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군 일련의 '메카닉 액션 드라마' 2인방인 [출동! 에어울프]와 [전격 Z작전]의 인기는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마도 이런류의 드라마가 인기있었던 건 영화의 기술적 한계 안에서 열혈남아들의 로망인 로봇물에 대한 욕구를 슈퍼 자동차나 슈퍼 헬기를 통해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MBC와 KBS 방송 2사의 대표적인 인기 시리즈인 이 두 작품에 더해 언제부터인가 스물쩍 한편의 드라마가 더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 소개할 주인공 [독수리 특공작전]이 되시겠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많은 분들이 '검은 독수리'라고 기억하는 'Street Hawk'의 국내 방영명은 여러분들의 왜곡된 기억과는 달리 [독수리 특공작전]이다.
ⓒ MCA/Universal Home Video. All rights reserved.
사실 이 제목이 맘에 안드는 건 'Knight Rider'를 [전격 Z작전]이라 이름 붙였던 것만큼이나 촌스럽기 이를데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Street Hawk'의 Hawk는 '독수리'가 아니라 '매'이기 때문이다. 이런 번역상의 큰 오류는 이 작품을 내 기억속에 더욱 강하게 각인시킨 셈이 되었다.
어쨌거나 내가 처음 [독수리 특공작전]을 접한건 KBS가 아니라 미군방송인 AFKN을 통해서였다. 미끈하게 잘 빠진 오토바이를 타고 악당들을 소탕하는 내용의 이 드라마는 헬리콥터와 자동차만 신물나게 보아온 나에게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고, 비록 영어 한마디 알아먹지 못하는 나이였음에도 신문의 TV 편성표에서 'Street Hawk'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AFKN으로 채널을 고정시켰던 기억이 난다.
[독수리 특공작전]의 내용은 이러하다.
주인공 제시(렉스 스미스 분)는 전직 아마주어 바이크 레이서이자 오토바이로 순찰을 도는 LAPD 소속 순경인데 어느날 검은 트럭에 의해 절친한 동료를 잃고 자신도 무릎에 큰 부상을 입는다. 실의에 빠져 있던 제시에게 노먼(조 리걸부토 분)이 찾아와 자신이 개발한 특수 오토바이의 테스트 파일럿이 되어 줄 것을 제안한다. 제안을 받아들인 제시는 이제 낮에는 공익봉사를 위한 경관으로 밤에는 도시 뒷골목의 범죄에 맞서는 크라임 파이터로서의 이중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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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슈퍼히어로물의 내러티브를 살짝 변형시킨 이 작품은 원래 1984년 가을 ABC 방송국에서 새롭게 방영하는 시리즈로 편성된 드라마였다. 그러나 ABC측은 입장을 바꿔 [독수리 특공작전] 대신에 [Call to Glory](국내에는 소개된 바 없는 드라마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엘리자베스 슈가 출연한다)를 편성하였고, 우선순위에서 밀린 이 작품은 1985년 1월이 되어서야 90분짜리 파일럿 에피소드가 방영되었다.
이쯤해서 벌써 감을 잡은 분들이 계시겠지만 [독수리 특공작전]은 애초에 ABC의 기대를 받지 못한 작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의 설정 자체가 진부할뿐더러 이미 [블루썬더],[에어울프],[전격 Z작전] 등을 통해 충분히 다뤄진 메카닉 액션물의 기존 틈새를 파고 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리라. 결국 [독수리 특공작전]은 13개의 에피소드로 단명하는 불운의 시리즈가 되고 말았다.
[에어울프]나 [전격 Z작전]과는 달리 드라마의 스케일도 그리 크지 않아 슈퍼 오토바이를 가지고 한다는 일이 기껏해야 뒷골목의 불한당들을 청소하는게 고작이니 시즌제로 롱런하기에는 드라마가 가진 선천적인 한계가 비교적 명확했던 작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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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짧은 드라마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수리 특공작전]은 의외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운전자가 외부로 노출되는 오토바이의 특성상 검은 독수리는 키트나 에어울프 보다 불리한 편이었지만 하이퍼 추진력을 이용해 시속 300 마일로 주행이 가능하고, 고무가 아닌 합금제질의 타이어를 장착했고, 레이저와 기관포, 로켓을 내장해 막강한 화력을 갖췄으며 탑승자의 헬멧 창으로 보여지는 화면이 컨트롤 센터로 전송되어 실시간 시청이 가능한 점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한 메카닉 액션물로서의 장점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이에 더해 이 작품속에서 뜻하지 않은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는건 세월이 지난 지금의 관점으로 볼때 또 하나의 큰 보너스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주인공과 대결을 벌이는 악당은 이듬해 [백 투 더 퓨쳐]의 브라운 박사로 인기를 모은 크리스토퍼 로이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A Second Self'에서도 아주 낯익은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데 [E/R]로 얼굴을 서서히 알리기 시작한 조지 클루니가 출연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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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특공작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사운드트랙인데, 그 당시 인기 외화가 대부분 그랬듯 이 작품에서도 사용된 음악도 상당히 수준급이다. 특히 텐저린 드림이 작곡한 오프닝 타이틀곡 'Le Parc (L.A. - Streethawk)'는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만큼 괜찮은 OST이다.
[독수리 특공작전]에는 총 15대의 오토바이가 개조되어 촬영에 사용되었는데, 파일럿 방송에는 1983년식 혼다 XL500가 쓰였고, 이후에는 1984년식 혼다 XR500 모델이 사용되었다. 한편 스턴트 장면에는 별도로 혼다 CR250 기종을 사용했다. 이 때 사용된 오토바이의 대부분은 현재 행방이 묘연하지만 2000년 9월에 이 오토바이들 중 한 대가 이베이 경매에 올라와 화제가 되었었는데, 12000 달러에 최종 낙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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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연을 맡은 렉스 스미스는 원래 가수로서 더 촉망받는 배우였다. 첫 주연을 맡은 TV 시리즈물의 방영을 앞두고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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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어디에서도 노래하는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 첫 번째 작품이에요. 좀 이상하긴 하죠. 마치 무섭다는 느낌이랄까요.- USA TODAY, 톰 그린 과의 인터뷰
하지만 단명한 드라마의 영향 탓인지 그는 이후에도 정규 프로그램의 고정 주연을 맡지 못한채 한 두편의 TV 시리즈에 단역으로만 출연하는 등 영화배우로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다시 브로드웨이 무대로 돌아가 뮤지컬 연극 배우로 더 많이 활약했다.
안타깝지만 [독수리 특공작전]은 국내에서도 생각처럼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한 것 같다. 나부터도 KBS에서 13화까지 모두 방영했는지 조차 기억이 안나는걸 보면 적어도 [에어울프]나 [전격 Z작전]처럼 대중적이 아닌 매니악한 팬층을 형성했던 작품에 가까울 듯 싶다. 추억도 더듬어 볼 겸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긴 하나 아쉽게도 [독수리 특공작전]은 아직도 정식 DVD가 출시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 해외사이트에서 박스셋을 판매중이긴 하나 정식 발매작이 아닌 무판권 짝퉁이다)
* [독수리 특공작전]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MCA/Universal Home Video.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E/R]은 1984-1985년 사이 1시즌 22에피소드로 완결된 메디컬 드라마로서 1994년부터 현재까지 장기간 방영중인 [E.R]과는 다른 작품이다. [E/R]에서 조지 클루니는 '에이스'란 캐릭터로 등장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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