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96
지난 2009년 2월 발매된 ‘스트리트파이터 IV’는 전세계 280만장의 판매기록을 세우며 오랜만에 대전게임의 붐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때를 같이 해 개봉된 영화 [스트리트 파이터: 춘리의 전설]이 망하는 바람에 큰 시너지 효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만 곧 발표될 ‘슈퍼 스트리트파이터 IV’로 인해 팬들의 관심이 다시 한번 불붙기 시작할 듯 합니다. 이에 괴작열전에서는 특별히 '스트리트 파이터'를 소재로 한 괴작들을 연속으로 다루는 특집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헐리우드판 [스트리트 파이터]를 소개한 적은 있지만 (지난 리뷰 참조 1부, 2부) 아마도 이번에 소개할 작품들은 그 충격의 강도가 더 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유행을 탔다하면 미칠 듯이 번져나가는 것이 한국이지요. 블리자드의 야심작 '스타 크래프트'가 유독 한국에서만 그렇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은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그 옛날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전국의 오락실을 '워류켄~'의 함성으로 물들인 것도 새삼 놀랄일은 아니겠지요. 뭐 게임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자세히 다뤘으므로 그건 생략하기로 하구요, 암튼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사상 유례없는 인기를 끌자 한국의 몇몇 영화 제작자들은 아동용 영화와 게임의 접목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 Capcom. All rights reserved.
그래서 탄생한 실사판 작품이 [스트리트 파이터: 가두쟁패전]과 괴작영화의 거장 왕룡 감독이 '맹구' 이상훈을 타이틀롤로 앞세워 만든 [맹구 짱구 스트리트 화이어], 오요섭 감독의 [영 스트리트 파이터], 그리고 김청기 필름의 [스트리트 파이터 Q판] 1인데요, 오늘 소개할 작품은 그나마 국내 관객들에게 가장 인지도(?)있는 작품인 [스트리트 파이터: 가두쟁패전](이하: 가두쟁패전)이 되겠습니다. 2
ⓒ 서울영화제작소. All rights reserved.
이 작품은 1992년에 제작된 비디오용 시리즈물로서 사실상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실사로 옮긴 전세계 최초의 작품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원작을 게임에서 따왔다기 보다는 원작 만화에서 따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군요. 워낙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인기였던 시절이었는지라 관련 상품이 산더미처럼 쏟아지던 상황에서 당시 '천하만화'라는 잡지에 홍콩에서 건너온 이중흥-허경심(허경영 아님 ) 콤비가 내놓은 '스트리트 파이터: 가두쟁패전'이라는 만화가 연재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 천하만화사. All rights reserved.
이 만화는 캐릭터의 디자인과 국적 및 기술 등의 기본적인 설정만 게임에서 들여왔고 나머지 스토리 라인은 꽤나 독자적인 것이었는데요, 미소 양국의 분쟁이 핵전쟁으로 치닫고 난 후 사령관 바이슨이 권력을 장악, 1년에 한번 격투대회를 열어 꿈의 도시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무협만화를 전문으로 양산한 두 작가의 성격상 무협지의 스토리를 띄고 있습니다만 춘리와 블랑카가 배다른 남매라는 식의 황당한 설정이 담긴 일종의 동인지 형식이라 미성년자는 관람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뭐 볼 사람은 다 봤을거라는 추측이 가능한.... 흠흠.
암튼 실사판 [가두쟁패전]은 위의 코믹스에 기초를 두고 제작된 영화입니다. 왜 게임의 줄거리가 아닌 코믹스의 줄거리를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는데, 아마도 캡콤사로부터 정식 라이센스를 따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디오 첫부분에는 이 작품의 라이센스 관계를 명시해 놓고 있는데, 캡콤이 아닌 홍콩의 Jademan Comics co. 및 천하만화와 라이센스를 맺은 것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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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실사로 탄생해 수많은 초중학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가두쟁패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지금도 가끔 포털사이트에 동영상 클립이 올라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만큼 [가두쟁패전]의 상태는 심각할 정도로 안좋습니다. 하긴 그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헐리우드조차 영화를 개판으로 만드는 마당에 초절정 쌈마이 정신으로 무장한 일개 영세업체에서 만드는 비디오용 영화의 퀄리티가 좋을 것을 기대한다면 그야말로 꿈도 올컬러로 꾸는거죠.
