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페니웨이 ( http://pennyway.net/)
감독을 바꾼 [스타트렉]의 세 번째 항해
전설적인 시리즈의 리부트 혹은 리메이크는 오늘날 거스를 수 없는 헐리우드의 대세다. 영화 기술의 발전은 예전엔 꿈에 불과했던 세계관을 더 실제처럼, 더 실감나게 구현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곧 완성도를 보장해 주는 건 아니다. 수많은 영화들이 야심차게 리부트를 시도했으나 상당수의 작품들은 오리지널의 아우라에 함몰되어 버리거나 원작의 명성에 먹칠한 졸작으로 평가받곤 했다.
그러한 사례들에 비추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가장 성공적이었던, 그리고 가장 완벽했던 리부트라 하면 역시나 [스타트렉: 더 비기닝]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딱히 스스로 필자 자신을 마니아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름 [스타트렉]의 세계관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관객층에게 있어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리부트이면서 리부트가 아니고, 프리퀄이면서도 씨퀄이 되는 놀라운 구조적 완성도는 정말이지 얄미울 정도로 영리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J.J. 에이브람스의 탁월한 기지는 속편인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가장 성공적인 극장판 중 하나인 [스타트렉 II: 칸의 분노]를 멋지게 오마주한 이 작품은 리부트된 세계관의 독자적인 성격을 고집하면서도 이전 세계관을 함께 끌어안는 전작의 노선을 이어간다. 이렇듯 에이브람스는 빗나가던 [스타트렉] 시리즈의 궤도를 원 위치에 올리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지만 그렇다고 수십년의 세월을 함께 해 온 트레키들을 내치지도 않았다는 면에서 실로 놀라운 일을 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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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로 보자면 세 번째 작품에서 J.J. 에이브람스가 빠진 건 일종의 불안요소다. 리부트의 일등 공신인 J.J. 에이브람스가 [스타워즈 Ep.7: 깨어난 포스]로 가게 되면서 로베르토 오씨를 사령탑에 앉힌 이 작품은 애초부터 연출 경험이 전무한 각본가에게 중책을 맡긴다는 사실 때문에 우려섞인 반응이 흘러 나왔다.
엄밀히 말해 로베르토 오씨 또한 [스타트렉: 더 비기닝]과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각본을 쓴 당사자로 성공적인 리부트의 주역 중 한 명이며, [스타트렉]의 정서를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창작적 견해 차이를 이유로 감독직에서 하차하게 되었고 다시금 [스타트렉] 3편은 난항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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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오씨의 하차 후 여러 감독이 물망에 오른 끝에 저스틴 린이 대타로 선임된 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준수한 액션 연출과 더불어 흥미로운 스토리 구조와 캐릭터의 매력을 첨부하는 재능을 발휘해 죽어가던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다시금 초장수 프렌차이즈물로 되살린 감독이니 만큼 J.J. 에이브람스의 대안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인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스타트렉: 비욘드]는 에이브람스 감독이 깔아놓은 [스타트렉] 리부트의 방향성을 계승하되, 여러 명의 캐릭터를 골고루 활용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저스틴 린의 장기가 잘 드러난다. 이번 작품에서 엔터프라이즈호의 대원들은 함선을 잃고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는데, 플롯의 특성 상 대원들이 모두 흩어져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만큼 각 승무원의 개성과 매력이 잘 묘사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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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페그가 각본에 참여한 때문인지, 눈에 띄게 강화된 유머는 본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다. 특히 스팍과 본즈의 캐미는 기대 이상의 상승효과를 발휘하며 이번 작품에서 본즈의 숨겨진 개그 본능에 박장대소하는 관객들을 극장 관람시에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감독답게 화끈한 액션과 압도적인 비주얼의 향연은 여전하다. 리부트와 함께 SF 블록버스터라는 스케일 위주의 포맷으로 전환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저스틴 린의 [스타트렉: 비욘드]는 [스타트렉] 본연의 소박하고 전형적이며, 아날로그적인 정서를 함유하고 있다는 면에서 오히려 오리지널 [스타트렉] TV 시리즈에 가장 가깝다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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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쉬움도 있다. 무난함을 지나치게 추구한 탓인지 공존이라는 개념을 재검증하는 악역 크롤의 존재감이 생각처럼 크지 않으며, 개연성이 허술해 전체적인 짜임새 보다는 잔재미로 승부를 보려는 경향이 느껴진다. 때문에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러야 할 막판 클라이막스도 기대 이상의 짜릿함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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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처럼 밀도 높은 드라마를 기대했던 관객에게 [스타트렉: 비욘드]의 무난함은 실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리 짐작하지는 말 것. 이는 어디까지나 전작과의 비교 우위를 논할 때의 문제일 뿐 [스타트렉]을 관통하는 정서와 스페이스 프론티어라는 주제를 계승하는 후속작으로서 [스타트렉: 비욘드]는 딱히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블루레이 메뉴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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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퀄리티
