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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열전(古典列傳) No.29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대부분은 1994년작 [스피드]를 보셨을 겁니다.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 그리고 감독인 얀 드봉 모두 스타덤에 올랐던 이 작품은 일정 속도밑으로 떨어지면 폭발하게 되어있는 버스안에서 폭파범과 긴박한 대결을 벌이는 액션물이죠. 2편까지 만들어져 폭망했지만 적어도 1편만큼은 액션물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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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스피드]의 원전격인 영화가 1975년에 이미 나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것도 헐리우드가 아닌 일본에서 말입니다. 사토 준야 감독의 [신칸센 대폭파]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본문화금지 정책에 의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금이 된 이후 2004년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어 매진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최첨단 안전설비를 도입한 고속열차 신칸센에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옵니다. 시속 80km 이하로 운행할 경우 치명적인 폭탄이 터진다는 것. 당국에는 초비상이 걸리고, 용의자를 색출하기 위한 수사에 착수하지만 범인 검거에는 번번히 실패하고 맙니다. 급기야 희생자를 내지 않고 몸값을 받아내려던 범인들의 계획도 빗나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고 열차안은 패닉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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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찌보면 조금 진부한 내러티브라고 볼 수 있는 [신칸센 대폭파]는 그 제작시기가 1970년대 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속도계에 따라 폭발여부가 결정되는 폭탄이란 설정도 신선하지만 완벽주의를 자랑하는 일본인들의 안전 장치인 중앙열차통제장치(CTC)가 오히려 독이 된다는 점도 매우 기발한 설정으로 작용하고 있지요. 비록 미니어처의 사용과 다소 느슨한 편집이 이런 류의 스릴러 치곤 긴박감을 떨어지게 만들지만 영화의 주 목적이 단순한 오락성에 있지 않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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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센 대폭파]는 열차 테러라는 상황하에 드러나는 인간군상을 통해 고도성장기에 놓인 일본의 사회상과 그늘을 볼 수 있다는 면에서 주목할만합니다. 왜 범인들은 폭파범이 되었는가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면서 범인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있는데, 그들의 회상을 통해 당시 일본의 상태를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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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열차안의 수많은 인명을 놓고 도박을 벌이려는 당국자들의 갈등구조와 번번히 범인검거에 실패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무능한 경찰 등 어떤 면으로는 사회고발성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세히 묘사됩니다. 이러한 점들이 바로 일반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인데요, 일례로 [스피드]만 보더라도 영화 속에서는 영웅과 반 미치광이 폭파범, 그리고 예쁘장한 여주인공과의 로맨스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문제의식따윈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걸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지요.

게다가 [신칸센 대폭파]의 인터내셔널 버전은 115분으로 오리지널에 비해 무려 40분 가량이 삭제되어 버렸습니다. 삭제 분량의 대부분은 캐릭터의 과거를 설명하는 플래시백 장면들인데, 이는 각 범인들의 범행동기에 설득력을 부여함과 동시에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아주 중요한 플롯이라고 볼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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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도 화려한데요, 이미 임협 이미지로 국민배우가 된 다카쿠라 켄이 테러리스트의 주범으로, 전설적인 액션배우 치바 신이치가 차장 역으로, 그 외에도 여성액션배우 시호미 에츠코 등 낯익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합니다. 다카쿠라 켄의 무표정하면서도 슬픈 연기가 일품인데, 마지막까지 그가 무사하길 바라는 심정은 마치 [히트]에서 로버트 드 니로를 응원하는 것 만큼이나 간절해집니다.

이 영화는 해외에서도 꽤 각광받았습니다. 그 결과 헐리우드에서는 이를 계기로 1970년대 후반 이른바 '열차 재난물'이라 불리우는 일련의 작품들을 내놓습니다. 조지 P. 코스마토스 감독의 1976년 작 [카산드라 크로싱]을 비롯,  1977년에는 [위험한 열차 Rollercoaster]가, 1979년에는 [지옥의 사자들 Avalanche Express]이 개봉되었죠. 이런 쟁쟁한 작품들이 [신칸센 대폭파]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게다가 1994년 [스피드]의 원안에 가깝다는 건 서두에서도 언급했지요.

 

 

일본에서도 [신칸센 대폭파]는 클래식의 반열에 올라 아직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얼마전 방영되기 시작한 슈퍼전대물 [열차전대 토큐자]에서도 [신칸센 대폭파]의 오마주가 깨알같이 등장하고 있고 국민 만화로 등극한 [명탐정 코난]에서도 '신칸센 폭파'라는 에피소드가 있으며, 1983년에는 게임으로도 발매되는 등 문화 전반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미장센도 훌륭한 편입니다. 마지막 엔딩의 흑백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되는 순간의 연출은 [내일을 향해 쏴라]나 [정무문]의 그것에 비견할 만큼 인상적입니다. 1970년대 중반에 이런 결말을 가진 대중영화가 일본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놀라운 작품이지요. 얼마전 타계한 다카쿠라 켄의 필모그래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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