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열전(續篇列傳)

속편열전(續篇列傳) :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 - 사라진 태권브이의 전설을 찾아서

페니웨이™ 2012. 3. 1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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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열전(續篇列傳) No.21







 

MBC TV를 통해 방영된 [마징가 제트]의 영향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로봇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무렵인 1976년 3월, 국내 일간지 신문을 통해 SF만화영화의 국내제작에 대한 기사가 실립니다. 신예 지상학 작가의 시나리오와 [황금철인]의 제작 스탭으로 참여했던 김청기 감독이 연출을 맡게 된 이 작품은 '반공물'이란 제작목적하에 당국의 검열을 통과, 서울동화와 유프로덕션의 전격 합작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여름방학철인 1976년 7월 24일에 개봉해 서울관객 13만 3600명을 돌파하며 그 해 극장가 박스오피스를 강타하는 이변을 일으킨 주인공은 바로 [로보트 태권브이]였습니다. 
 

ⓒ 유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로보트 태권브이]의 검열대본 표지. 한문으로 '아동반공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계몽물'이라고 분명히 적혀있다. 이는 [로보트 태권브이]가 엄연한 반공 애니메이션의 계보에 있다는 증거이지만 실상은 검열의 헛점을 피하기 위한 작은 꼼수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카프 박사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굳이 '붉은 제국'이라는 집단을 일으킨다는 점이나 태권도가 주 무기인 로보트와 조종사가 등장한다는 점은 모두가 유신영화법의 정책적 기조를 역으로 이용해 상대적으로 검열을 느슨하게 받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오늘날에도 마징가 제트의 표절시비와 국내 창작애니메이션의 상징성 사이에 늘 뜨거운 화두가 되는 [로보트 태권브이]이지만 정작 표절문제보다 더욱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사회적 배경이 아닐까요.

ⓒ (주) 로보트 태권브이. All rights reserved.


이렇게 흥행에 성공한 [로보트 태권브이]의 제작진은 서둘러 속편의 제작에 착수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시기의 애니메이션 제작환경이 완전 생노가다였다는 것이었지요. 사실 [로보트 태권브이]만 하더라도 여름방학 개봉에 맞춰 밤샘작업을 하느라 메리와 철의 대결이 담긴 씬에서는 작화 퀄리티가 극도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견되는데, 잠이 모자라 '꾸벅꾸벅 졸면서' 작업을 했다는 김청기 감독의 증언처럼 여건이 열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속편인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은 바로 당해 겨울방학 개봉이라는 엄청난 목표를 세우고 초스피드 제작에 들어가는데요, 작화담당만 70여명이 달라붙어 철야작업을 진행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강행군이었을겁니다. 부족한건 시간뿐만이 아니었죠. 제작비와 제작도구의 절대적인 부족도 문제였습니다. 특히 셀의 경우 워낙 귀한 물건이다보니 1편에서 사용되었던 셀을 재활용하기 위해 셀을 세척하는 전담 부서를 만들어 작업을 했다는건 정말 기네스북에나 실릴만한 일이었죠. 1편의 경우도 제작기간은 6개월이 소요됐지만 전체 프로덕션 기간이 1년 이상 걸렸다는 점을 보면 반년만에 모든 공정이 완료된 속편의 스피디함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이렇게 제작기간 5개월만에 만들어진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은 12월13일 중앙극장에서 개봉됩니다. 1년안에 두 편의 태권브이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된 아이들은 신이 날 수 밖에 없었겠지요. 골목마다 '기운 센 천하장사~'로 시작되는 [마징가 제트]가 아니라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로 시작되는 [로보트 태권브이]의 주제가가 들려오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 (주) 로보트 태권브이. All rights reserved.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은 반딧불을 쫓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노래하자 해설자의 내레이션이 이어지지요. 잉카문명이 남긴 거대한 상형문자, 치치카카 호수의 '태양의 문' 등 지구상의 미스테리와 외계인의 존재를 암시하는 해설은 변사가 들어간 초기 한국 영화의 포맷을 응용한 것으로서 전편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 (주) 로보트 태권브이. All rights reserved.


1편의 하이라이트를 요약한 오프닝 크래딧이 끝나면 이제 본격적인 내용이 전개되는데,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의 주 스토리는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알파별과 그 별의 지배자인 녹의 여왕, 그리고 수하인 맥스장군과 로보트군단에 맞서는 태권브이의 활약입니다. 전편에서 기계심장을 남기고 숨을 거둔 메리가 작은 몸으로 되살아나며, 로보트군단의 일원인 피코가 나중에는 지구인의 편으로 돌아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요.

ⓒ (주) 로보트 태권브이. All rights reserved.


총 3만7000장의 원화와 총제작비 3500만원(이 부분에서는 다소 논란이 있는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청기 감독은 3500만원이라고 한 반면, 개봉당시 신문사 등의 언론에서는 4500만원이라고 소개됨)이 투입된 전편과는 달리 촉박한 일정과 감액된 제작비를 가지고 만든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은 약 6만명의 관객을 동원(비공식 기록에는 9만명까지 동원했다고 추정)하며 사실상 1편의 흥행을 뛰어넘는데는 실패합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로보트 태권브이]의 흥행성공에 자극을 받아 개봉된 또 한편의 로봇 애니메이션 [철인 007]과의 흥행대결도 무시못할 변수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지요.

