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자이언트 크로 - 거대 칠면조의 황당한 습격

페니웨이™ 2011. 5.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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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113






 



괴수물 중에서는 '전설'로 남은 작품들이 더러 있습니다. 1933년 작 [킹콩]이 그렇고, 혼다 이시로 감독의 [고지라]도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사실 [고지라] 이후 괴수물의 메인 스트림은 헐리우드가 아니라 일본쪽으로 넘어갔다해도 과언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헐리우드에서 괴수물에 손을 대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도 과거 헐리우드 괴수물의 전설(?) 비스므리하게 남을뻔한 작품으로서 아직까지 괴수물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두루 회자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바로 [자이언트 크로]라는 작품이 그것인데요, 이 영화는 '거대조류괴수'의 원로급에 위치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나름 영화사적인 의미는 있습니다. 그렇긴 해도 [고지라]의 혼다 이시로 감독이 만든 [라돈]보다 1년 늦게 세상에 나온 탓에 '원조'라는 타이틀은 물건너가고 말았습니다만.

ⓒ Toho. All rights reserved.

혼다 이시로 감독의 괴수영화 [라돈]. [고지라]의 성공에 고무된 토호 사에서 괴조판 [고지라]를 꿈꾸며 야심차게 준비해 컬러로 제작된 영화이지만 [고지라]의 후광에 가려 훗날 [고지라]의 시리즈와 크로스오버 형식으로 흡수되어 버린 비운의 작품이다.


[자이언트 크로]는 고전영화에서 볼 수 있는 '아아~ 그렇게 괴물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고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다~'식의 구수한 해설자의 변사식 내레이션으로 진행됩니다. 어느날 비행훈련을 받던 주인공 미치(제프 모로우 분)가 고도 1만 피트 상공에서 거대한 괴비행체와 마주치지만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언가 보긴 봤는데 무엇을 봤는지는 설명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관제본부에서는 어떤 레이더 시스템으로도 괴물체를 탐지할 수 없었기에 애꿏은 조종사만 욕을 얻어 먹지요.

그러나 각지에서 수수께끼의 괴물체에 대한 보고가 연이어 접수되고, 피해가 발생하자 정부측에서는 대응팀을 조직, 여과학자 셀리(마라 코데이 분)가 설치한 관측기구에 의해 그 정체를 밝혀냅니다. 바로 그 정체는 1700만년전 무려 '외계'로부터 날아온 전설속의 괴조라는 것. 더군다나 이 녀석의 몸은 무슨 자기장 같은 방어막이 감싸고 있기 때문에 지구인의 무기로는 상처하나 낼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이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정부측은 괴조를 잡기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과연 주인공들은 괴조의 번식을 막아내고, 도시를 지켜낼 수 있을지...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 작품에서 우리의 주인공 남녀는 진짜 불사신입니다. 우선 주인공부터가 대단한 슈퍼맨이에요. 설정상으론 무슨 엔지니어에 불과한데, 조종술이 천재급이고 (괴조와 마주쳐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 사격술도 백발백중에 과학자 뺨치는 지식도 갖고 있으며, 도망도 겁나 잘 다닙니다. 두 사람이 탄 수송기가 칠면조의 습격에 의해 추락할 때도 불쌍한 조종사만 죽고 두 사람은 멀쩡하게 살아있습니다. (뭔놈의 추락사고가 이렇게 불공평해!) 괴조의 알을 파괴할 때도 마찬가지에요. 겁나서 도망친 동료는 죽고 알을 뽀갠 두 사람은 살아남죠. 같은 도로위를 달려도 이놈의 대머리 칠면조는 주인공들이 탄 자동차가 아니라 철없는 10대들이 탄 자동차를 선택합니다. 이거야 원....

