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열전(續篇列傳) No.19
2008년은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지구촌 이벤트가 있던 해였습니다. 아무래도 중국에서 열리는 축제이다보니 상업계의 마케팅도 그쪽으로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지요. 헐리우드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동양적인 특징을 오락물에 가장 잘 최적화 할 수 있는건 역시나 중국 무술, 즉 쿵푸였습니다. 성룡과 이연걸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포비든 킹덤]이나 [쿵푸 팬더]같은 작품들은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된 베이징 마케팅의 일환이었죠. 전자의 경우 중화권 최고의 액션스타 두명이 출연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시너지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반면, [쿵푸 팬더]는 기대를 넘어서는 완성도를 보여주며 [슈렉] 이후 드림웍스를 대표하는 히트작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특히 [쿵푸 팬더]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헐리우드 제작물 가운데서도 동양무술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사실 동양무술에 대한 신비감을 표현한 서양영화들은 수없이 많이 제작되었습니다만 [황비홍]에서 그 멋진 무영각을 선보였던 이연걸조차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그저 그런 진부함을 반복할 따름이니, 무술영화에 대한 서양인 연출자들의 이해도가 얼마나 뒤떨어진 것인지는 굳이 설명해도 될 정도이지요.
ⓒ DreamWorks Animation. All rights reserved.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실사물이 아닌 애니메이션의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과거 홍콩 무술영화 시대의 메타포를 그대로 합축하고 있는 [쿵푸 팬더]의 존재감은 가히 폭발적인 적이었습니다. 마크 오스본과 존 스티븐슨 감독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호금전의 무협물에서부터 성룡의 [취권]을 거쳐, 오늘날 주성치의 [쿵후허슬]에 이르기까지 홍콩 무술영화의 계보에 위치한 모든 뉘앙스를 섭렵하는 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루저 중의 루저인 주인공이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진정한 고수로 거듭난다는 내러티브의 맥락은 전통 무협물의 클리셰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서도 드림웍스 특유의 유머와 재치가 빵빵 터지게 만듦으로서 진정한 오락물로서의 가치를 드높인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기대 이상의 대성공으로 인해 드림웍스가 취할 행동은 그리 예측하기 어렵지 않지요. 드림웍스는 픽사처럼 진지하게 고민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성공하면 속편을 만들고, 또 만들고, 또 만들고, 수명이 다하면 그 중에서 아직 쌩쌩한 캐릭터 하나를 뽑아내어 주저없이 스핀오프로 돌려 버리는, 말하자면 프렌차이즈 하나로 뽕을 뽑는 그런 제작사가 아닙니까. [쿵푸 팬더]의 속편이 나오기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에 오히려 의아할 정도이니까요.
자 이제 [쿵푸 팬더 2]로 들어가 봅시다. 전편에서 문파의 배신자 타이렁을 물리친 '용의 전사' 포는 영웅이 되어 있습니다. 사고뭉치인건 여전하지만 나름 무예가로서의 체계도 잡혀있고, 무엇보다 자신을 개무시하던 무적의 5인방에게 동료로 인정받고 있다는 건 큰 변화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또다른 사건이 생깁니다.
왕가의 후예인 셴(게리 올드먼 분)이 고성능 대포에 쓸 쇠붙이를 구하기 위해 늑대들을 동원, 평화의 계곡을 습격한 것이지요. 최신 무기를 앞세워 쿵푸를 말살하려는 셴의 야망을 분쇄하기 위해 포와 일행이 파견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포는 셴과 자신의 출생 사이에 모종의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 DreamWorks Animation. All rights reserved.
이렇듯 출생의 비밀과 부모의 원수를 알아내고, 진정한 무림 고수로 거듭난다는 일련의 과정들은 여전히 과거 홍콩 무협물의 주요한 내러티브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1편이 선택된 전사로서의 자신을 발견해가는 내용이라면 2편은 이미 고수의 경지에 오른 포가 단순한 무예 뿐만이 아니라 내면을 다스리며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유해가는 성장과정에 좀 더 비중을 둡니다.
