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 셀 애니메이션계의 독보적인 강자로 군림해온 월트 디즈니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이라는 변화의 물결속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강력한 라이벌들을 맞아 힘겨운 싸움을 벌이다 급기야 대세가 되어버린 3D 애니메이션 시장을 다른 회사들에 내어주고 말았다. 자체적인 기술력의 한계를 느낀 디즈니는 동종업계의 라이벌 픽사 스튜디오와 손잡아 추락한 위상을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론 [토이 스토리]부터 이어진 픽사의 불패신화는 계속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천재집단' 픽사의 영광이었을 뿐, 디즈니에게 돌아갈 몫은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디즈니가 독자적으로 제작한 [치킨 리틀], [로빈슨 가족]의 실망스런 결과는 픽사없는 디즈니의 무력한 한계를 증명했을 뿐이다. 이제 다시한번 독자적인 3D 애니메이션에 도전한 [볼트]를 통해 과연 월트 디즈니는 예전만큼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1.무난한 스토리와 캐릭터
원래 [릴로 앤 스티치]의 조감독 출신인 크리스 샌더스가 "American Dog" 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던 이 작품은 볼트의 모습이 스티치에 가깝게 묘사되었고, 미튼즈 역시 애꾸눈을 한 캐릭터로서 수컷 고양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 윌리엄스([뮬란]의 각본가)가 감독을 맡게 되면서 배경과 캐릭터가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거치게 되었다.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가고 슈퍼 파워를 지닌 개 볼트는 미국의 인기있는 TV 드라마 속 주인공이다. 문제는 볼트 자신이 연기자가 아닌 실제 슈퍼독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 리얼한 연기의 극한을 끌어올리기 위한 제작진의 계획으로 볼트는 트레일러에 갇혀 스스로의 정체성을 모른채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돌발사태가 벌어져 순식간에 뉴욕으로 홀로 오게된 볼트는 자신이 평범한 개에 불과하며 그전까지의 삶은 모두 허구였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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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트루먼 쇼]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볼트]의 구성은 신선함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특히 볼트와 소녀가 고양이를 기르는 악당과 맞선다는 작품 속 허구의 내용은 유명한 TV 애니메이션 [형사 가제트]와 놀랄만큼 흡사한데, 심지어 주인공 소녀의 이름이 두 작품 모두 페니(Penny)라는 점과 개의 이름이 모두 B로 시작([볼트]-Bolt, [형사 가제트]-Brain)한다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트]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3D 캐릭터가 주는 특유의 입체적인 특징이 '강이지' 볼트의 캐릭터와 제법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까닭에 애니메이션 속 볼트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상당수 여성관객들은 '꺄악~'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에 충분하다. 또한 조력자로 등장하는 까칠한 고양이 미튼즈나 열혈 햄스터 라이노 역시 감칠맛을 돋구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2.전형적인 틀에 안주하다
사실 픽사의 작품을 능가하리만큼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주는 초반의 액션 시퀀스나 캐릭터 구축의 단계만큼은 대단히 만족스럽다. 그러나 중반부터 기존 애니메이션들의 식상한 메시지를 반복하면서 [볼트]는 힘을 잃는다. 중간중간의 유머와 반려동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드러내는 등 여러 가지 극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눈에 띄게 안전한 길을 택한 제작진의 선택이 실망을 주는 것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볼때 [볼트]는 전형적인 가족용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틀안에서 무난한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으나 그 이상 더 한발짝 나아가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보다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기에 그 아쉬움은 더 크게 느껴진다.
3.픽사의 그늘을 벗어났는가?
디즈니-픽사의 이름을 버리고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볼트]를 순수한 디즈니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 이유는 픽사의 핵심 인물인 존 라세터를 프로듀서로 영입했기 때문인데, 일단 이러한 디즈니의 선택은 어느정도 효과를 거둔 듯 하다. 실제로 존 라세터는 구태의연한 감독 위주의 중앙집권적 제작 시스템에서 탈피해 픽사 스튜디오의 시스템을 도입, 모든 스탭에게 창의성을 발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볼트]는 기존 시스템의 한계에서 벗어나 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결과물을 도출해 냈는데, 과연 이러한 성과를 디즈니의 독자적인 것으로 봐줄 수 있느냐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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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2008년 궁극의 창의력을 선보인 [월-E]의 후덜덜한 완성도와 비교해 볼 때 디즈니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캐릭터의 구축은 어느정도 합격점을 줄 수 있더라도 신선한 아이디어와 빈틈없는 스토리의 완벽함에 도달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볼트]로 인해 디즈니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이대로 픽사를 벤치마킹하는 선에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디즈니 고유의 색체를 발전시켜 나갈것인가 하는 문제다. [볼트]는 이제 막 갈림길에 들어선 디즈니의 과도기적인 작품인 셈이다.
4.훌륭한 성우진
픽사를 뛰어넘기엔 2% 부족한, 그러나 기존 디즈니 작품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이 작품이 어정쩡한 위치에서도 꽤 재밌게 느껴지는 건 성우로 참여한 배우들의 열연 덕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헤어 스프레이]로 놀랄 만한 연기변신을 보여준 존 트라볼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주인공 볼트와 100%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보여주었고, 또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수지 에스먼 역시 세상사를 달관한 뒷골목 고양이 미튼즈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또한 미국내에서 떠오르는 틴에이저로 각광받는 마일리 사이러스나 명배우 말콤 맥도웰의 연기 또한 극의 완성도에 일조하는 뛰어난 목소리 연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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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총평
어디서 본듯한 여러 가지 설정들을 답습하고 있는 [볼트]는 비록 참신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작품이 아니라 할지라도 디즈니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다시 한번 기대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년 드림웍스의 [쿵푸 팬더]가 잠시나마 픽사의 철옹성을 흔들어 놓았듯 앞으로 또다른 신흥 강자가 탄생할것인지, 아니면 픽사의 독주가 이어질 것인지 그것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볼트]가 보여준 일말의 가능성은 디즈니의 도전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아직 픽사의 그늘을 벗었다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남아있지만 전통의 명가 디즈니의 독자적인 노하우와 인적 쇄신으로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볼트]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Disney Enterprises. Inc.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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