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81
사상 최초로 게임을 스크린으로 옮긴 [슈퍼 마리오]의 대실패 이후로도 헐리우드를 비롯한 각국의 영화계는 끊임없이 게임의 실사화를 시도해 왔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래도 그 중에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처럼 독자적인 영화노선을 잘 키워간 케이스도 있었고, [사일런트 힐] 같이 원작의 분위기를 훌륭하게 담아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툼 레이더]는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캐릭터 싱크로율을 아주 잘 살린 작품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지요.
이제 게임의 영화화를 논하자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얘기거리가 있으니 그 이름도 유명한 우웨 볼 감독입니다. 일각에서는 장르영화계의 제왕, 아니 재앙이라고까지 불리는 이 분은 언제부터인가 평단과 관객들, 특히 게임팬들에게 있어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는데요, 과연 이 양반이 뭘 어쨌길래 그토록 구설수에 오르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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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웨 볼이란 사람에 대해 잠시 알아봅시다. 1965년 독일태생인 우웨 볼은 그 험악한 인상처럼 한때 아마추어 복싱을 하기도 한 인물인 동시에 무려 쾰른대학교 문학박사과정을 마친 인텔리이기도한 '괴인'입니다.
1991년 [German Fried Movie]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국내에는 [레저렉션 2]로 알려진 TV용 영화 [Sanctimony]로 본격적인 헐리우드 상업영화로 진출하는데요, 그로부터 3년뒤 오늘날의 우웨 볼을 있게 한 엄청난 작품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작품이 바로 세가사의 초인기 건슈팅 게임을 영화화한 [하우스 오브 데드]란 작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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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비교적 무난했던 게임의 원작 스토리를 폐기한채 틴에이저 슬래셔무비 스타일의 스토리로 밀어붙인 영화인데요, 영화속 좀비들이 좀비가 아니라 무슨 강호의 은둔하던 고수마냥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하며 주인공들과 싸움을 벌입니다. 원작파괴에 유치뽕짝의 화면빨, 그리고 공포영화가 무섭기는 커녕 실소만 터져나오는 [하우스 오브 데드]는 우웨 볼을 일약 괴작계의 거장으로 등극시키게 되지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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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웨 볼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2005년에는 차기작으로 호러 어드벤처 게임의 걸작 '얼론 인 더 다크'를 영화화한 [어둠 속에 나홀로]를 발표합니다. 이 작품에는 한때 청춘스타로 인기를 얻었던 크리스찬 슬레이터와 스티븐 도프, 그리고 타라 레이드 등 제법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이 출연합니다만... 호러로 시작해 SF 크리처물로 돌변하는 영화의 괴작스러움은 저처럼 원작 게임의 후덜덜한 완성도에 감동했던 팬들을 경악시키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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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같은해 우웨 볼은 게임을 원작으로 만든 또하나의 작품 [블러드레인]을 연달아 발표하는데요, 이 작품에는 [터미네이터 3]로 단숨에 이름을 알린 크리스타나 로큰을 비롯, 안젤리나 졸리 이래 연기력과 액션연기 모두 소화 가능한 유망주 미셸 로드리게스, [간디]의 오스카 주연상 수상에 빛나는 벤 킹슬리, [킬 빌], [저수지의 개들] 등 쿠엔틴 타란티노 사단의 감초 마이클 매드슨, [팬텀]의 빌리 제인 등 이름만 들어도 도무지 우웨 볼과는 매칭이 안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합니다. [블러드레인]은 무려 제작비의 10% (240만 달러)를 극장에서 벌어들이는 한편 그해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과 작품상 등 6개부분에 산뜻하게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거두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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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짧은 기간에 무려 3연 타석을 날린 우웨 볼은 폭주는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2007년에는 자그마치 3편의 영화를 공개하는 괴력을 발휘하는데요, [포스탈], [씨드], [블러드레인 2] 등을 차례로 내놓습니다. 물론 비평가들은 지칠줄 모르는 우웨 볼의 삽질에 연일 혹평을 가했고 이를 참다못한 우웨 볼은 깜짝 놀랄 제안을 합니다. 2
“비평으로 날 까고 싶다면 먼저 육탄전으로 붙어보자꾸나!”
