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ㅂ

베니싱 -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모호함

페니웨이™ 2011. 4. 1. 09:00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587년, 영국의 첫 식민지였던 미국 로어노크섬의 주민 115명-영화에선 117명이라는데 뭐 거기서 거기죠-이 모두 사라진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건의 유일한 단서는 나무에 새겨진 'croatoan'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 뿐, 전투나 약탈의 흔적도 없이 주민 모두가 증발해 버리듯 없어진 것이죠. 오늘날까지 학계에서는 이 사건의 전말을 풀기위해 여러 가설을 내놓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미스테리입니다. 과연 누가, 왜, 어떻게 이 주민들을 사라지게 한 걸까?  워낙 오래전에 발생했던 일이라, 과학적 근거가 될 수 있는 여러 정황이 무시되어 일종의 괴담처럼 전승된 감도 없지 않습니다만 이 로어노크 실종사건은 분명 무섭고도 의문점이 많은 사건입니다.

영화 [베니싱]은 바로 이 흥미로운 사건에 모티브를 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로어노크가 언급되지요. 물론 배경은 미국의 대도시 디트로이트로 옮겨져 스케일이 커졌습니다만 원인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보면 본질은 같습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어느날. 우연히 빛 근처에 있었던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사라져 버리게 된 것이죠. 남아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빛에서 떨어져서는 안됩니다. 빛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어둠이 집어 삼키기 때문입니다.

[베니싱]이 표방하는 장르는 미스테리 재난 스릴러입니다. 요즘 이 부류의 영화를 종종 보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M. 나이트 샤말란의 [해프닝]과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눈먼자들의 도시]가 있지요.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사건이 발생하는 원인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은채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들이 일종의 군상극을 변형시킨거라고 봐요. 그런데 이런 류의 장르가 아직까지는 실험적인 단계인지라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해프닝]의 흥행실패는 그렇다 치고,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혹평을 받았던 [눈먼자들의 도시]를 보면 확실히 이 장르가 영화적 재미를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Herrick Entertainment/ Mandalay Vision. All rights reserved.


이 작품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사건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점일텐데, 여운의 미덕없이 확실한 끝마무리를 선호하는 헐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으로서는 [베니싱]과 같은 작품을 보고 나면 왠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중간에 끊고 나온듯한 기분이 들겁니다. 따라서 감독이 고민해야 할 지점은 과연 앞과 뒤를 잘라 버린 이 마당에 영화의 몸통을 어떤 방식으로 흥미진진하게 채워나갈것인가 하는 점이겠죠.

[베니싱]의 경우에는 딱 4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갑니다. 공간의 이동도 거의 없어요. 꺼져가는 불빛에서 언제 자신을 집어삼킬지 모르는 어둠을 기다리며 바들바들 떨며 저마다의 사정을 들려주는게 전부입니다. 갈등구조도 미흡하고 스릴도 부족하며 무엇보다 호러영화처럼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무리수입니다. 차라리 어둠에 대한 공포, 그리고 항상 '빛'을 지녀야 한다는 설정만을 놓고보면 데이빗 토히 감독의 [에일리언 2020]이 백배는 낫습니다. 적의 실체가 모호한 점이 어떨때는 더 무섭긴 합니다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만큼은 그리 큰 공포로 와닿지가 않는군요.

사정이 이러하다면 영화의 보이는 것 이면에 감춰진 감독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재미라도 있어야 할 터인데, 그것도 실은 모호하기 짝이 없어요. 감독인 브래드 앤더슨은 [머시니스트]를 통해 죄의식의 이면을 정말 밀도있게 다루었던 솜씨좋은 연출가입니다만 어찌된 일인지 [베니싱]에서는 그만의 장기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눈에 띄었던건 낮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설정과 마지막에 태양열로 충전되는 플래시, 그리고 (휘발유가 필요치 않은) 말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는데요, 아마도 이건 인공적으로 빛을 만들어내기 위해 천연의 에너지를 마구 고갈시키고 있는 인류문명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이것도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배우들의 연기도 이렇다할 인상을 남기지 못합니다. [스타워즈] 프리퀄의 '미스터 다스베이더', 헤이든 크리스텐슨이 오랜만에 주연으로 등장했습니다만 역시나 연기력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진 못했고, 아직도 그녀에게 무슨 매력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텐디 뉴튼이나 제법 베테랑급 배우인 존 레귀자모 또한 그리 깊이있는 캐릭터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빛을 찾아 이리뛰고 저리뛰는 헤이든을 보며 맘속으로 이렇게 외쳤을 정도입니다. '어이, 광선검을 켜라고!'


P.S:

1.또 한가지 썰렁한 사실. 헤이든의 극중 이름은 루크(Luke)입니다. 이게 뭐냐고요? 아들인 루크 스카이워커의 이름이잖아요!

2.본문에 잠깐 언급했는데, 사실 빛을 내는데 가장 필요한 전기는 인류의 문명에 있어서 거의 절대적인 요소나 다름없습니다. 이를 소재로 다룬 영화도 제법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1951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지구 최후의 날]과 1996년 작 [트리거 이펙트]입니다. 둘 다 전기가 끊겼을 때 얼마나 공포스런 상황이 도래하는지를 다루고 있는 수작이지요. 꼭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