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바람의 검심]이 국내에 개봉되었습니다. 영화에 사용된 와츠키 노부히로 작가의 원작만화는 국내에서도 모 주간지에 연재되면서 큰 인기를 모았었죠. 다소 왜색이 짙다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속죄라는 테마로 구원을 찾아 방랑하는 칼잡이 켄신의 이야기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오히려 일본에서 영화화가 진행된다고 했을 때 모 사이트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지요.
실제로 [바람의 검심] 실사영화는 우려와는 달리 완성도가 꽤 높은 작품이 되었습니다만, 이렇게 애니메이션이 영화로 나올때마다 팬들의 원성이 자자한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영화산업의 구조상 어떤 식으로든 이윤 창출이 가능한 일본의 경우에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일 없이 저예산 코스프레 같은 영화들을 찍어내는 경우도 많아서 원작의 좋은 이미지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만화의 왕국인 일본이지만 아직 영화에 있어서는 편차가 심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눈뜨고 못봐줄만한 괴작들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이 시간에는 어떤 만화들이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56년 세계 최초의 거대로봇을 등장시킨 요코야마 미츠테루 원작의 ‘철인 28호’는 토가기 신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과거 흑백시절 TV시리즈로도 제작된 바 있지만 CG가 사용된 극장판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었지요. 아베 히로시나 아오이 유우 등 인기스타가 출연하는 이 작품은 아쉽게도 [트랜스포머] 같이 화면의 경이를 보여주는 로봇 영화가 아닙니다.
원통형의 거대로봇 철인 28호와 악당 로봇 블랙옥스가 천천히 치고받는 단순한 모습이 액션의 전부이며, 실제로는 주인공 소년인 쇼타로의 내면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이지요. 장르의 해석면에서 신선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로봇물 본연의 맛을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망스런 작품인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최종병기 그녀]는 타카하시 신의 SF만화를 영상화한 작품인데요, 350만부의 판매고를 갱신하는 초히트를 기록한 이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많은 이들의 눈물을 쏙 뺀 최루성 멜로물이지요. 순정만화체의 그림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여친이 최종병기가 되어 나타난다는 충격적인 설정은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큼 화제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한국의 박흥식 감독이 영화화를 진행하려다가 판권문제로 일본에서 제작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다행인 것이 이 작품은 캐릭터 싱크로에 완전히 실패한데다 2시간의 러닝타임에 원작의 에피소드를 모두 우겨넣는 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줄거리 요약 형식의 팬무비스런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개봉첫날 관객 54명의 대기록(?)을 세웠다고 하니 일본내에서도 완전히 망한 셈이지요.
그런가 하면 우라사와 나오키의 걸작 스릴러 [20세기 소년]의 영화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의 봉준호 감독도 눈독을 들인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이 3부작 형태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원작과 비슷한 느낌의 배우들로 캐스팅을 확정짓고 원작에 충실한 스토리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하지만 원작에 충실한 영화라는 것이 그냥 생각하면 괜찮아 보여도 그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만화적인 캐릭터 또한 실사로 구현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만화같은 영화가 될 때 그 영화는 우스꽝스러워 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덕분에 [20세기 소년]은 마치 오타쿠들이 코스프레 놀이를 하듯 한없이 가벼운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오바타 타케시의 베스트셀러 ‘데스노트’는 사신의 노트를 가진 키라라는 인물이 그 노트를 이용해 자신의 정의를 실천한다는 명목으로 살인을 벌인다는 소재의 심리 스릴러로서 워낙에 독특한 설정과 심장을 옥죄는 서스펜스로 인해 큰 인기를 모았었죠. 영화판은 총 3편이 제작되었는데, 그 중 키라와 탐정 L의 대결을 다룬 1,2편에 이어 L을 전면에 내세운 스핀오프 [데스노트 L: 새로운 시작]편이 만들어졌습니다.
1,2편은 나름 각색을 잘 시도해 원작과는 다른 결말로 나름 인기를 끌었는데요, 문제는 욕심을 부려 만든 [L: 새로운 시작]편이었습니다. 키라와의 결전 직전의 23일을 다룬 이 작품은 원작과는 전혀 동떨어진 내용에 ‘데스노트’와는 전혀 관계없는 그저 L이 등장하는 영화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스핀오프에 지나지 않았죠.
그래도 이렇게 실패한 영화들만 있는건 아닙니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경우에는 좀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니노미야 토요코의 베스트셀러 음악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우에노 주리라는 영리한 배우의 기막한 연기가 캐릭터 싱크로율을 극한으로 이끌어냈던 드라마를 바탕으로 ‘최종악장’이란 형태의 완결편을 영화로 내놓는 방법을 썼습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안방극장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배우들을 그대로 극장에서 만나게 되었고 만화에서 영상으로 옮겨지는 괴리감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전략을 통해 그간 실패했던 영화들의 전철을 피할 수 있었지요. 더군다나 원작에서 ‘또다른 주연’ 이었던 주옥 같은 클래식 음악을 실사판에서는 실제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을 얻어 영화화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외에도 일본에서 만화를 영화로 옮긴 사례는 무척 많습니다만 성공사례는 극히 드문 편입니다. 오히려 이 분야에서는 [미녀는 괴로워]나 [올드보이], [더 게임] 등 원작의 재해석을 통해 호평받은 한국의 영화계가 훨씬 더 많은 노하우를 가진 셈이니 나름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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