네, 명색이 영화감독이라는 사람이 자신에 대해 혹평한 평론가 다섯명에게 현피를 뜨자고 제안한 겁니다. (도대체 비평하는거랑 권투랑 뭔 상관인지?) 대결 방식은 10라운드짜리 복싱 경기. 스페인 말라가에서 평론가 한 사람을 제압한 그는 이어 벤쿠버에 설치된 특설링에서 4명의 평론가를 차례로 KO 시키며 말하기를 '나한테 머리를 몇 번 맞더니, 이제는 내 영화가 재밌어졌다고 한다' 하며 승리를 자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여봐란듯이 차기작의 후반작업에 들어가는데요, 그중 하나가 오늘 소개할 [왕의 이름으로] 입니다. [왕의 이름으로]는 언뜻 제목만 봐서는 게임을 원작으로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영어판 원제인 'A Dungeon Siege Tale'을 보면 짐작이 가능합니다. 응? Dungeon Siege? 네, 한때 [디아블로]의 뒤을 이을 만한 수작 RPG로 게임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바로 그 '던전시즈'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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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레지던트 이블], [모탈컴뱃] 등 게임원작영화에 어느정도 일가견이 있던 폴 W. 앤더슨 감독에게 맡겨질 뻔했던 [왕의 이름으로]는 안타깝게도 우웨 볼의 마수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웨 볼 감독의 작품치고 이례적으로 60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이번 작품에는 최근 다작활동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제이슨 스태덤을 비롯해 왕년의 액션스타 버트 레이놀즈, [좋은 친구들]의 레이 리요타, [헬보이]의 론 펄만, [반지의 제왕]의 존-리스 데이비스, [딥 임팩트]의 릴리 소비에스키, [할람 포]의 클레어 폴라니, 그리고 [블러드레인]에서 우웨 볼과 팀웍을 이뤘던 크리스타나 로큰 등 그야말로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이번 캐스팅이 놀라운건 기존작들이 이름값에 비해 다소 유효기간(?)이 지난 배우들-이를테면 크리스천 슬레이터 처럼-을 주로 섭외해 온것에 반해 제이슨 스태덤이나 론 펄만 같은 배우들은 아직까지도 헐리우드에서 메이저급 작품에 원톱 주연으로 출연할 만한 네임벨류가 있는 현역 스타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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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이름으로]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게임의 설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던 농사꾼(파머)이 괴물집단인 크러그족의 약탈에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 납치당하게 되자 복수를 위해 홀연히 일어선다는 내용이 줄거리가 되겠습니다. 여기에 [스타워즈 Ep.5]에서 이미 25여년 전에 조지 루카스 감독이 써먹었던 '내가 니 애미다' 플롯을 재탕하고, [반지의 제왕]에서 봐왔던 화면과 클리셰들이 대거 사용되고 있지요.
아니, 실제로도 [왕의 이름으로]는 아무 상관도 없는 [반지의 제왕]을 지나치다 싶을만치 의식하고 있는 듯 합니다. 능선을 달리는 원정대의 모습을 상공에서 클로즈업 하는 시퀀스나 오크족과의 전투씬을 연상케 하는 크러그와의 전투씬, 완소 캐릭터 레골라스를 닮은 꽃미남 캐릭터의 등장 등등 영화 여기저기에서 유사한 기시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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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렇게 따라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레벨의 차이랄까요. 6천만 달러면 결코 적은 돈은 아닌데 그 돈을 배우들 캐스팅 비용에 전부 꼴아박은 것인지 영화를 이렇게 B급스럽게 만든 재주를 우웨 볼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CG의 사용도 영 어설플뿐더러 판타지 장르의 묘미인 '모험'의 재미가 전혀 살아있지 않습니다. 특히 원작 게임이 자유도가 높은 모험의 요소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실사화는 실망을 넘어서 거의 절망에 가깝습니다.
