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이 20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국산 애니메이션의 흥행기록을 갱신했다. 참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봤다는 점에서도 희망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기분좋은 일이 있었던 반면, 씁쓸한 일도 있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보다 한발 먼저 개봉한 [소중한 날의 꿈]은 무려 11년간 10만여장의 그림을 그려 완성시킨 작품이지만 너무나도 삽시간에 개봉관에서 사라진 비운의 작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직 잘하는 게 달리기 뿐인 소녀 이랑은 한 릴레이 경기에서 난생 처음 역전을 당한다. 순간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녀는 그만 고의로 넘어져 자신의 패배를 무마시키고 만다. 그리고는 평범한 일상에 묻혀 존재감없는 삶으로 돌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서울에서 온 전학생 수민과 친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는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설레임이 찾아온다. 라디오를 고치려고 전파상을 갔다가 만난 같은 학교 남학생 철수는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엉뚱한 아이지만, 순수하고 남다른 목표의식이 뚜렷한 소년이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고 언제나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던 이랑의 첫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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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의 [추억은 방울방울]이나 [바다가 들린다]처럼 한국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서정성을 표방한 [소중한 날의 꿈]은 아직까지 아동층을 타겟으로 삼는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특성과는 다소 거리감을 둔 소재를 택했다. 오히려 감독 자신의 자전적 경험에 토대를 둔 이야기이니만큼 시대적 배경은 영화 [러브 스토리]가 인기를 끌던 1970년대다. 따라서 [소중한 날의 꿈]에 관심을 가질만한 관객층은 문화소비에 한창 관심을 가질 2,30대라기 보다는 40대 이상의 장년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세세한 소품과 풍경, 그리고 그 당시의 정서를 포괄적으로 꼼꼼히 체크해 화면으로 옮긴 [소중한 날의 꿈]은 과거의 추억을 기억하는 장년층의 관객들에게 확실히 어필할만한 작품이다. 공병우 타자기나 일회용 비닐우산, 원더우먼의 오프닝 등 1970년대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재현해 낸 작화의 섬세함은 기대 이상이다.
추억속의 시간으로 관객을 인도한다는 사실 외에 뚜렷한 갈등구조나 이벤트가 풍부하지 못한 점은 이 작품을 다소 심심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소녀적 감수성과 풋풋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구성력은 뛰어난 편이다. 작화와 따로 노는 듯한 성우들의 더빙이 다소 거슬리긴 하나 이만하면 근래 나온 한국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톱클래스의 퀄리티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빵빵터지는 유머는 기대치 못한 보너스다.
안타깝게도 상영관 확보에 실패한 [소중한 날의 꿈]은 관객들의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마저 부여받지 못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가장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현실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멋진 도약을 기대했던 입장으로서 무척이나 마음아프다. 이처럼 성실하게 만든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을 그 날까지 한국 애니메이션이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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