차세대 UHD 포맷이 확정된 시점에 대다수 헐리우드 영화들의 퀄리티가 상향 평준화 된 만큼 [스타트렉: 비욘드]의 화질 역시 더도 덜도 아닌 평균적인 수준이다. J.J. 에이브람스 특유의 렌즈 플레어 효과가 사라진 가운데, 깨끗하고 명료하게 트랜스퍼된 화면에서 상당히 많은 정보량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다. 가령 엔터프라이즈호에 있는 계기판의 정교한 배치에서부터 요크 타운을 구성하는 다양한 구조물과 도시 디자인의 미세한 요소까지 명확하게 볼 수 있으며 스타플릿 유니폼이 벌집 패턴의 직물에서 구 TV 시리즈의 민무늬 섬유로 바뀐 것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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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트루 HD 5.1의 사운드 스펙을 지녔던 전편에서 나아가 돌비 애트모스로 무장한 사운드는 한층 더 박력있고 실감나는 [스타트렉]의 우주 공간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추가된 오버 헤드 채널이 각 장면의 생동감을 얼마나 더 향상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타이틀이라 하겠는데, 특히 몇몇 액션 장면에서의 사운드는 복잡한 효과음을 동시 다발적으로 힘차게 뿜어내지만 그와 동시에 부드럽고 섬세함이 느껴진다. 대사 전달 또한 선명하고 섬세하며, 자연스럽게 센터 채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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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플먼트
우선 블루레이 콜렉터 사이에서 불만이 나올만한 요소가 있는 타이틀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넘어가야 겠다. 본 작품은 최근 인기작들의 추세처럼 다양한 버전의 패키지로 출시되었는데, 그 중 일반판과 동일한 구성의 패키지와 S.E 버전 사이에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점을 밝힌다. 일반판을 위시한 대부분의 판본에는 11개의 부가영상이 수록되어 있으나 S.E 버전에는 별도의 서플먼트 디스크가 하나 더 추가되어 총 19개의 부가영상이 수록되어 있어 부가영상을 중요시 하는 콜렉터라면 어쩔 수 없이 패키지의 심미적인 부분을 울며 겨자먹기로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일반판에 수록된 서플먼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해 보면 가장 눈이 먼저 가는 영상은 “Beyond the Darkness”다. 제작자로만 참여한 J.J. 에이브람스가 [스타트렉: 비욘드]에 참여하지 않은 소희를 밝히며 시작하는 이 부가영상은 저스틴 린 감독의 합류부터 각본가 더그 정(그는 이 작품에서 술루의 동성 배우자로 등장한다)에게 사이먼 페그를 공동 작가로 붙여주게 된 이유 등 [스타트렉: 비욘드]의 여러가지 제작 비화를 다룬 메이킹 영상이다. 로베르토 오씨의 도중 하차로 비추어 스튜디오의 간섭이 심했을 것 이란 우려와는 달리 저스틴 린의 자유로운 연출이 보장되었던 작품이었던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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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칸족의 인사말이자 [스타트렉] 시리즈의 가장 유명한 대사이기도 한 “To Live Long and Prosper”는 역대 극장판 [스타트렉]의 주요 장면들을 편집해서 보여주면서, 동시에 50년간이나 시리즈가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스텝과 배우들의 의견을 소개하는 영상이다. 시리즈에 공통적으로 녹아있는 요소들을 이번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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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눈여겨 보는 서플먼트 중 하나는 삭제장면인데, 본 타이틀에는 “Kirk and Scotty in the Terminal”와 “Scotty Gets a Bib and Tucker”라는 1분 미만의 아주 짧은 삭제씬 두 개만이 들어 있다. 두 장면 모두 사이먼 페그가 연기한 스카티가 등장하지만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장면이어서 조금은 실망스럽다. 그냥 서플먼트에 삭제장면도 들어있다고 구색만 맞춘 듯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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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Leonard and Anton”은 아마도 본 타이틀의 서플먼트 중 가장 감동적인 부가영상일 것이다. 레너드 니모이가 연기한 스팍은 아마도 [스타트렉] 시리즈의 상징적인 아이콘이라해도 무방할 것인데, [스타트렉: 더 비기닝]에서의 등장씬이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에 깊이를 더해주면서 큰 울림을 주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트렉: 비욘드]에서 스팍 대사의 죽음이 젊은 스팍의 내면적 갈등에 큰 요인이 되도록 각본이 짜여진 것은 그에 대한 경의의 표시인 셈이다. 더불어 젊은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한 ‘체코프’ 안톤 옐친에 대한 짧은 추모 영상도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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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평
J.J. 에이브람스의 도전적이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안전한 길을 택한 [스타트렉: 비욘드]가 불만스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트렉]의 세계에 오래 전부터 발담궈 온 관객의 입장이라면 이번 작품이 주는 깨알 같은 재미, 특히 트레키들의 감성을 자극할 오마주와 자기복제가 넘치도록 많다는 점만으로도 무척 만족스러울 것이라 믿는다. 4편의 제작이 확정된 지금 누가 차기작을 이끌더라도 당분간 [스타트렉]은 믿고 보는 시리즈가 될 것이다.
In Loving Memory of Leonard Nimoy and for A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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