영화의 1/3 이상은 전투씬과 액션으로 채워져 있는데, 사실 제이슨 스태덤이 누굽니까. 서양 배우들 중에서는 그나마 액션의 '가오'가 제대로 나오는 배우 아닙니까? 그런데도 [왕의 이름으로]에서의 제이슨 스태덤은 그저 게런티 때문에 얼굴마담으로 등장한 것인지 액션의 파워도 전혀 느껴지지 않고 액션배우치고는 연기력이 꽤 좋은 배우임에도 성의없는 연기를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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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펄먼은 [헬보이]로 꽤 인지도가 높아졌는데도 뭐할려고 이 영화에 출연해 별로 비장하지도 않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며, 버트 레이놀즈 옹은 숀 코네리 처럼 품위있는 노장 배우의 멋진 모습을 기대했건만 어쩌자고 우웨 볼의 마수에 말려들었으며, 존-리스 데이비스는 이따구 영화 하나 찍자고 [인디아나 존스 4]를 포기한 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영화속에서 비중이 거의 없는 크리스타나 로큰은 감독한테 약점이라도 잡혔을라나요? 왜 자꾸 우웨 볼 영화에 그 이쁘장한 얼굴을 디미는겨..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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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이름으로]는 2006년에 촬영이 완료되었지만 개봉관을 잡지 못해 애를 먹다가 후반작업을 거쳐 2008년 1월에야 가까스로 북미 개봉을 하게 됩니다만 결과는 뭐... 안습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버트 레이놀즈), 여우조연상(릴리 소비에스키)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우베 볼은 꿈에도 그리워 하던 최악의 감독상을 수상하게 되었지요. 짝짝짝!
하지만 이런 건 이미 우웨 볼 감독에게는 아웃 오브 안중입니다. 계속해서 그는 [어둠속에 나홀로 2] (이건 제작만)와 [파 크라이]를 내놓으며 여전히 게임원작영화의 제왕임을 자처했고 앞으로도 [블러드레인 3]와 [스타 크래프트] 3부작 (이건 아직 루머), 그리고 아직도 영화화를 기다리고 있는 무수한 작품들이 우웨 볼의 리스트에 오르락 내리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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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프 라이프]에 관심을 보였던 그는 '고든이 사랑에 빠진다'는 정신나간 시놉시스를 제출해 관계자로부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는가 하면, 코나미의 초 히트작 [메탈기어 솔리드]의 영화화에도 자신이 감독을 맡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냈다가 코나미 측에서 그것만은 제발 참아달라며 극구 만류한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만드는 영화마다 개죽을 쑤는데도 도대체 무슨 돈으로 영화를 계속 만드는 거냐, 제작자들은 정신병자냐, 뒷마당에 유전이라도 있는거냐 등등 갖가지 추측을 내놓습니다만 실은 독일정부에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자국 영화인들에게 흥행에 참패하더라도 구제받을 수 있는 자금지원을 해주는 법이 있었는데 우웨 볼 감독이 그 돈을 다 써버려서 2008년부터는 그 법안이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웨 볼 영화가 극장 수익은 참담한게 사실이지만 부가판권 시장이 발달한 나라들에서 랜탈 및 셀스루 시장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제법 쏠쏠해 본전치기 이상은 했다는군요. (역시 괴작은 매니아들이 키우는 겁니다.)
여러 얘기를 늘어놓았습니다만 사실 [왕의 이름으로]는 우웨 볼 감독의 영화치고는 준수한 편에 들어갑니다. 정말 나머지 작품들은 차마 입에 올리기 조차 민망할 정도이지만 그간 워낙에 '괴작열전' 코너에 우웨 볼 작품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침 [왕의 이름으로]가 국내에도 정식으로 개봉했기에(사실 쥐도새도 모르게 단관개봉했다가 일주일도 안되 간판내린걸 정식 개봉이라고 해야하나효 ㅜㅜ) 이 기회를 빌어 우웨 볼 감독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게 되었네요.
끝으로 [슈퍼 마리오]를 리메이크 하지 않겠냐는 MTV와의 인터뷰에서 우웨 볼이 보인 반응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MTV: 만약 [슈퍼 마리오]의 극장판을 다시 만든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볼: 노오오오오우~ [슈퍼 마리오]라고? 절대 안 만들거야.
MTV: 하지만 그것보다 더 잘 만들 방법이 있을거 같은데?
볼: 없어!
P.S:
* [왕의 이름으로]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Herold Productions/Boll Kino Beteiligungs GmbH & Co. KG.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자료: 네이버 영화(ⓒ NHN Corp. All Rights Reserved.), IMDB(ⓒ IMDb.com, Inc. All Rights Reserved.), 블러드레인(ⓒ Herold Productions/Boll Kino Beteiligungs GmbH & Co. KG. All Rights Reserved.),던전시즈 게임(ⓒ Microsoft Game Studios. All Rights Reserved.), Visiting Uwe (ⓒ Art 'n' Crap/ Computec Media.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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