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들 가운데 유독 전쟁영화가 많은 이유는 그만큼 전쟁이라는 테마가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다는 점, 그리고 장르적 특성상 스케일이 커질 수밖에 없는 대작급이 많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머나먼 다리], [지상 최대의 작전], [패튼 대전차군단] 같은 고전들에 더해 [라이언일병 구하기]나 [블랙호크 다운], [아버지의 깃발] 같은 비교적 최근 영화에 이르기까지 전쟁영화는 끊임없이 만들어져 왔고 앞으로도 제작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수많은 전쟁영화들 중에서 한국의 6.25 전쟁을 다룬 작품은 드문 편인데, 과거 군사정권 시절, 반공영화의 수요적 특수로 졸지에 쏟아진 한국영화들을 빼면 일반 상업영화에서 한국전을 다룬 작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근래에는 [태극기 휘날리며], [포화 속으로] 처럼 블록버스터급의 스케일을 지닌 한국영화들도 자체 제작될 정도이지만 그간 한국전쟁은 영화속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본 포스트에서는 6.25 전쟁 6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전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몇몇 작품들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1950년대 LIFE지에 발표된 제임스 미치너(James Michener)의 원작을 영화화한 공군 영화로 한국전쟁당시 도곡리 철교를 폭격하는 작전을 둘러싼 주인공 조종사와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당시에 실제 연인이었던 윌리엄 홀덴과 그레이스 켈리가 주연을 맡았고, 무엇보다도 도곡리 상공에서 벌이는 공중전투와 폭격씬의 놀라운 촬영으로 인해 그 해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수상했다. 다소 미국 중심의 우익적인 가치관이 반영되긴 했으나 원작을 충실히 반영한 작품이다.
역시 한국전을 소재로 다룬 영화. 특이점으로는 전쟁영화로서는 드물게 여성감독인 줄리안 에이미스 (Julian Amyes)가 연출을 한 작품이며, 주연인 조지 베이커나 해리 엔드루스 보다도 단역으로 등장했던 마이클 케인, 로버트 쇼 등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007 여왕폐하 대작전]의 피터 R. 헌트가 편집을 맡았으며 한국전 당시 유엔군 수색대와 중공군의 전투를 그렸다. 헬 인 코리아 (Hell in Korea)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졌다.
한국전을 다룬 초창기 헐리우드 영화. 사회 비판적 시각을 남다르게 구사하는 사무엘 풀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북한군의 총살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미국병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It's the REAL Korean Story!'라는 태그라인이 말하듯 고증에도 제법 충실한 한국전 영화이지만 고작 10만 달러가 투입된 초저예산 작품인 관계로 무명배우들이 출연했으며 영화에 사용된 엑스트라는 고작 25명에 불과하다. 전쟁영화로서의 외적 완성도가 두드러지지 않아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치있는 영화들만 복원하는 크라이테리언사의 컬렉션에 추가될 만큼 숨겨진 수작이다.
[서부전선 이상없다]의 명감독 루이스 마일스톤이 감독한 1959년 작. 강원도 철원의 폭 찹 고지에서 벌어진 미 45사단의 한 중대와 중공군간의 치열한 전투를 그린 실화로 실제 전투에 참가했던 S.L.A. 마샬의 원작을 기초로 만들었다. 그레고리 펙과 조지 페퍼드 등 명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이 작품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촬영이 이뤄졌음에도 한국의 고지대를 잘 표현한 사실적인 고증과 전투장면으로 개봉당시 북미에서도 극찬을 받았던 작품이었으나 정작 한국에서는 정식 개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TV드라마의 단역배우로 전전하던 로버트 레드포드의 극장 데뷔작. 한국전을 배경으로 이상주의자인 신참 병사와 전투의 광기에 잠식된 두 병사가 한 고아 소년을 돌보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존 색슨, 톰 스케릿 등 낯익은 배우들의 신인시절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시드니 폴락의 배우 데뷔작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깊다. 이 작품에서 만난 폴락과 레드포드는 의기투합해 훗날 [추억], [콘돌],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 주옥같은 작품들에서 콤비를 이루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크래딧에는 빠져 있으나 [대부]의 명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도 트럭 운전수 역으로 단역출연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영화중의 하나. 제작기간 5년, 제작비는 4410만으로 당시로선 엄청난 규모의 대작으로 칸느 영화제에 초대받기도 했으나 영화 평론가들이 일제히 등을 돌린 괴작으로 알려져있다. 감독은 007 시리즈의 주역 테렌스 영 감독이며,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 오마 사리프, 제클린 비셋, 한국배우 남궁원 등 대단한 캐스팅을 자랑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 영화의 필름은커녕 어떠한 정보고 제대로 접하기 힘들다. 100% 통일교의 자금으로 지원된 작품이지만, 지상최대의 실패작으로 남게 되었다.
