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다란 관속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는 [베리드]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프랭크 다라본트의 TV영화 [생매장]이 있었고, 비교적 근래에 쿠엔틴 타란티노가 연출을 맡았던 [C.S.I] 시즌 5의 마지막 에피소드 'Grave Danger'에서도 동일한 소재가 사용되었으며, 이는 타란티노의 [킬 빌 Vol.2]에서 다시 한번 사용된다. 그러나 [베리드]의 느낌은 다분히 조엘 슈마허의 [폰부스]에 더 가까운 작품으로 보인다. 전화박스를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과 오로지 목소리로만 지시를 내리는 범인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저예산이지만 철저하게 서스펜스로만 극을 이끌고 가는 점에 있어서의 유사성이랄까.
하지만 [베리드]는 어떤 영화도 시도하지 않은 지독한 공간적 제한을 가한다는 면에서 무척 흥미롭다. 이는 앞서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폐쇄공간을 다룬 [큐브]나 [파라노말 액티비티]와는 또다른 느낌인데, 관속에 갇힌 한 남자 외에 다른 등장인물이나 공간, 심지어 회상씬조차 등장하지 않는 순수한 폐쇄공간에서의 1인극이기 때문이다.
깨어나 보니 관 속에 갇혀있는 중동의 트럭운전사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 분). 관 속에 있는 소지품이라곤 라이터와 볼펜, 나이프, 그리고 핸드폰이다. 무슨일이 일어난 걸까? 기대했던 것만큼 의미심장한 음모같은 건 없다. 단순히 중동에서 일하던 미국인이 테러범에게 납치당한 것일 뿐이다. 이제 주인공이 관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핸드폰을 이용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베리드]가 뛰어난 이유는 단순히 폐쇄공포에만 의존하는 평범한 B급영화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제약을 가한 듯한 상황설정을 기발하게 활용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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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화면으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음에도 [베리드]는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사실 핸드폰이 콘로이에게 주어졌다는 점은 주인공이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날 만한 여지가 대단히 많다는 뜻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핸드폰으로 연결되는 모든 대화들을 절망으로 바꾸어 놓는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긴장감을 느끼는 이유는 단지 콘로이가 빡빡한 관 속에 누워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전화를 통해 단절되는 소통에서의 절망감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설정이 생매장된 남자의 수난극에 맞춰져있긴 해도 막상 영화는 포스트 911 시대를 사는 소시민의 무력함과 더 나아가서는 국가권력이나 기업의 일방적 힘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삶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마치 관속의 상황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부조리함의 축소판인 것 처럼 말이다. 더럽고 치사하고 불공정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점에서 주인공 콘로이가 처한 극단적 상황은 우리의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있지 않다. 그래서 영화는 더욱 몸서리쳐지고 무섭다.
자칫 헐리우드식 휴머니즘으로 퇴색될 뻔한 이야기였음에도 관 하나의 작은 공간 속에서 이처럼 많은 담론들을 끄집어 낼 수 있었던 신예 로드리고 코르테스의 기민한 연출력과 더불어 원맨쇼를 감수하면서 생생한 연기를 펼친 라이언 레이놀즈의 열연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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