돔 도착 2부: 역시나 영화의 흐름이 길어지는 것을 우려해 삭제한 장면으로 약 4~5분에 걸친 긴 장면이다. 쉐터돔에 도착한 이후로 제이크가 꽤 많은 인물들과 만나며 대화를 나눈다. 여기에서 헤르만 고틀리브 박사도 등장한다. 또한 제이크가 네이트의 파트너였고 매우 긴 시간을 드리프트해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도 언급되고 훈련병들의 훈련장면도 꽤 길게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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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라, 훈련병들을 만나다: 아마라가 훈련병들과 만난 후 진하이와 대화하는 장면이 좀 더 길게 이어진다. 진하이의 가족사나 빅의 부모에게 일어난 일 등 주변 인물에 대해 훨씬 많은 정보가 주어지지만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삭제되었다.
▷ 제이크의 복귀에 관해 얘기하는 제이크와 네이트: 주방 장면의 대안으로 촬영된 장면으로서 제이크의 방으로 안내하는 도중에 네이트와 제이크가 대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머가 배제되어 있고 감정선이 제대로 살지 않아 삭제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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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라, 리웬을 만나다: 리웬과 뉴트가 복도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던 도중 아마라가 갑자기 튀어 나온다. 평소 리웬을 동경하던 아마라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지만 리웬은 차갑게 길을 비켜 달라고 요구한다. 아마라와 리웬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지만 연계장면이 편집되면서 어쩔 수 없이 잘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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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트와 앨리스: 뉴트가 흑막이었다는 힌트를 제시하는 부분으로 앨리스에게 좀 더 소소한 얘기를 건네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 퓨리에서 회수한 카이주 뇌: 시베리아 전투에서 회수된 카이주의 뇌를 들추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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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몇 가지 흥미로운 부가영상을 소개해 보면, 먼저 “Hall of Heroes”를 들 수 있겠다. 마치 추억의 로봇 미니백과를 화면으로 옮긴 듯한 일종의 설정집 같은 영상으로서 주연을 맡은 존 보예가가 각 예거의 특징과 제원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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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ge to Uprising”에서는 [퍼시픽 림: 업라이징]과 전작의 차이점 및 속편의 기획 의도 등을 감독과 배우들이 소개하고 있다. 속편의 시대적 배경과 설정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으며 전작에서 어떤 점을 바꿨고 무엇을 그대로 살렸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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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에서 눈에 띄기 바뀐 점은 역시나 공격적인 닌자를 연상케 하는 날렵한 예거들일 것이다. “Next Level Jaegers”는 예거의 변화된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변화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서 제작진은 전작의 예거에서 외모, 느낌은 그대로 가져가되 동작은 더 빠르게 구현할 수 있도록 예거를 업그레이드 했음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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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것은 예거만이 아니다. 카이주 역시 예거 못지 않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Going Mega”는 특히 마지막 도쿄 전투 장면에 주목한다. 이 장면에서 세 마리의 카이주는 리퍼에 의해 분리되어 하나의 메가 카이주로 합체 신공을 펼치는데, 이를 구상, 개발하는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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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블루레이에 담긴 부가영상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Feature Commentary with Director Steven DeKnight
- Deleted Scenes (7:32) with Commentary by Director Steven DeKnight
- Hall of Heroes (3:24)
- Bridge to Uprising (4:37)
- The Underworld of Uprising (3:45)
- Becoming Cadets (5:56)
- Unexpected Villain (5:46)
- Next Level Jaegers(5:07)
- I am Scrapper(2:40)
- Going Mega(3:19)
- Secrets of Shao (3:13)
- Mako Returns(2:06)
총평
전편이 지나치게 마니아적인 작품이라는 지적을 의식한 탓인지, 보다 대중적인 작품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역력한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그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썩 만족스런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전편의 무게감이 사라지고 길예르모 델 토로가 애써 구상해 놓은 세계관을 거의 활용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반면, 육중한 타격감 대신 다양한 장비를 사용해 마치 과거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전투씬을 재현한 것은 또 다른 볼거리를 안긴다.
결과적으로 전편의 장점을 버린 속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1편의 장점에 매료되었던 팬들은 실망스럽겠지만 낭비없는 캐릭터의 활용이나 화려한 비주얼에 있어서 보다 진일보한 점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퍼시픽 림: 업라이징] 블루레이는 본편이 가진 오락영화 본연의 재미를 즐기기에 충분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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