[로보트 태권브이] 1편을 개봉했던 대한, 세기극장에서 [철인 007]를 상영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에 맞설 기대작이었음을 방증합니다. 한 기록에서는 [철인 007]이 7만8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에 판정승을 거뒀다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여튼 알려진 사실과는 달리 야심작이었던 속편이 기대만큼의 성적을 낸 것은 아니었던건 분명합니다. 그만큼 작품이 가진 한계가 명확했다는 뜻도 되고 말이죠. (철인 007 리뷰 바로가기)


문제는 이 작품이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VHS를 비롯한 어떠한 형태로도 미디어 시장으로 출시된 바가 없어서 공중파에서 방송된 사실을 제외하면 일반인들이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은 시리즈 중 최고의 완성도를 지닌 작품으로 미화되고, 인식되어 왔지요. 2001년 춘천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상영한 이후 현재까지도 베일에 싸인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서 온전한 의미에서의 재평가가 꼭 필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막상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의 실상을 들여다 보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부 장면에서 로토스코핑 기법을 사용한 풀애니메이션을 선보인 전편에 비해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의 전체적인 작화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거든요. 1편에서 사용된 뱅크샷을 여러 장면에 돌려가며 재활용을 하고 있으며, 이야기의 연결구조나 플롯도 그리 매끄럽지 않습니다.

일례로 일본인 검객 마사오가 훈이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부분은 매우 생뚱맞습니다. 분명 훈이에게 재대결을 신청하는 대목이지만 정작 첫번째 대결장면은 영화상으로 나오질 않습니다. 김청기 감독의 일화에 따르면 이는 당시 장발단속령에 의한 검열로 인해 벌어진 웃지못할 해프닝이었는데, 극 중 첫번째 대결에서 바람에 긴 머리를 휘날리는 마사오의 장면이 잘려나가는 바람에 그 씬을 통째로 들어내게 된 것이지요.

ⓒ (주) 로보트 태권브이. All rights reserved.


더욱이 후반부 팔, 다리가 따로 분리되어 공격하는 피코의 로봇을 태권브이가 방어하는 장면에서 태권브이의 공격으로 파괴된 팔, 다리가 다음 컷에는 버젓이 등장한다든지 하는 편집 오류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캐릭터 디자인도 전편에 비해 진부함이 느껴지는데요, 그녀의 심복인 맥스 장군은 머리 스타일만 바꾸면 전편의 말콤 사령관과 90% 이상 닮은꼴입니다.

ⓒ (주) 로보트 태권브이. All rights reserved.


다만 5개월이라는 제작기간의 물리적 한계와 애니메이터들이 경험했을 혹독한 환경을 감안해 보면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의 퀄리티는 그리 무시할만한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가능할 겁니다. 더군다나 태권브이가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무대로 활약한다는 점은 표절의 대상이 되었던 [마징가 제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설정이었지요. 조그맣던 메리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인간의 몸을 갖게 된다는 설정 또한 당대 SF만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판타지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튼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은 그렇게 극장에서 내려간 이후에도 많은 뒷 이야기를 남기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필름보존은 거의 아웃 오브 안중인 상태인데다, 비디오로도 출시되지 않았으니 본의아니게 이 작품은 레어 중의 레어급 아이템이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한 상술도 유독 극성을 부리게 되었지요.  2001년 춘천애니메이션센터에서 상영되었던 필름의 보관상태만큼은 현존하는 태권브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태권브이 복원 및 발굴이 한창이던 2000년대 초반에는 해결되지 않은 복잡한 판권문제로 결국 상품화되지 못했습니다.

ⓒ 춘천애니메이션 센터. All rights reserved.


이후에도 사라진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의 존재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동분서주했는데, 몇년전에는 이 작품이 스페인어판 Bootleg DVD로 출시된 사실을 발견, 몇몇 사람들이 이 판본을 입수해 실체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 저도 글을 쓰기 위해 이 판본을 입수했다는 몇몇 분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나, 무려 복사 시디 한장에 40만원에 육박하는 거금을 내놓으라는 둥 말도 안되는 조건을 요구하더군요. -_-;; 장사 속으로 멍드는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 아버지 세대의 전설적인 애니메이션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루 빨리 정식으로 태권브이 클래식 4부작이 나와줬으면 합니다.

 

P.S

1.참고로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의 개봉에 뒤이어 출간된 김형배 화백의 동명 코믹스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데, 코믹스 버전은 애니메이션과 상당히 다른 스토리와 구성을 보여줍니다. 코믹스 버전은 오리지널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의 검열전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더 가까운 스토리를 보여주며, 이후 김형배 화백의 코믹스판 [로보트 태권브이] 시리즈는 애니메이션보다도 더 큰 인기를 누리게 되지요.
 
2.훈이의 성우를 맡았던 김영옥씨는 2편에서 안정훈씨로 교체됩니다.

3.노파심에서 강조합니다만 절대 스페인판을 보유하고 있다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 분들을 통해 물건을 구입하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금액만큼의 가치가 있는 자료도 아닐뿐더러 사실인지는 반신반의하고 있으나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주)로보트 태권브이 측에서 현재 복원작업을 진행중이라는 답변을 받은 적이 있으니 언젠가는 정식으로 출시될 거라 기대해 봅니다.


 *  영상공유에 대한 문의 및 요청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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