제21회 대종상 안보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양동작전에 희생되는 아벤고 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한국영화로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신일룡, 남궁원, 정윤희, 윤양하, 남포동 등 당시 한국 영화계의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했으며 헐리우드 스타 빅 모로가 출연해 개봉당시 '빅 모로우의 아벤고 공수공단'이란 제목을 사용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극우 반공영화적인 성격이 강해 당시 한국의 정치적 사회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6.25 전쟁 당시 유명한 격전지였던 '단장(斷腸)의 능선'을 주제로 내세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의 전쟁물. 일생을 전쟁에 바쳤던 한 육군 중사가 해병대 교관으로 부임해 반항적인 부대원들을 개과천선시킨다는 내용으로, 전쟁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학원물적인 색체가 짙은 영화다. 한국전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영화 초반에 보여진다. 그러나 정작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 중에선 국내에 가장 덜 알려진 작품 중의 하나.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한 야전병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영화. 군 내부의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한 로버트 알트만식 블랙 코미디로 미국내에서도 유명한 작품이지만 한국 비하영화의 대명사로도 알려져 있다. 원래는 베트남전을 빗대 무대를 한국으로 옮겨놓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며 따라서 영화의 한국 비하적인 코드는 고증의 오류라기 보단 의도된 패러디에 가깝다. 훗날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1970-80년대 초반까지 장장 12년간 방영되는 인기작이 되었다. 칸느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한국영화계의 거목 이만희 감독의 걸작 전쟁영화. 인천상륙장전 직후 한 국군해병부대가 겪는 전쟁의 참상을 그린 작품으로 전투씬의 촬영을 위해 국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실제 폭발장면을 사용한 결과 고전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스펙타클한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한 때 영화의 제작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으나 초반부의 상륙작전의 놀라운 현장감 덕택에 투자자들이 기꺼이 제작비를 지원했을 정도다. 또한 반공이념적인 도구로 이용되던 전쟁영화의 모습을 탈피해 영웅주의적 군인의 모습이 아니라 전쟁의 비극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최무룡, 장동휘, 구봉서, 독고성 등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했으며 제3회 대종상 감독상, 제1회 청룡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종군 기자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출간된 원작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 제작비 14억원에 3만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대작으로 당시 한국영화로선 보기 드문 대작으로 주목을 끌었다. 5년에 걸친 소백-지리산 지구의 빨치산 토벌전을 배경으로 북한에서 버림받고 남한에서 반동으로 몰려 갈곳을 잃은 빨치산의 전투활동을 그렸다. 안성기, 최진실, 최민수, 이혜영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왕년의 스타 트위스트 김이 오랜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작품.
장진 감독의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자신은 [박수칠 때 떠나라]의 연출을 맡는 대신 후배인 박광현 감독에게 메가폰을 넘겼다. 대신에 '장진 사단'의 낯익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데, 강원도 깡촌인 동막골을 무대로 우여곡절끝에 한자리에 모이게 된 북한군과 남한군, 미군과 마을 주민들이 벌이는 갈등과 화해를 코믹하게 그려냈다. 북한군 장교 리수하 역을 맡은 정재영과 '마이 아파'라는 대사를 유행어로 만든 광녀 역의 강혜정 등 톡톡튀는 캐릭터가 잘 짜여진 스토리와 함께 빛을 발한다. 국내 관객 800만명 동원의 빅 히트작.
개봉 39일만에 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한 대작. 영화의 서사방식과 표현면에 있어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교되곤 하는 작품이다. 강제 징병된 동생과 동생을 지키기 위해 자진 입대한 형의 형제애를 다룬 작품으로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을 자랑하는 전쟁영화다. 장동건, 원빈, 이은주 등 젊은 스타배우들이 출연해 좋은 연기를 펼치며, [올드보이]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최민식이 북한군 장교로 깜짝 등장해 강제규 감독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6.25 전쟁 당시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마을에 살고 있던 500여명의 주민들이 미군들에 의해 몰살되다시피 했던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142명의 배우, 229명의 스탭이 참여한 본 작품은 송강호, 문소리, 문성근, 전혜진, 강신일 등 스타급 배우들이 노게런티로 참여해 화제가 되었다. 전쟁의 피해자, 그리고 그 비참함의 현실을 심도있게 파헤진 영화의 내용이나 규모면에서 꽤나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지만 전체적인 구성면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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