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128
1970년대 헐리우드 영화계의 인기있는 장르물 중 하나는 재난물이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동물을 앞세운 일련의 동물재난물이 한동안 붐을 이룬 적이 있습니다. 그 원류를 따져 올라가다보면 알드레드 히치콕의 [새]라고 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가 큰 영향을 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겠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 중에는 쥐떼들의 공격을 소재로 한 [벤], 달팽이의 습격을 다룬 [슬러그의 저주], 벌들의 역습인 [스웜] 등 실로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심지어는 한국에서도 [악어의 공포]라는 영화를 통해 이 장르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리뷰 바로가기)
특이한 것은 [악어의 공포]가 세계 최초의 악어 재난물이었다는 점인데요, 완성도를 생각하지 않고 보면 이렇게 ‘세계 최초’를 주장할만한 한국 작품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 역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영화로서 바로 [인사대전]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가히 세계 최초의 ‘뱀 재난영화’라고 봐도 무방한 영화인데요, 외국의 컬트마니아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거론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 신한영화. All rights reserved.
사실 이 작품은 한국, 홍콩 합작 형식으로 제작된 작품이어서 온전히 한국 영화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감독으로는 ‘각시탈’의 극장판인 [철면객]을 비롯, [산동물장수], [흑룡], [소림사 십대장문] 등 한국식 권격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김선경이 한국측 감독으로 메가폰을 잡았고, 홍콩측에서는 장기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또한 진수경, 김애경 등의 한국배우들과 (트위스트 김을 닮은) 위평오 같은 낯익은 홍콩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고 있지요. 영화의 배경이나 배우들의 비중으로 따지면 홍콩영화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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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먼저 [인사대전]의 간단한 스토리를 살펴보겠습니다. 한 홍콩인 건축 사업가가 신축중인 건설현장에서 일련의 뱀떼들이 무더기로 발견이 됩니다. 인부들은 술렁거리고 불길해하지만 사장이 직접 포크레인에 탑승, 구덩이의 뱀들을 대학살하자 덩달아 인부들도 삽이나 곡괭이를 동원 뱀들을 참살하는 훈훈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 날 이후 아파트 공사현장 인근에서 뱀들이 출몰해 인부들이 하나 둘 살해당하자 이번에는 사장이 뱀 사냥꾼들을 동원해 몽구스를 방사, 역시 뱀떼들을 끔살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뱀전문 사냥꾼들도 기피하는 큰 뱀이 출현하자 사장은 뱀잡는 도사를 섭외, 큰 뱀의 퇴치를 도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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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사투끝에 뱀도사는 큰 뱀을 잡는데 성공하지만 그 역시도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이걸로 안심하는 건설사 사장. 그러나 큰 뱀은 한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였으니… 공사가 완공되고 아파트 거주민들의 입주파티가 시작되던 날, 살아남은 큰 뱀 한마리가 이끄는 뱀들의 특공작전이 시작되고, 아무것도 모르던 입주민들은 난데없는 뱀의 홍수에 비명횡사하게 되는데…
보시다시피 [인사대전]은 전형적인 재난영화의 내러티브를 채용, 인간의 탐욕이 부른 대형참사극에 뱀이라는 독특한 객체를 집어넣어 만든 작품입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에게 경종을 울린다는 차원에서 오늘날에 사용되어도 제법 쓸만한 스토리 구조를 지녔지요.
그러나 자연보호가 주제라고 하기에는 웃기는 것이 [인사대전]의 실체가 뱀이 인간을 학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뱀을 학살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때가 1983년임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에서 소외된 장르물에 고퀄리티의 특수효과 따위가 사용될리가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인사대전]에 사용된 뱀들이 모두 ‘진품’임을 의심할 수 없는데요, 이 진짜 뱀들이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참혹 그 자체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심약자 관람불가)
포크레인으로 뭉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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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밟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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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탕으로 끓여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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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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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 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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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뜯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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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구스가 머리를 뽀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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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살아있는 뱀의 거죽을 벗겨서 내장을 분해하고,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꺼내는 등 온갖 잔인한 장면들을 실제 뱀을 이용해서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엽기적이지요. 아마 요즘 같은 시대에 [인사대전]이 나왔다면 동물보호단체에서 고소크리에 난리가 났을 겁니다.
바꿔 말하면 무지의 시대였기에 나올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영화로서 영화사를 통틀어 실물 뱀들이 가장 많이 동원된 작품일 겁니다. 이보다 앞서 개봉한 [레이더스]에서도 기록적인 수의 뱀들이 등장하지만 제 생각엔 아마도 [인사대전]에 등장하는 실물 뱀의 숫자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으로 이 정도로 많은 뱀이 동원되어 실제로 살상당하는 영화는 두 번 다시 만들어지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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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재난영화치고 딱히 원톱이라 할 수 있는 주인공이 없다는 것도 큰 특징인데요, 말 그대로 [인사대전]은 뱀들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홍콩영화 특유의 과장법과 스피디한 연출이 더해져서 뱀들의 습격장면은 무척이나 정신없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뱀들은 그야말로 날아다닙니다. 문자 그대로 뱀이 휙 날아서 사람들을 공격한다니까요. 아마도 스탭들이 살아있는 뱀을 배우들에게 막 집어 던진 듯. -_-;;
여튼 뭐 [인사대전]은 뱀의 역습을 소재로 한 영화로서는 해외에까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고 뱀떼의 규모면에서는 거의 블록버스터급인 작품입니다. 심지어 1985년 크리스토퍼 미첨이 출연한 헐리우드 B급영화 [서펜트 워리어 The Serpent Worriors]에서는 [인사대전]의 장면들을 가져다 재활용하는 대담함을 보여주기도 했을 정도니 이 영화에 쓰인 뱀떼샷만큼은 실로 기념비적인 물량공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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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근래에 나온 사무엘 L. 잭슨 주연의 [스네이크 온 어 플레인]에서도 비행기 안에서 뱀떼의 공격을 받는 내용을 다룬적이 있습니다만 CG로 만든 뱀떼랑 뒤엉키는 척 하는 것과 실제 수천마리의 뱀떼를 뒤집어쓰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나… 자고로 아날로그가 최고입니다. 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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