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은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으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쌍벽을 이루는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동서를 횡단하는 열차 안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그리고 12명의 용의자. 눈길에 발이 묶인 열차안이라는 독특한 폐쇄공간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추리의 향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희대의 미제사건으로 불렸던 린드버그 유괴 살해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도 흥미롭지만 결말의 충격은 정말 대단했지요. 개인적으로는 고전 추리소설에 심취해 있을 무렵 시드니 루멧의 영화로 먼저 접하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원작소설이 영화만 못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 특이한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 EMI Film Distributors, G.W. Films Limited.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작년 일본에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을 2부작 TV시리즈로 제작했습니다. '희극의 명장'으로 알려진 미타니 코키가 각색을 맡은 이 작품은 원작의 에르큘 포와르와 전혀 매칭되지 않는 40대 후반의 노무라 만사이를 탐정 역할에 전격 캐스팅하면서 초기부터 큰 관심을 모았었죠.
우선 원작의 플롯을 그대로 가져오되 시대와 인물을 일본에 맞게 각색해 쇼와 시대 초기의 사회상을 접목한 시도가 돋보입니다. 1부는 살인사건의 발생부터 용의자의 취조, 그리고 범인을 밝혀내는 결말까지 원작과 큰 차이없이 진행됩니다.
오히려 이 작품의 특이점은 2부에서 시작됩니다. 범인의 범행 동기부터 범죄를 계획하는 일련의 단계들과 심리변화 등 살인사건 이면에 놓인 사정들이 아주 상세하게 다루어지고 있지요. 물론 어떤 면으로는 사족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개연성이 더 떨어지게 되는 부작용도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원작에서 다뤄지지 않은 부분을 가공한 희곡적인 재미는 있습니다.
전체적인 캐스팅은 무난합니다. 타마키 히로시, 마츠시마 나나코, 니노미야 카즈나리 등 일드에서 맹활약 중인 배우들이 등장하며 사토 코이치나 니시다 토시유키 같은 미타니 코키의 단골 배우들도 합세해 좋은 앙상블을 보여줍니다.
ⓒ Fuji TV. All ritghts reserved.
무엇보다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캐스팅은 당연히 탐정일텐데, 원작에서의 작고 뚱뚱한 체격에 다리를 저는 노신사 에르큘 포와로와는 달리 마른 체형에 과장된 제스쳐와 말투가 특징인 스구로 타케루는 미타니 코키에 의해 캐릭터가 변화된 탓인지 교겐 희극 계승자인 노무라 만사이의 연기 스타일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가능하다면 스구로 타케루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는 것도 괜찮아 보일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캐스팅은 야기 아키코 였습니다. 이 배우가 맡은 캐릭터는 74년 시드리 루멧 버전의 영화에서 명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 맡아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타냈던 바로 그 배역이었는데, 흡사 잉그리드 버그만의 환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싱크로율이 극강입니다.
미타니 코키 특유의 유머와 대치가 묻어나면서도 원작을 손상하지 않는 각색 솜씨는 여전히 훌륭합니다. 원래 원작 자체가 그리 무겁지 않은 분위기여서 오히려 미타니 코키식 희극 코드와 잘 어울렸다는 느낌입니다.
과거 한국에서도 'Y의 비극'이라든지 하는 해외 미스터리를 TV 드라마로 각색하는 시도가 종종 있었는데, 워낙 미스터리 장르가 일본만큼 대중적이지는 않아서인지 요즘은 그런 시도를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P.S:
1.한 때 리들리 스콧이 리메이크한다는 얘기가 돌았었습니다. 지금은 뭐 워낙 바쁜 양반이라 [프로메테우스: 에일리언 코버넌트]부터 먼저 어떻게 해야 진행이 될 거 같은데, 어찌되었건 개인적으로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좀 더 나이를 먹고나서 포와로 역으로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2.찾아보니 2017년 개봉을 목표로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프로젝트를 진행중이군요. 캐스팅은 미확정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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