[가두쟁패전]의 기본적인 시대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서울영화제작소. All rights reserved.
서기 2010년 (올해로군요 ),제3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후 ,
인류는 이 무서운 재앙에서 벗어나 생존과 미래의 삶을 위해 모든 무기의 금지법을 제정, 통과시킨다.
그로부터 10년후, 핵전쟁의 결과로 지각의 변동이 생겨 하나의 대륙과 망망대해가 생겼고 인류는 그때부터 국경이 없어진다.
얼핏보기엔 평화로운 것 같지만, 핵 방사능의 확산과 식량난으로 엄청난 괴로움을 겪게 된다.
아직 살아남은 생존자들, 방사능에 면역이 생긴 인간들은 그들의 호전성을 유발시킨다.
무기는 사라지고 양육강식의 처절한 생활을 하면서 인류는 3등분 되는데, 이름하여 강자, 약자, 지하인이다....
아~ 이 얼마나 [북두의 권]스럽고 [매드맥스]틱한 스토리입니까?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오지 않습니까? 이 드라마틱한 설정을 배경으로 꿈의 도시를 가기 위해 가두쟁패전에 참가하는 리우와 켄의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거죠.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가두쟁패전]은 진정한 저예산 영화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작품입니다. 그 없는 예산에 코스튬을 장만하느라 고생했을 의상담당자를 생각하면 눈에 쓰나미가 몰려오는군요.
또한 세트장 없이 길거리나 공사판, 동네 야산 등등을 전전하며 찍는 바람에 한편의 UCC를 연상하듯 저렴한 배경들이 압권을 이룹니다.
ⓒ 서울영화제작소.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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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헐리우드판 [스트리트 파이터]가 각 캐릭터들의 필살기를 가급적 현실적인 범위에서 커버한 반면 [가두쟁패전]은 보다 게임의 초현실적인 스타일에 가깝게 표현하려한 흔적이 보이는데요, 가령 장풍기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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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저작권을 지나치게 의식해서인지 원작 게임과의 거리감을 두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은 가뜩이나 빈약한 작품의 질을 더욱 저하시키고 있는데요, 신무천황, 현무천마 같은 생소한 캐릭터를 집어넣은것도 그렇지만 전체적인 상황 설정 자체가 게임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 그저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아무리 핵전쟁 이후라지만 생계를 위해 공사판에서 노가다를 뛰는 류와 켄은.. 너무 비참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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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 아니 이게 아니지. 가일을 가일이라 하지 못해 규리라 하고 바이슨을 빈슨이라 하며, 사가트를 쌍가트로, 달심을 달라이신으로, 류를 리우로 발음하는 등 전체 캐릭터의 이름을 약간씩 삑사리내서 사용한 것도 참으로 아스트랄한 상황입니다. (어떤 사람은 번역의 오류라고 하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의도적인 작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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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쌈마이 영화지만 제작 과정 또한 순탄치 만은 않은 듯 한데요, 그 대표적인 예가 주연 배우들의 교체입니다. 규리 역의 박대윤은 5편 이후에 이무룡으로 교체되었고, 쌍가트의 경우 무려 1부가 끝날때마다 배우가 계속 바뀌어 무려 3명의 배우가 쌍가트를 연기하는 등 난항을 겪다가 결국 16부(3부 4편)에서 미완의 상태로 제작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촬영이 종결되고 맙니다. 이렇게 최초의 실사판 '스트리트 파이터'인 [가두쟁패전]은 원작 코믹스의 스토리를 등에 업고 비디오 시장에 당당히 진출했으나 제작 중단으로 쓸쓸히 사라지게 된것이지요.
ⓒ 서울영화제작소. All rights reserved.
[가두쟁패전]이 가진 의미는 세계 최초로 실사판 '스트리트 파이터'를 만들었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도 가능한 한 게임과의 싱크로를 맞추려 한 성의를 찾아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것이 뜻대로 되진 않았습니다만 적어도 그런 시도는 있었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겠지요.
어쨌거나 '스트리트 파이터'의 실험작들은 이제 막 포문을 열었을 뿐이었습니다. 이어지는 괴작열전에서는 후속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스트리트 파이터: 가두쟁패전]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서울영화제작소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스트리트 파이터 2 게임(ⓒ Capcom. All rights reserved.), 천하만화(ⓒ 천하만화사.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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