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는 원하는 바를 얻으려 결백을 도살하고 결백은 범죄에 맞서 온 힘을 다해 싸운다.
- 로베스 피에르
[4교시 추리영역]을 보고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작품을 찍은 배우들이 정작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어떤 영화가 대박날지는 며느리도 모른다는 것이 영화계의 보편적인 생각이지만 적어도 당사자들은 알았을거다. 자신들의 영화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웬만해서는 남들이 공들여 만든 작품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리지 않는 나일진데 이 영화만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리뷰를 작성하면서도 이걸 공개할까 말까 몇 번인가를 망설였다. 이제서야 글을 올리는 이유는 [4교시 추리영역]이 모든 극장에서 간판을 내렸기에, 적어도 현재 상영중인 영화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던 내 나름대로의 배려 때문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믿든지 안믿든지 그것은 자유지만 간혹 강도높은 비평이 들어간 리뷰가 포털의 메인이라도 걸리는 날엔 홍보사측에서 낼름 연락이 오곤 한다. ㅡㅡ;;)
ⓒ(주)스웨이 엔터테인먼트, (주)롯데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자 그럼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기특하게도 [4교시 추리영역]은 한국 영화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추리극의 형태를 띈 실로 오랜만의 작품이다. 게다가 '리얼타임 학원 추리극'을 표방한 것이 마치 일본의 추리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을 바로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유독 추리물의 빈곤을 뼛속깊이 체험하고 있는 한국 영화의 현실로 볼때 장르의 다각적 모색을 시도한 점이야말로 [4교시 추리영역]이 가진 유일한 미덕이자 칭찬받아야 할 점이다.
그러나 유감 천만이게도 이러한 장점은 영화의 총체적 문제점을 덮을 만큼 크지 않다. [4교시 추리영역]은 혹여나 어설프더라도 장르영화의 부활에 일말의 불씨라도 남겨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여지없이 짓밟는다. 보통의 영화가 가진 최소한의 사전 홍보없이 영화가 제작중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채 어느날 혜성처럼 등장해 급조한 듯한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간판을 내려 버린, 그야말로 속전속결의 정신을 보여준 [4교시 추리영역]은 말 그대로 급조한 티가 역력히 드러나는 미완성 작품이다.
전국 1등의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는 한정훈(유승호 분)은 사소한 문제로 같은반의 문제아 태규와 다툰다. 싸우는 모습을 미친개 선생(박철민 분)에게 들킨 두사람은 주번으로 지목되어 체육시간에 반에 남아 자리를 지키게 된다. 그런데 정훈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태규가 처참한 상태로 살해되는 일이 발생한다. 당황하는 정훈을 가장 먼저 발견한건 반에서 '커튼마녀'라 불리며 왕따를 당하던 이다정(강소라 분)이라는 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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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훈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는다며 체육시간인 4교시가 끝나기 전 둘이 함께 범인을 찾아내자는 제안을 한다. 모든 사건의 정황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정훈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4교시 동안 범인을 알아내야만 한다.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40분이라는 데드라인까지 정해진 촉박한 설정은 스릴을 유도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설정이지만 [4교시 추리영역]은 이러한 설정을 단지 제작비를 절약하는 차원으로 이용하는데 그치고 만다. 영화는 스릴도, 긴장감도, 범인으로부터 받는 위협도 없이 그저 철없는 고딩들의 탐정놀이를 비추기에 급급하다가 막판에는 [스크림]류의 슬래셔 무비로 돌변한다.
무엇이 전국 1등의 천재라는 것인지 한정훈의 존재는 피의자로서도 탐정으로서도 빈약하기 그지없는 한심한 캐릭터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 가장 탐정다운 인물인 이다정은 추리매니아라는 설정이 있긴 해도 가방속에 CSI마냥 현장 감식반이 쓸법한 도구들을 챙기고 다니는 비현실적인 오타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영화의 현실감각은 제로에 가까운 상태에서 출발한다. ⓒ(주)스웨이 엔터테인먼트, (주)롯데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애당초 고등학생 두명이서 살인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야심찬 목표가 아무리 만화스럽다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빈틈 투성이다. 플롯의 허술함을 메꾸기 위해 영화는 최근 10대들의 생활패턴, 휴대폰, 몰카. 인터넷 등의 현실적 이미지를 접목시키려 애쓰지만 결과적으로는 유부녀 동료 여교사와 바람이나 피는 교권 추락의 부정적 이미지만 부각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배우들의 연기는 쓸만한가? [집으로..]이후 간만에 모습을 공개하며 하이틴 스타로 발돋움할 채비를 갖춘 유승호는 뭇 누님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할만큼 그 잘생긴 용모처럼 좋은 연기를 펼치지 못한다. 뻣뻣하고 어색하기 그지없는 그의 연기력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것만큼이나 한정훈이란 캐릭터와의 싱크로를 방해한다.
차라리 강소라의 경우는 낫다. 애당초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영화 내내 몸매가 시원하게 드러나는 여름 체육복을 입고 신나게 뛰어 다니는 강소라 쪽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데는 훨씬 현명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나는 강소라를 이번 영화에서 처음 보았는데, 아직 검증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런 신인 배우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데는 나름 성공했다. 그것도 이 영화를 직접 본 관객들에게 한정되는 이야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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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배우들은 그렇다 치자. 박철민, 정석용, 이영진 같은 재능있는 배우들 마저 [4교시 추리영역]의 조악한 완성도에 같이 묻혀 버리는걸 보노라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 이들이 뭐가 부족해서 이런 작품에 도매급으로 묻어가게 되었는지 그 속사정은 알 수 없으나 하여간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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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하면 진부한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정말로 [4교시 추리영역]은 구운 오징어처럼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체험할 수 있는 최상의 영화다. 차라리 이 영화를 케이블 TV나 추석특집 안방극장 드라마로 접했다면 그 충격은 덜 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무려 극장에서 접했다니... 내 자신이 이렇게 존경스럽긴 실로 오랜만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소년탐정 김전일]을 한권 읽을걸 그랬나 보다.
* [4교시 추리영역]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주)스웨이 엔터테인먼트, (주)롯데엔터테인먼트.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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