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한 잡담

블록버스터의 그늘, 목버스터

페니웨이™ 2013. 1. 16.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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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일종의 유행입니다. 어느 특정 장르가 흥행을 하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그 흐름을 따르기 마련이지요. 가령 최근 헐리우드의 트렌드는 몇 년째 슈퍼히어로물이 대세를 이루고 있고, 여기에 프리퀄이니, 리부트니 하는 현상 또한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흐름 자체를 따라하는건 사실 ‘돈’을 추구하는 영화산업의 특성상 누구도 막을 수는 없는 일인데요, 약삭 빠르게도 단순한 흐름보다는 ‘특정 영화’를 그대로 벤치마킹하는 이른바 ‘아류작’을 찍는 현상도 비일비재합니다.

일례로 제임스 카메론이 역대 최고의 제작비를 투입했던 [어비스]의 경우 [레비아탄]이나 [딥 식스]같은 해양SF물로 인해 신비성이 사라지는 바람에 흥행에도 크게 실패한 적이 있는데요, 이처럼 아류작이 본작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실제로 1976년 존 길러민 감독이 [킹콩]의 리메이크 영화를 개봉할 당시 제작사측에서는 킹콩의 성별을 여자로 바꿔서 제작한 짝퉁 영화 [퀸콩]이 흥행에 악영향을 줄것이라고 판단해서 [퀸콩]의 상영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 한동안 영화사 창고에 처박혀있는 신세가 된 적도 있지요.

최근에는 이러한 짝퉁 아류작을 일컬어 ‘목버스터 Mockbuster’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요, 말하자면 메이저영화사의 블록버스터급 화제작을 저예산으로 흉내낸 영화들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사실 이 목버스터의 기원을 찾아가 보자면 최근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요. 헐리웃에서는 유명한 B급영화 제작자 로저 코만의 경우도 엄밀히 보면 이러한 목버스터 영화들로 인해 성공가두를 달린 인물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가령 [지구가 정지하는 날]이 개봉되면 [세상이 끝장난 날]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죠스]가 히트를 치니까 [피라냐]를 만드는 식이었지요.

한국도 예외는 아니지요. 한국은 특히 애니메이션 쪽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 졌습니다. 예를 들어 헐리웃 영화 [트론]을 [콤퓨터 핵전함 폭파대작전]으로 바꿔서 만든다거나 [이티]를 [황금연필과 외계소년]이나 [유에프오를 타고 온 외계인] 등으로 아이디어를 빌려 만든 애니메이션들이 속속 개봉되곤 했지요. 물론 한국의 경우는 단순한 목버스터라기 보단 저작권 침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요즘에는 아예 이런 목버스터만을 제작하는 전문 제작사가 따로 등장해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는데요,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어사일럼이라는 회사입니다. 국내에도 일부 마니아들에게는 잘 알려진 이 회사는 2007년 [트랜스포머]를 흉내낸 [트랜스모퍼]라는 목버스터로 단숨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요.

그 이후에도 [나는 전설이다]를 베낀 [아이 엠 오메가],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를 베낀 [에이리언 대 헌터]. [셜록 홈즈]를 흉내낸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등 그야말로 제목에서부터 설정까지 발군의 센스를 보여주는 목버스터들을 찍어냈습니다. 이러한 어사일럼의 전략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의외로 잘 먹혀서 메이저 영화사들의 홍보전략에 편승에 그야말로 돈 안들이고도 관객의 호기심을 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이런 목버스터의 범람에 위기감을 느낀 것일까요? 얼마전에 개봉한 피터 잭슨의 [호빗: 뜻밖의 여정] 또한 어사일럼사의 표적이 되었는데요, 당시 어사일럼은 [에이지 오브 호빗]이라는 제목의 목버스터를 DVD로 출시해 한몫을 챙기려다 [호빗: 뜻밖의 여정] 제작사인 워너 측에서 ‘호빗’이라는 단어에 대한 저작권 침해를 들어 출시를 저지당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어사일럼은 이에 굽히지 않고 [클래쉬 오브 더 엠파이어스]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영화를 출시했지요. 비록 호빗효과에 편승하는데는 실패했지만 호빗 제작사에게 소송을 당했다는 화제성으로 또 한번 관심을 끌었으니 참 영리한 작전인 것 같지 않습니까?

어찌보면 얌체같이 보이긴 하지만 메이저 영화나 개봉작을 보지 못할 입장에 있는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시켜 줄 것 같은 느낌을 일으키는 목버스터 시장은 나름대로 B급 문화의 또다른 묘미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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