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한 잡담

만추 연대기

페니웨이™ 2012. 10. 1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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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늦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10월입니다. 가을이라면 역시나 쓸쓸한 로맨스를 느낄 수 있는 멜로물이 제격인데요, 이번 시간에는 한국 멜로영화사의 큰 획을 그은 작품 [만추]의 연대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사실 [만추]하면 현빈, 탕웨이 주연의 2011년도 작품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만추]의 줄기를 따라가다보면 무려 반세기 전인 1966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6년에 이만희 감독이 만든 [만추]는 모범수로 외박을 허가받은 한 여죄수와 형사에게 쫓기는 위조지폐범의 짧고도 강렬한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신성일과 문정숙의 커플연기가 돋보였던 이 작품은 대사나 스토리 위주의 전개를 탈피하고 이미지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성을 보여주어  멜로장르의 테크닉적인 면에서 전환점을 마련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걸작의 원본 필름이 소실되어 저를 비롯한 후대 사람들은 감상할 방법이 없다는 건데요, 그만큼 우리 문화유산의 관리허술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느끼게 되는 부면입니다.

어찌되었건 1966년작 [만추]의 완성도는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모양입니다. 이 영화의 첫번째 리메이크작이 한국에서가 아니라 일본에서 이루어졌다는 건 의미심장한 사실이죠. 사이토 코이치 감독의 1972년작 [약속]은 [만추]의 각본을 쓴 김지헌이 일본영화에 걸맞게 컨버전한 시나리오를 훗날 [은하철도 999] 극장판의 각본을 쓴 시시모리 시로가 각색한 작품입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촌스러운 느낌의 소품이 되어버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이 좋았던 때문인지 신인급이었던 사이토 코이치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평단을 주목을 받는 유망주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합니다.

1975년작 [육체의 약속]은 한국의 장르영화를 개척한 김기영 감독이 리메이크한 에로틱 버전입니다. [하녀]와 [화녀], [충녀]로 이어지는 한국형 스릴러의 가능성을 보여준 김기영 감독의 테크니션적인 면모를 기대해볼법한 영화이지만 실상 원작에서 품어져 나오던 고독하고 탐미적인 느낌은 거세된 채 관능적인 신파극조로 바뀐 작품입니다. 이 김기영 버전에서는 김지미와 이정길이 각각 주인공을 맡아 열연을 펼쳤지요.

김수용 감독이 1981년에 내놓은 [만추]는 리메이크된 [만추]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입니다. 사실상 1966년의 원작이 소실된 상황에서 관객들에겐 가장 친숙한 작품이기도 했지요. 누벨바그를 중심으로 한 유럽 현대영화의 기법을 한국적인 정서로 녹여낸 문예영화 스타일의 대가로서 어쩌면 [만추]는 그러한 김수용 감독의 성향에 방점을 찍는 작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원작의 특징인(것으로 알려진) 절제의 미학과 영상화법은 1981년작에서도 여전한데 이를 통해 관객들은 사라진 1966년 [만추]의 정서를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여주인공을 맡은 김혜자는 자신의 첫번째 스크린 데뷔작을 통해 마닐라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1년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공간적 배경을 저 멀리 미국의 시애틀로 옮겨 한국인 청년과 중국인 여성의 애절한 로맨스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서로 언어적 소통이 되지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짧은 기간 강렬한 사랑을 나눈다는 설정은 원작이 지녔던 주제의식과 감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지요. 잔잔함과 늦은 가을의 을씨년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로 탕웨이의 연기가 무척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사이드 포켓으로 손을 쑤셔넣은 현빈의 모습도 사랑스럽고 말이죠.

이렇게 총 5편의 영화로 제작된 [만추]를 살펴보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떤 [만추]가 가장 맘에 드시는지요? 한국 멜로영화의 대표작 [만추]와 함께 겨울로 넘어가는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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