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112
세기의 히트작인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아시다시피 많은 첩보액션물의 원형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숀 코네리가 주연한 초기작의 경우 워낙 독창적인 시퀀스와 각종 클리셰를 구축하는 면에 있어서 탁월한 작품들이 많았기에 이들 작품들은 부분적으로, 혹은 통째로 다른 작품들에서 인용되거나 패러디되는 순환과정을 거치게 되지요.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작품이 바로 3편에 해당되는 [골드핑거]입니다. [골드핑거]는 이전 두 편의 제작비를 합친 금액에 해당하는 3백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한 야심작으로서 [007 살인번호]와 [위기일발]의 과도기 단계를 거쳐 본격적인 프렌차이즈의 규격을 확립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그 유명한 오프닝 크래딧 씬에는 007 특유의 보컬 주제가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제임스 본드 카의 대표적 브랜드가 된 애스턴 마틴이 등장한 것도 이 때부터요(스필버그가 애스턴 마틴 DB9을 구입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본드와 Q의 얄궂은 -한 명은 만들고, 한명은 부수고- 관계 묘사도 [골드핑거]부터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 Danjaq/Eon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골드핑거]는 가장 사랑받는 007 시리즈로 손꼽힙니다. 수많은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골드핑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공공연하게 표현했으며, 그 밖의 많은 작품들에서도 [골드핑거]에 대한 오마주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시퀀스인 (아마 영화사 전체를 통틀어 탑10안에 들만큼 쇼킹한 장면인) 질 매스터슨의 금박 페인팅 살해장면은 무수한 영화들에서 오마주된 바 있습니다.
ⓒ Danjaq/Eon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바로 007 시리즈 중에서도 [골드핑거]를 노골적으로 카피한 패러디 영화 [골드징거]가 되겠습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인데요, 주인공이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 두 명의 멍청한 콤비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당시 이탈리아 영화계의 유명한 코미디언인 프랑코-시치오 콤비와 조지오 시모넬리 감독이 의기투합해 만든 일련의 시리즈물 가운데 한 편이기도 하지요. 그럼 먼저 영화의 내용을 보시겠습니다.
ⓒ Atlântida Cooperativa Cinematografica, Fida Cinematografica, Producciones Benito Perojo. All rights reserved.
사악한 악당 골드징거(페르난도 레이 분)는 세계 각국의 수뇌들을 세뇌시켜 세계대전을 유발시킨 후 세계를 정복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에 에이전트 007(조지 힐튼 분)은 골드징거를 생포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지요. 그러나 007은 등장하자마자 총을 맞고 죽습니다. (이 뭥미..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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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첩보원은 이렇게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으나 사진사(라고 쓰고 파파라치라고 읽는다)인 프랑코와 시치오는 우연히 이 시건에 연루되어 그만 골드징거에게 납치를 당하고 맙니다. 그들은 우여곡절끝에 영국 정보국에 의해 구출되고 특수 첩보원의 자격을 받게 되지요. 사고뭉치인 이들은 다시금 골드징거의 조직에 잠입, 악당의 야욕을 분쇄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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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가가 무려 6명이나 투입된 이 작품은 얼핏봐도 초딩들이 하루만에 써도 될만큼 쌈박한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골드징거]의 참맛은 역시 뭐니뭐니해도 [골드핑거]의 패러디와 재해석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우선 오프닝 시퀀스만봐도 포복절도할만 합니다. 원래 [골드핑거]의 프리타이틀 시퀀스에서 숀 코네리는 머리위에 갈매기가 붙은 잠수복을 입고 등장하는데, 사실 이 장면은 당시 007 시리즈에 있어서 획기적일만큼 코믹한 비주얼을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숀 코네리 본인은 이 장면이 너무 어처구니없다며 클레임을 제기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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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징거]에서는 프랑코-시치오 콤비가 갈매기 대신 오리튜브를 메달고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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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핑거]에서 질 매스터슨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캐릭터를 한 명 더 꼽으라면 바로 킬러인 오드잡일겁니다. 초인적인 괴력과 모자챙이 강철로 된 살인모자를 쓰고 다니는 이 캐릭터는 이후 007 시리즈에서 만화적 상상력이 동원된 '슈퍼킬러'들의 선조격이 되지요.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오스틴 파워]에서도 살인구두를 집어던지는 랜덤 태스크라는 캐릭터로 패러디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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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사실상 오드잡을 패러디한건 [골드징거]가 한참 먼저입니다. 여기서도 역시 모자대신 신발을 던지는 킬러로 등장하게 되지요. (아니 그럼 [오스틴 파워]는 [골드징거]의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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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이 아닙니다. 유명한 금박 페인팅 시퀀스가 빠지면 섭섭하지요? 여기선 주인공까지 금박칠을 당하는 굴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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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 꼽자면 레이저 시퀀스지요. 007을 '내가 고자라니!' 직전까지 몰고간 그 유명한 장면을 [골드징거]에서는 톱날이 돌아가는 장면으로 패러디하게 됩니다. (이 장면이 기발한게, 톱날에 달려있는 막대기가 빨간색입니다. 의도적으로 레이저인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거지요ㅎㅎ)
ⓒ IMA Productions, Ágata Films S.A.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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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대충 큼직한 것만 정리하면 대충 이렇습니다. 그밖에 애스턴 마틴 패러디나 무수한 007 클리셰를 모방한 장면들이 등장해 배꼽을 잡게 만들지요. 특이할 만한 점은 이런 B급 패러디물에 페르난도 레이 같은 거물급 배우가 출연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국내 팬들에게는 [프랜치 커넥션]의 마약왕 샤니에로 잘 알려진 배우일 겁니다. 이런 괴작들에서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명배우들을 보면 정말 미스테리하다니까요.
감독인 조지오 시모넬리는 이 작품 이후에도 계속 프랑코-시치오 콤비와 영화를 찍다가 1966년 [석양의 무법자]를 패러디한 [I due figli di Ringo]를 끝으로 사망합니다. 물론 프랑코 프란치와 시치오 잉글리시아는 이후에도 계속 명콤비로 영화를 찍습니다. [골드징거]외에도 이듬해엔 또다른 007 패러디 영화인 [002 operazione Luna]와 1968년엔 [American secret service: cronache di ieri e di oggi]에도 출연했지요. 평생에 걸쳐 명콤비로 활약하며 수많은 패러디물에 출연하다니, 그 끈기와 열정은 알아줘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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