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파]에서도 그러했지만 이번 [에반게리온: Q]는 정말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전작이 기분좋은 느낌의 충격이었다면 [에반게리온: Q]는 황당, 난감, 분노, 허탈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든다는 차이일까. 어쨌거나 이것이 진정 ‘에반게리온’다운 맛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제 짧은 식견으로나마 이번 [에반게리온: Q]가 남긴 몇가지 담론들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 글은 어디까지나 [에반게리온: Q]를 보면서 생긴 담론을 잡담식으로 재미삼아 풀어놓은 글일 뿐 정설 혹은 공식 설정에 준하는 그 무엇도 아님을 밝힌다.
1. 마키나미 마리 일러스트리어스 |
[에반게리온: 파]의 변화에서 가장 중심에 섰던 신 캐릭터다. 사실 밝혀진 정보가 거의 없고 비중이 있는듯 없는듯 묘한 포지션에 위치하고 있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아스카의 백업으로 오히려 [에반게리온: 파]에서보다 비중이 더 줄어버렸다. 다만 몇가지 의미심장한 단서를 남겼는데, 가장 팬들로부터 회자되는 것이 후유츠키가 신자에게 보여준 사진 속 인물, 즉 신지의 엄마 옆에 안경을 쓰고 서 있는 여성이 마리라는 설이다.
ⓒ Khara/ GAINAX. All Rights Reserved.
실제로 그녀는 신지의 아버지를 이카리 겐도’군’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오프닝에서 그녀가 흥얼거리는 노래는 마리의 연배와는 어울리지 않게 1972년 아마치 마리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라는 고전 가요다. ([에반게리온: 파]에서는 365행진곡을 부른 바 있다) 결정적으로 레이의 클론에게 ‘너의 오리지널은 좀 더 붙임성이 있었는데’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레이의 오리지널이란 레이의 원본 즉 이카리 유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왜 그녀가 나이를 먹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면, 에바의 파일럿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에바의 주박’으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2. 시키나미 아스카 랑그레이 |
유독 짜증나는 캐릭터들로 득실대던 [에반게리온: Q]에서 그나마 가장 패기넘치고 매력있게 등장한다. 전작에서 3호기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토우지를 대신해 리타이어된 탓에, 이번 신극장판은 아스카가 아닌 레이 루트로 진행되는 것인가라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일단 아스카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떡밥이 뿌려지진 않았는데, 가장 큰 관심을 끄는 대목은 그녀의 안대다. 왜 안대를 착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본 작품에서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고 있으나 에바 개 2호기의 모드777 발동시 안대 부분이 청색으로 바뀌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녀의 왼쪽 눈은 사도로 인해 부분침식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 Khara/ GAINAX. All Rights Reserved.
흥미롭게도 [엔드 오브 에바]에서 양산형 에바시리즈에게 당할 때 롱기누스의 창에 왼쪽 눈을 찔린다는 점인데, 공교롭게도 안대의 위치가 같다. 마지막에 그녀가 인류를 ‘리린’으로 지칭하는 것은 그녀 스스로가 자신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보인다.
3. 아야나미 레이 |
[에반게리온: 파]에서 신지는 레이를 구하기 위해 초호기의 폭주를 유발시킨다. 이 때 분명 레이를 구출한 것으로 보이나 14년이 지난 시점에서 등장하는 레이는 클론이다. 신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버려진 SDAT를 주워서 돌려주었던 ‘뽀까뽀까’ 레이는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이는 [에반게리온: Q] 예고편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찾을 수는 있는데, 거기에서는 자신의 어린 클론들을 뒤로 감싸는 레이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이것은 아마도 설정으로 제시된 니어 서드임팩트를 목격한 네르프 관계자들의 유배 당시 벌어졌던 상황같은데, 에바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증거들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제거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Khara/ GAINAX. All Rights Reserved.
또 한가지는 이미 센트럴 도그마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측되는) 서드임팩트의 현장에 리리스의 본체와 겐도의 뒤에 떨어져 있던 리리스의 머리가 레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처럼 리리스와 융합해 서드임팩트의 도화선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 Khara/ GAINAX. All Rights Reserved.
마지막 하나는 터미널 도그마의 LCL 탱크안에 있던 레이가 바로 ‘뽀까뽀까’레이일 가능성. 바깥쪽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교복차림의 레이를 보며 놀라는데, 이 레이의 정체가 어떤 레이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추측만 할 뿐이다. 여하튼 서,파에서 그토록 사랑스럽게 변모했던 레이를 볼 수 없다는 건 여러모로 아쉽다.
ⓒ Khara/ GAINAX. All Rights Reserved.
4.이카리 신지 |
전편에서 능동적이고 열혈남아로 거듭났던 신지는 이번 작품에서 극도의 혼란과 더불어 카오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포스임팩트를 유발하는 등 오히려 TV판보다도 더 궁상맞은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물론 14년만에 깨어나는 바람에 다른 이들과는 달리 홀로 성장하지 못한 채 14년전의 그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점을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은 가능하다.
