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마사무네의 비정기 연재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가 후대 사이버펑크 문화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감독인 오시이 마모루를 비롯해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비록 [공각기동대]의 주요 화두인 인간과 기계의 존재론적 사유에 대해서는 이미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에서 다루었던 소재이지만 분명 [공각기동대]는 기존의 유형을 뛰어넘는 주제의식을 선보였다.
[공각기동대]의 헉 소리날 만큼 뛰어난 비주얼과 더불어 이 작품이 뛰어난 점 한 가지는 아직 인터넷이 대중화되기도 전에 네트워크를 통한 미래세계의 지형도를 이미 완성시켜놓았다는 점일 것이다. 실체는 없지만 광활한 네트를 누비며 해킹을 일삼는 인형사와 그로인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더 나아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의 이야기는 20년이 지난 오늘날에 봐도 전혀 어색하거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 Shirow Masamune-Production I.G /Kodansha All rights reserved.
세월이 흘러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는 일종의 분기점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 작품의 적자 계보로 이어지는 [이노센스]와 쿠사나기 소령이 만약 인형사를 만나지 않았다면?으로 가정하는 What if 버전의 TV시리즈 [공각기동대 SAC]가 그것이다. [이노센스]에 대해서는 이미 DP시리즈 발매 시점에 리뷰가 된 적이 있으니 해당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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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가 존재론적 사유와 인간성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에 접근했다면 카미야마 켄지 감독의 [공각기동대 SAC]는 전뇌화가 보편화 된 미래 사회에 벌어지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쿠사나기 소령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공각기동대]와는 달리 [공각기동대 SAC]는 공안9과의 팀 전원이 주인공이다. 물론 비중에 있어서는 소령의 분량이 많은 것이 사실이나 바토나 토구사, 아라마키 국장, 사이토 등 각 구성원들의 개성이 잘 드러나 이들의 팀플레이가 주를 이룬다는 점은 극장판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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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각기동대 SAC]에서 특히 돋보이는 캐릭터는 사고(思考)형 전차인 타치코마다. 공안9과의 엄호, 침투 및 잠복 등을 목적으로 설계된 이들은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에 불과하지만 기계에 고스트가 생길 수 있는가 하는 원작의 담론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캐릭터이기도 하다. 특히 바토와 유대감을 깊은 타치코마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는데, 공안9과와 해군특수부대 간의 전투에서 바토를 구하기 위해 '희생'을 선택하는 타치코마의 독백에서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몰입감이 뛰어난 연출을 보여준다.
총 26화로 이루어진 [공각기동대 SAC]는 각각의 독립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고, 5화부터 시작되는 '웃는 남자'사건이 주축이 되며 그 때문에 이 에피소드만을 따로 떼어 요약한 총집편이 블루레이로도 출시되어 있다. 하지만 독립된 각각의 에피소드는 독자적이면서도 모든 것이 한줄로 연결되는 미묘한 흐름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총 26화중 한편이라도 제외하면 완성된 작품이 되지 않으므로 전편을 감상하길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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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에피소드는 비교적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있는데, 가령 '1화-공안9과'의 경우 전형적인 수사극의 모습을 보여주며, '10화-정글 크루즈'는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을 다루는 스릴러물이고, '12화-타치코마의 외출'은 잔잔한 스토리를 지닌 소품이지만 후에 타치코마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복선을 담고 있으며, '18화-암살의 이중주'는 마치 [자칼의 음모] 같은 한편의 암살영화를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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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적 성과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던 [공각기동대]와는 다르게 [공각기동대 SAC]는 TV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초월한 뛰어난 완성도에 힘입어 대중들에게 어필하는데 성공, 2기 시리즈와 OVA인 3기까지 제작되었고, 최근에는 리부트이자 프리퀄에 해당하는 [공각기동대 ARISE]가 개봉하면서 다시금 [공각기동대]의 세계관을 확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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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소장중일 것으로 보이는) 기존 DVD 박스셋을 소장한 사람들에게는 이번 블루레이 출시로 인해 희비가 교차할 것이다. 