작품의 논리성 결여는 아무리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봐줄려고 해도 너무합니다. 괴조에게 제공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주인공을 수송기로 불러오는 건 도대체 어느 나라 국방장관의 아이디어이며, 방어막을 작동시킨 괴조의 베리어를 무력화시킬 궁극의 무기를 어떻게 하루만에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어미는 방어막으로 자신을 보호하는데 어찌 그녀가 낳은 알은 엽총 한방에 빵꾸가 뽕뽕 뚫리는 것인지, 생명체가 어떻게 스텔스 모드가 될 수 있는지.. 이건 마치 [환상특급]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아무래도 작품의 장르가 크리쳐물이다 보니 특수효과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겠죠. 이 작품이 [고지라] 이후에 나온 '헐리우드 작품'임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원래 제작자인 샘 카츠만은 이 작품에 레이 해리하우젠을 기용해 스톱모션 기법으로 괴조의 움직임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자이언트 클로]는 어디까지나 저예산 영화였기 때문에 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거죠. 결국 이 작품은 [고지라]처럼 슈트기법도 아니고, 마리오넷, 즉 줄을 메단 원시적인 인형극 형태로 제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자이언트 크로]에서 보여지는 칠면조의 모습은 폭소 그 자체입니다. 1950년대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도 도저히 제 정신으로는 눈뜨고 못봐줘요. 소리나 꽥꽥 지를줄 알았지 공포감이라곤 1g도 주지 못하는 칠면조는 하늘을 날때도 제대로 날개짓 한번 하지 못한채 실에 메달려 질질 끌려갑니다. 보통 특수효과가 허접한 영화들은 되도록 엉성함을 감추기 위해 화면을 어둡게 한다거나 클로즈업을 피하는 편인데 이 녀석은 대놓고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여기저기 남발할 따름이니, 헐~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어쨌거나 말이죠. 어떤 의미로 보면 [자이언트 크로]는 굉장한 작품입니다. 여기엔 B급영화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가 담겨있거든요. 완벽하게 엉망진창인 몬스터, 경이로울 정도로 극악인 대사들, 발편집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면들, 배우들의 발연기, 그리고 환상적(?)인 특수효과와 고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과학적 오류까지...

포스터의 시안을 맡았던 화가는 의도적으로 영화 속 인형의 모습을 포스터에 그리지 않았습니다. 영화사도 [자이언트 크로]의 홍보용 스틸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죠. 따라서 사람들은 거대한 독수리나 매가 등장하는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연을 맡은 제프 모로우는 훗날 회상하길 자신의 동네에서 개최된 프리미어 시사회날 관객들이 괴조가 등장하는 매 순간마다 박장대소를 하는 바람에 너무 상처를 받아 슬그머니 극장밖으로 빠져 나왔다고 합니다. 쪽팔림이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제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으면 했다나요.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자이언트 크로]의 개봉당시 포스터나 홍보스틸을 보면 괴조의 실제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포스터에 사용된 그림은 전적으로 화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따라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영화에서 보여진 괴조가 전혀 '몬스터'처럼 보이지 않는 아스트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끝으로 이 영화의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이거에요. 2007년 콜럼비아 픽쳐스에서 'Icons of Horror Collection - Sam Katzman'이라는 4장짜리 DVD 박스셋을 발매했다는 거죠. 이건 단순히 그동안 돌아다니던 두 종류의 비디오 판본을 트랜스퍼한 영상이 아니라 1.85:1의 오리지널 화면비를 살린 완벽한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탄생한 판본입니다. 이런 괴작도 21세기의 기술로 깨끗하게 복원하는 헐리우드의 복원력에 무릎을 꿇게 되네요.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P.S: [자이언트 크로]를 가만히 보면 어떤 장면은 제법 쓸 만한 특수효과가 사용된 부분이 슬쩍슬쩍 보입니다. 근데 이러한 장면들은 대부분 레이 해리하우젠이 참여한 [Earth vs. the Flying Saucers (1956)]의 필름을 재활용한 것입니다. 제작자가 같은 샘 카츠만이거든요. -_-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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