ⓒ Khara/ GAINAX. All Rights Reserved.
궁금한 점은 왜 신지는 14년간이나 에바 초호기 안에 있어야 했는지, 초호기는 왜 우주공간을 떠돌고 있는지, 또 진정한 서드임팩트가 아닌 니어 서드임팩트의 원흉인 그를 왜 아스카를 비롯한 뷔레의 크루들은 증오하는지, 초호기와의 싱크로율이 제로가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체 데이터가 제3의 소년과 일치한다’라는 대사의 뉘앙스가 풍기듯 이번 작품의 신지가 신지의 오리지날인지도 미지수다. 아야나미 레이도 대량생산하는 놈들이니…
5.에반게리온 마크6 |
원래 카오루가 조종했던 마크6는 서드임팩트의 폭심지인 센트럴 도그마에서 목이 잘린 리리스와 함께 롱기누스의 창으로 봉인된 상태로 발견된다. 예고편에서는 마크6가 센트럴 도그마로 강하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인간에게 개조당해 이용당했다’는 카오루의 대사로 짐작컨데, 자율형으로 개조되어 엔트리플러그 없이 단독행동이 가능해진 마크6가 어떤 경위로인가 사도화되어(정확히는 사도가 이식되어) 센트럴 도그마로 하강, 리리스와 접촉해 서드임팩트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이 과정에 카오루는 개입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포스임팩트의 트리거가 될 거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Khara/ GAINAX. All Rights Reserved.
또 하나의 가능성은 어떤 연유로 각성한 리리스를 봉인하기 위해 마크6가 센트럴 도그마에 진입, 리리스의 목을 자르고 창으로 봉인했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예고편에서 마크6가 창을 들지 않고 내려갔다는 점에서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6.루프설 |
[에반게리온: 서]에서부터 거의 확정적으로 인식되고있는 루프설의 증거들이 이번에도 여전히 발견된다. 특히 카오루가 죽기 직전 "우린 또 만날 수 있어" 라든가 "시작과 끝은 같단 말인가”라는 식의 발언은 이 세계가 계속 반복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최종화의 제목으로 거론되는 [シン•エヴァンゲリオン劇場版:||]의’:||’는 마침표로 해석해야 할지 아니면 도돌이표로 해석해야할지 의견이 분분한 상태. 만약 도돌이표라면 돌고 도는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에반게리온의 철자는 이례적으로 TV판의 그것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 Khara/ GAINAX. All Rights Reserved.
7. SDAT의 28번 트랙 |
[에반게리온: :파]의 담론에서 이미 거론했듯이 25, 26번 트랙을 거쳐 시리즈 중 최초로 27번 트랙으로 넘어갔던 신지의 SDAT는 이번 작품에서 28번 트랙까지 재생된다. 그러나 이내 신지는 SDAT를 내던져버리고 카오루와의 대화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포스임팩트를 경험하게 된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신극장판의 전개임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대목.
8.사라진 인물들 |
14년 후의 사건을 다룬 작품이어서인지 중간에 사라진 인물들이 너무 많다. 우선 제레의 계획에 가장 깊숙히 파고든 카지는 Q의 예고편에서 한컷 등장하지만 이번 작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동료들로 있는 것으로 보아 뷔레의 결성 직전 혹은 직후까지는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로선 사망한 상태로 추측. 아마도 신지가 일으킨 니어 서드임팩트나 서드임팩트에 의해 희생되었다기 보단 TV판의 설정대로 네르프나 제레측에 의해 암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 Khara/ GAINAX. All Rights Reserved.
또 하나 사라진 인물중 하나는 신지의 친구이자 TV판에서 4th칠드런으로 설정되었던 스즈하라 토우지다. 이번작에서는 신지를 마크하는 인물로 토우즈의 동생인 사쿠라가 등장하는데, 아마도 동생인 그녀가 뷔레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오빠가 없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도 어떤 신변의 이상이 생기지 않았을까. 특히나 신지가 네르프에서 지급받은 교복에 토우지의 이름이 붙은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토우지가 지난 14년 사이에 어떤 이유에서인가 사망, 또는 서드임팩트로 인해 LCL화 되었거나 인피니트가 되다 만 존재로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 Khara/ GAINAX. All Rights Reserved.
가장 궁금한건 [에반게리온]의 진정한 아이돌 펜펜의 실종. 궁금해라… 궁금해….
ⓒ Khara/ GAINAX. All Rights Reserved.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 ㅅ,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픽: 숲속의 전설 - 숨이 막힐 듯한 녹색의 비주얼 (21) | 2013.08.13 |
---|---|
소녀이야기 - 모두가 알아야 할 위안부의 진실 (47) | 2013.07.25 |
에반게리온: Q - 다시 마니아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다 (54) | 2013.04.27 |
소중한 날의 꿈 - 디테일로 완성시키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저력 (20) | 2011.09.26 |
[블루레이] 은하철도 999 극장판 박스셋 - 안녕, 내 청춘의 환영이여 (76) | 2011.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