우선 희소식을 하나 꼽자면 블루레이 버전은 기존 DVD의 자막을 완전히 새로 교체했다는 점이다. 사실 기존판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웃는 남자(笑い男)'를 더빙판에 맞추어 '스마일맨'으로 번역했다는 점이었는데, 이번엔 '웃는 남자'로 정확히 번역했다. 역수입을 우려해 영상에 자막을 고정하는 만행(?)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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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판본이 워낙 만족도가 높았기에 화질면에서는 조금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한다. [공각기동대 SAC]의 작화 수준은 타작품의 몇 배가 투입된 대작이니만큼 그 퀄리티가 월등히 우수한 작품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영화와는 달리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 제작 연도 및 제작 방식의 차이에 민감한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공각기동대 SAC]의 경우는 디지털 제작방식이 도입된 초기에 제작된 작품이어서 당시 디지털 기술의 목표치인 1080i급의 화질에 최적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이 작품을 다시 리마스터링하기 위해서는 원본 소스가 가진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본 타이틀은 1080p급 풀HD 해상도의 선명하고 깨끗한 화면을 즐기기에는 다소 부족하겠지만 DVD보다는 확실히 업컨버트된 화질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아야 하겠다.
▽ DVD vs. Blu-ray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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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질면에 있어서도 DD 5.1에서 진일보한 Dolby True HD 5.1 규격의 사운드를 선사하는데, 음의 선명함과 해상도에 있어서는 DVD와 비교 불가다. 추격씬이나 총격전에서의 박력있는 음향은 헐리우드 영화의 레퍼런스 타이틀에 비교하기엔 무리겠지만 TV판 애니메이션의 범주에서는 최고 수준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리어 채널의 활용도가 높아서 멀티 채널의 장점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타이틀이다.
다만 아쉬운 점 또한 있는데, 국내에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한국어 더빙이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대신 영어 더빙이 수록되어 있긴 해도 한국어 더빙의 누락은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소장가라면 DVD 박스셋과 블루레이 모두를 소장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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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블루레이에서는 쿠사나기 소령의 성우인 타나카 아츠코, 바토 역의 오오츠카 아키오, 타치코마 역의 타마가와 사키코의 대담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본 리뷰는 Vol.1,2의 QC 디스크만으로 작성했으므로 추후 어떤 부가영상이 더 수록될지는 불확실하지만 성우들의 대담 영상은 다른 볼륨에도 연재 형식으로 수록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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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담은 각자가 맡은 캐릭터에 대한 소희 및 녹음 뒷담화가 담겨 있는데, 한 가지 알게 된 흥미로운 점은 주연급의 성우들이 맡은 인물이 한 명이 아니라는 것. 가령 타마가와 사키코는 타치코마 뿐 아니라 토구사의 아내 역을 맡은 적이 있으며, 오오츠카 아키오는 에피소드에 가끔 등장하는 노인 역을 맡았고, 타나카 아츠코도 대사가 적은 한 에피소드에서 아나운서 역을 맡은 적이 있다. 이렇게 성우들이 직접 나와 영상 코멘터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빙 수요의 급감으로 위축된 국내 성우계와는 상반되는 것이어서 새삼 부러운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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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Vol. 1,2 만으로 보면 DVD와 겹치는 부가영상은 없어서 또다시 DVD와 블루레이의 중복소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본 작품을 케이블 방송이나 DVD로 접했겠지만 이번에 새로 출시된 고화질의 블루레이가 정식 발매된다는 점은 척박한 애니메이션 시장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일 것이다. 특히나 TV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판매량을 보장하는 작품들은 그리 많지 않은데, [공각기동대] 전 시리즈 중 가장 상업적 완성도가 높은 [공각기동대 SAC]야 말로 걸작의 반열에 오른 [카우보이 비밥]이나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더불어 가장 성공적인 TV 애니메이션 중 하나라고 하겠다. 이번 [공각기동대 SAC]의 발매를 기점으로 [공각기동대] 전 시리즈를 소장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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