여전히 재기넘치고 화려한 볼거리로 이루어진 [쿵푸 팬더 2]는 1편보다 유머가 조금 약해진 대신, 액션의 스케일을 키우는 전략을 취합니다. 1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폭파씬과 더불어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화면을 한가득 채웁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화려해진 비주얼에 만족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불만입니다. 개인의 무예에 초점을 맞춰 동작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주었던 1편에 비해 2편의 액션은 단체 액션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장면들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거든요. 정통 무협물의 느낌보다는 헐리우드식 액션물의 모습에 더 가깝다 하겠습니다.
악당인 셴의 경우는 뭐라고 한마디로 표현할 방법이 없는 조금 미묘한 캐릭터입니다. 1편의 악당, 타이렁이 초반 탈출씬에서 보여주었던 절대고수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없으며, 끝판왕다운 강함도 느껴지지 않는 어정쩡한 악당입니다. 대신에 그는 무공의 힘보다 대포나 비수와 같은 무기에 의존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무협지의 표현으로 말하면 다분히 사도를 추구하는 인물이지요. 반면, 유머와는 조금 거리감을 두었던 타이렁에 비해 셴은 코믹한 구석이 많은 캐릭터입니다. [쿵푸 팬더 2]의 유머들 중에서 상당부분은 바로 셴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악당으로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역할은 현저하게 떨어지지만 나름 이렇게 시시하면서도 매력적인 특징이 있는 악당도 그렇게 나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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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계는 분명합니다. [쿵푸 팬더 2]는 절대로 1편을 뛰어넘을 만한 속편이 될 수 없습니다. 주인공 포가 주는 웃음의 대부분은 1편에서 유효했던 것들을 재탕하는 수준에 불과하며 그나마 새로 시도하는 유머들은 제대로 먹히질 않습니다. 픽사를 비롯한 다른 경쟁사들과의 확실한 경계를 그었던 전복적인 쾌감의 실종은 치명적이에요. 너무 슬랩스틱에만 의존하다보니 작품의 개성이 제대로 묻어나질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쿵푸'라는 주요 소재를 활용하는 능력은 전편보다 한참 떨어집니다. 사실 이런 작품의 진미는 어디까지나 고수 대 고수의 막판 승부가 아니겠습니까? 용의 전사를 넘어 사부인 시푸와 동급의 내공을 습득한 포에 맞설 만한 무림 고수가 나와야 할 마당에 시시껄렁한 웃음을 선사해주던 악당이 모든 걸 잃고 포와 맞서는 장면은 오히려 안쓰러워 보일 정도입니다. 전반적으로 전편이 선사했던 고전 무협물의 데자뷔가 이번에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치 변칙적인 성룡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쿵푸 팬더 2]가 어느정도 흥행성을 갖춘 작품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지만 그렇다해도 [쿵푸 팬더] 프렌차이즈의 매력을 고스란히 다음 작품으로까지 가지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분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이번 작품에서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썼습니다. '더 크고, 더 빠르게'라는 속편의 진부한 원칙을 답습한 이상, 3편이 취할 수 있는 방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성공적인 3부작, 혹은 그 이상을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겁니다.
P.S:
1.포와 5인방 그리고 시푸 사부 등 훌륭한 캐릭터들이 즐비한 가운데, 이들을 고루 사용하지 못했다는 점도 무척 아쉽습니다. 악당인 셴도 나름의 딱한 사정이 있는 캐릭터인데, 후반부의 결말은 너무 스테레오식이라 드림웍스 답지 않습니다.
2.영화의 주요장면 중 하나인 인력거 추격씬은 [로닌]의 카체이싱을 성룡의 슬랩스틱 코미디로 해석한 장면입니다. 팩맨이 괴물들을 잡아먹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에서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3.장 끌로드 반담이 악어 사부 역으로 나옵니다. 의외로 비중이 없었네요. 차라리 애꾸 늑대 역을 맡았다면...
4.우쉬 핑거의 비밀은 그냥 떡밥으로 넘어가는군요.
5.가장 웃겼던 건 양자경이 목소리를 맡은 염소 할매가 셴의 옷을 사각사각 씹어먹는 씬이었어요. 이에 버럭하는 셴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란... 난 왜 이런 유치한 유머에 약할까.
6.어지간하면 3D는 피하는 편입니다만, 이번 작품은 3D가 제법 잘 먹힌 작품입니다.
7.다음편에는 타이그리스와 포의 러브라인이 형성되는 건가효? ㅡㅡ+
본 리뷰는 2011.5.30. Daum View의 인기이슈에 선정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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