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3D: 인류 최후의 전쟁](아주 제목에다가 3D를 붙박이로 갔다 붙였네요. 여기서는 그냥 줄여서 [테라]라고 하겠습니다)은 2007년에 완성된 저예산 애니메이션입니다. 시간상으론 무려 3년전의 작품인데 소소한 각종 영화제를 전전하다가 대중에게 공개된건 2009년이 되어서야 가능했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나서야 이 작품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동안에 무슨일이 있었냐 하면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가 세상에 나왔다는 겁니다. 이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바타]를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테라]를 감상했다면 조금은 다른 감흥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침공하는 주체가 외계인이 아닌 지구인이라는 사실과 화려한 공중전을 3D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테라]는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이미 시작이자, 끝판왕을 접한 상태죠. 안그렇습니까? 물론 3억 달러 가까이 투입된 초대형 블록버스터와 저예산으로 영화제에 출품되었다가 후반작업을 거쳐 극장에 걸린 작품과의 절대적인 비교는 조금 지양해야겠습니다만.
로스웰 사건의 외계인 같은 얼굴에 올챙이 같은 꼬리를 가진 외계종족이 살고 있는 한 행성. 고도로 발달된 지성과 문명을 보유했지만 어딘지 원시적인 형태의 사회구조를 갖고 있는 이들은 아무 걱정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지구인들이 침략합니다. 첫 침략이 개시된 시점은 참 독특한 광경을 연출합니다. 순진무구한 원주민들이 지구인들을 신으로 착각해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상황이 벌어지거든요. 이는 마치 롤랜드 에머리히의 1996년작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빌딩 옥상에 올라가 자신들을 데려가 달라고 외치는 종말론자들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 MeniThings LLC/ Snoot Entertainment. All Right Reserved.
하지만 주인공 밀라는 우매한 원주민들과는 좀 다른 여성(?)입니다. 아버지가 외계인에게 포획되자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거든요. 이 과정에서 지구인 짐의 우주선이 밀라의 기지에 의해 불시착하게 되고 이제 짐과 밀라의 필연적인 동반관계가 성립됩니다. 밀라는 아버지를 되찾고, 짐은 기지로 돌아가고... 오케이 딜.
그래도 영화가 그렇게 간단하면 재미없잖아요? [테라]는 좀 더 큰 스케일의 플롯을 전개해 나갑니다. 지구인에게도 온건파와 과격파의 갈등이 있고, 이는 곧 짐과 스튜어트 형제의 관계로도 증명이 되죠. 외계인 원주민들에게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습니다. 현재는 평화롭게 지내고 있지만 실은 전쟁의 상흔을 겪은 과거를 지닌 슬픈 민족이었던 거죠. 뭐 나름대로 궁지에 몰린건 양쪽이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땅따먹기를 하다가 지구는 물론이고 화성과 금성까지 박살낸 지구인들이 이제 멸종만은 피하자고 '테라'라 명명한 남의 행성에 지멋대로 말뚝을 박으려 하고, 테라성의 원로들은 이런 때를 대비해 무기를 숨겨왔노라고 당당히 맞서는 뭐 그런 형국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래서 한국 개봉명에는 '인류 최후의 전쟁'이라는 촌빨날리는 부제를 붙여놓았나 본데, 엄밀히 말하면 이 제목은 틀린겁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엄연히 테라의 주민들이지 침략자인 인류가 아니니까요. 좀 더 정확히는 '테라 최후의 전쟁'이 더 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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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고뇌하고, 볼거리도 보여주고, 갈등요소도 집어넣었습니다만 [테라]는 어느 한쪽도 썩 만족스럽지가 않습니다. 특히 스토리의 개연성 부족은 무척이나 치명적인데, 자꾸 [아바타] 얘길 꺼내서 미안합니다만 주인공 제이크가 인간을 버리고 나비족에 동화될 수 있었던 그 과정에서의 설득력이 부족했다면 영화는 아주 꼴사나운 작품이 되었겠지요. [테라]가 바로 그렇습니다. 짐이 멸종 직전의 동족을 버리고 원주민들의 편을 들어 결국 인류를 멸종위기에 몰아넣는 극단적인 상황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는지는 여러분이 직접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기술적인 부면으로 넘어가 볼까요? 3년이면 그간 기술의 발전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진행됩니다. 얼마전 개봉한 [가디언의 전설]을 보세요. 올빼미들의 털 한올한올이 살아있는 듯한 그 섬세함을. 그에 비하면 [테라]의 CGI 캐릭터는 마치 XBOX용 게임으로 나온 게임화면을 보는듯한 느낌을 풍깁니다. 그걸 3D로 보고 있자니 오히려 더 엉성해 보이는 거구요. 그래서 아까 말했잖습니까. 이 작품은 2007년에 봤어야 그나마 재밌게 볼 수 있었을거라고.
그나마 후반부에 집중된 공중전 씨퀀스는 나름 훌륭한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스타워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화려함과 시원함이 뒤섞여 있달까요. 조금 상투적인 장면들의 연속이긴 하지만 확실히 저예산 애니메이션치고는 액션씬에 상당히 공을 들인거 같아요. 추측컨데 후반부 추가작업을 통해 얻은 수확은 바로 이 공중전 시퀀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이 시점에서 왜 화제성도 없는 [테라]를 개봉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만 혹여 순진한 관객들을 낚아서 관람료 비싼 3D 개봉관을 한번이라도 더 돌리기 위해서라든가하는 그런 얕은 잔머리에서 나온 생각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천편일률적인 블록버스터에 질린 많은 관객들에게 이런 저예산 애니메이션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다고 말해줘요.
P.S: 불청객으로 찾아온 지구인과 외계인의 우정. 그리고 이들을 열심히 서포트하는 소형 로봇의 조합은 오히려 얼마전 개봉했던 [플래닛 51]에 더 가깝더군요. 그러니까... [테라]가 먼저인데도 불구하고 왜 아류작같은 느낌이 드는거냐고요. 오늘의 교훈. 누명쓰기 싫으면 무조건 선방을 날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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