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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열전(古典列傳) N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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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스페이스 오페라'하면 먼저 어떤 영화가 떠오르십니까? [스타워즈],[스타트렉],[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흐음. 이들 작품들이 SF 장르, 그중에서도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대규모 판타지의 장르물을 개척한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지만 사실 이를 원조격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의외로 SF 장르의 선두에 섰던 곳은 헐리우드가 아닌 동구권의 한 나라였으니까 말이죠.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1920년에 발표한 희곡 'Rossum’s Universal Robots' 에 '로봇'이란 단어가 처음 쓰이게 되면서[각주:1] 오늘날 보편화 된 만큼, 체코의 SF장르는 소설이나 영화를 거쳐 꽤나 독자적이면서도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겨왔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1963년작 [이카리 XB-1]는 SF 스페이스 오페라의 선조격인 작품으로서 훗날 수많은 SF영화들의 모티브가 되어준 작품이자 체코 최초의 SF영화이기도 합니다. [이카리 XB-1]은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프콥스키가 처음 영화화하고 헐리우드의 스티븐 소더버그가 리메이크한 [솔라리스]의 원작자, 스타니슬라브 렘(Stanislaw Lem)의 작품인 '마젤란 클라우드'를 바탕으로 제작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작품 전반의 분위기는 상당히 철학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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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K. All rights reserved.

이카리라고 해서 이 이카리가 아니니 착각하지 말것.




먼저 작품의 내용을 잠시 소개해 볼까요?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피해가세요)

때는 서기 2163년. 패닉 상태에 빠진 한 남자가 '지구는 처음부터 없었어!'라며 절규하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장면이 바뀌어 시간적으로 조금 앞당겨진 시점. 생명체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알파 센타우리'에 탐사를 위해 우주왕복선 '이카리 XB-1'호가 출항합니다.

지구를 출발해 알파 센타우리 태양계로 가는 이카리호의 승무원들은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도중 미확인 난파선을 만나게 되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두명의 승무원이 파견됩니다. 이 난파선 안에는 시체들이 떠다니고 있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우주선이 1987년 미국에서 쏘아 올려졌다는 점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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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lmové Studio Barrandov. All rights reserved.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난파선을 수색하던 이들은 뜻밖에도 선내에 탑재되어있던 핵무기의 존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처 승무원이 탈출하기도 전에 선내를 떠다니던 핵 미사일이 벽에 부딪히게 되고 그 충격으로 폭발을 일으킵니다. 평온하고 지루하기까지한 일상에 큰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이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알파 센타우리가 가시적인 영역에 들어올때쯤 지구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검은 행성이 이카리호와 알파 센타우리의 목적지 사이에 놓여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행성에서 발산되는 알 수 없는 방사선으로 인해 선체수리를 위해 외부 작업을 나갔던 승무원은 심한 방사능 오염 증상에 시달리게 되고, 선내의 승무원들은 심한 피로감과 졸음 증상을 겪게 됩니다. 생명활동을 억제하는 방사능의 영향아래 놓인 이들은 지구로의 회항이냐, 목적지로 강행하느냐를 놓고 크나큰 갈등 양상에 놓이게 됩니다.

이처럼 [이카리 XB-1]은 스페이스 오페라 이긴 하지만 '악의 존재'가 불분명, 아니 없다해도 무방하며 신나는 활극이나 액션도 전무하다시피 한 작품입니다. 특히나 초반 30분 정도는 무료한 승무원들의 일상을 대변이라도 하듯, 정말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완만한 호흡을 보여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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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lmové Studio Barrandov.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이카리호가 미국의 난파선과 조우하면서 상황은 반전됩니다. 이야기의 템포는 빨라지고 일종의 서스펜스와 미스테리가 가미되면서 영화는 점점 흥미진진해 집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1960년대 라는 이 당시의 기준으로 그런 것이고 로봇이 실제처럼 치고받는 영화를 즐기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마냥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정작 [이카리 XB-1]의 의의는 이렇게 느슨한 플롯이 아니라 영화가 지닌 장르적 클리셰에 있습니다. IMDB에서는 영국산 SF [Spaceflight IC-1: An Adventure in Space](국내 미개봉)이나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데요, 실제로 스산하리만치 고요한 우주의 풍경이나 미지의 난파선과 조우하는 장면에서의 긴장감은 [에이리언]에서 느꼈던 그것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느낌입니다.

또한 우주 비행에서 발생하는 시간의 괴리에 대한 설정(우주선에서는 2시간이 지구에선 2년이라는 식의..) 자체도 여러 작품들에서 응용된 바 있습니다. 유사한 설정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건 애니메이션 [건 버스터: 톱을 노려라!]의 마지막 장면이지요. 그 밖에도 [이카리 XB-1]에 등장하는 로봇인 패트릭의 경우 [세턴 3호]의 헥터를 연상시킨다든지[각주:2], 지구의 가족과 영상교신을 하는 장면 등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비롯해 SF의 단골로 등장하는 클리셰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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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lmové Studio Barrandov. All rights reserved.

영상으로 지구의 가족과 교신을 하는 장면은 여러 SF영화에서 사용되는 클리셰다. 이밖에도 [이카리 XB-1]에서는 SF장르물에서 꽤나 친숙하게 접해온 설정들을 내포한다.


영화상에서 위협적인 적은 존재하지 않지만 승무원들의 내부 갈등양상이 표출되는 건 영화의 서스펜스를 증대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 작품이 보다 상업적인 관점에서 접근되었다면 정말 훌륭한 SF오락영화가 되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훗날 역량있는 감독의 손에서 리메이크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 말이죠.

SF영화의 핵심이 되어 버린 시작적인 효과는 당시 기술력의 한계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레이저건이라든지, 우주선의 발진 장면 등 비 헐리우드 영화의 초창기 아날로그 시각효과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카리 XB-1]은 흥미롭다 할 수 있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장르물에 익숙한 팬들에게 국한된 얘기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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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lmové Studio Barrandov. All rights reserved.


이 작품은 유럽전역에서 흥행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성에 있어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덕분에 북미지역에도 수출이 되었는데요, 제목이 'Voyage To The End Of The Universe'로 바뀌어 졌고 편집도 미국인들의 입맛대로 수정되느라 원작과는 많이 다른 작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례로 미국 난파선에서 핵무기가 발견되어 폭발되는 장면은 송두리채 삭제되었으니, 검열과 표현의 자유가 미국이라해서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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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 (AIP). All rights reserved.


국내에도 이 작품이 들어왔었는데, 아쉽게도 북미판을 그대로 수입한 덕택에 제목도 [우주 끝으로의 여행]으로 똑같이 북미판 제목을 번역해 놓는 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Pifan 2009에서 오리지널 제목인 [이카리 XB-1]이라는 타이틀로 체코판 원본 그대로 상영된건 정말 다행스런 일입니다.


* [이카리 XB-1]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Filmové Studio Barrandov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또한 본 영화의 스크린샷은 주한체코대사관이 후원하는 Pifan 2009 홍보팀에 의해 사용이 허가되었습니다.

* 참고: 이카리 XB-1 북미판 포스터 (ⓒ 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 (AIP). All rights reserved.), 게임 Ikari Warriors(ⓒ SNK. All rights reserved.)
 





  1. 체코어의 로보타(노동)에서 따온 말이었다고 함 (블로거 잠본이님의 제보) [본문으로]
  2. 사실 어떤 면으로 패트릭의 디자인은 이보다 먼저 발표된 1956년작 [금단의 행성]에 등장한 2족보행로봇 '로비'와도 유사한 느낌을 주긴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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