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영화계의 주류를 이뤘던 판타지 장르는 [반지의 제왕] 3부작 이후 적당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상태다. 물론 아직 [해리 포터] 시리즈가 건재하긴 하나 초반만큼의 열기는 찾아보기 힘들고,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던 [나니아 연대기]도 고작 2편을 찍고 시리즈의 존폐위기에 놓였다. [황금 나침반]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아예 3부작 논의 자체가 백지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영화팬들은 의외의 영화에서 판타지 장르의 또다른 가능성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의 영화감독으로 출발했지만 점차 연출 스타일에 있어서나 장르, 심지어 배우들까지 헐리우드 작품들과 거의 차이점을 찾기 힘든 영화들을 선보였던 뤽 베송 감독은 한때 영화 제작에만 전념하다가 돌연 '아더와 미니모이'라는 판타지 소설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총 4부작으로 출간된 '아더와 미니모이'는 애초부터 영화화를 목표로 쓰여진 책으로서 유럽전역을 중심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라 많은 팬들을 확보하며 기대치를 높혔다.
당연한 얘기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더와 미니모이]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원작에 충실한, 아니 충실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뤽 베송은 자신이 창조한 텍스트안의 세계를 너무나도 능수능란하게 스크린으로 펼쳐놓는다.
ⓒ Europa Corp./Avalanche Productions/The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부모는 돈을 벌기 위해 타지에 나가있고(이 설정은 뤽 베송 자신의 자전적 경험이라고 말한바 있다), 실종된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던 소년이 집을 차압하려는 채권자들의 독촉 때문에 할아버지가 숨겨놨다는 보물을 찾아 2mm 크기의 미니모이들이 살고 있는 소인국 세계로 떠난다는 이 이야기는 얼핏보기엔 도식적이고 뻔한 플롯 때문에 흥미를 반감시킬 우려가 있지만 인간과 공존하는 소인국 세계의 기상천외한 모습을 구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 한가지 이 작품의 매력은 그런 뻔한 줄거리를 완성시켜나가는 영화의 실험적 형태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절묘히 뒤섞인 [아더와 미니모이]는 어린시절 상상하던 동화속 세상의 훌륭한 구현체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라는 CG캐릭터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듯, [아더와 미니모이]속 등장인물들은 CG로 만들어진 가공의 캐릭터임에도 충분한 생명력을 얻어 실사를 방불케하는 연기를 선사한다.
물론 이같은 CG캐릭터의 생동감은 성우들의 연기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마돈나, 로버트 드 니로, 스눕 독, 하비 케이텔, 데이빗 보위 등 세계적인 배우 및 가수들이 총출동해 각 캐릭터마다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50세를 넘긴 마돈나는 외모상으로 20대 초반의 젊은 모습을 지닌 셀레니아 공주 역을 맡았음에도 놀랄만큼 흡입력있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아역 배우인 프레디 하이모어 또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양쪽에서 배우로서의 연기와 성우로서의 두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하는 중책을 맡았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무난한 연기를 보여주며 헐리우드 아역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배우로서의 재능을 선보인다.
ⓒ Europa Corp./Avalanche Productions/The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아더와 미니모이]는 전체적으로 무난한 스토리와 적당한 난이도의 긴장감을 갖춘 가족 오락영화로서 헐리우드식 3D 애니메이션과 차별되는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지만 영화관의 주 관객층을 형성하고 있는 2,30대 커플들의 입맛에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런지도 모르겠다. 또한 3년이나 늦게 개봉하는 점도 영화의 신선도를 떨어뜨리는 감점요인.
그러나 1편인 [아더와 미니모이]가 전 유럽 지역에서 흥행에 성공한 덕분에 올 하반기에는 2편인 [아더와 말타자르의 복수]를, 2010년에는 3편인 [아더와 두 세계의 전쟁]이 각각 개봉될 예정이라니 속편을 기다리는 기간이 줄어들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될까. 프랑스의 조지 루카스를 꿈꾸는 뤽 베송의 야심찬 판타지 3부작이 어떻게 완성될지 사뭇 기대된다.
* [아더와 미니모이]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Europa Corp./Avalanche Productions/The Weinstein Company.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영화 > 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 - '디스트릭트 9'의 출발점 (28) | 2009.10.26 |
---|---|
옐로스톤 - 생태계의 위대한 예술작품 (7) | 2009.08.18 |
요시노 이발관 - 시골마을 소년들의 작은 쿠데타 (20) | 2009.07.01 |
이장호의 외인구단 - 1980년대 대중문화의 단편을 살펴보다 (31) | 2009.06.04 |
엽문 -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견자단의 명품액션 (38) | 2009.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