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의 살아있는 역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다시금 현역으로 돌아와 신작을 발표했다. 미야자키 본인이 공식 후계자로 지명했던 콘도 요시후미가 갑작스런 사고로 요절하고. 다시 후계로 삼았던 아들 미야자키 고로의 감독 데뷔작 [게드전기]가 평단의 높은 벽에 부딪히자 결국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4년만에 일선에 복귀한 것이다. 역시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래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1.초심으로 돌아간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전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비록 흥행에 있어서는 크게 성공했으나, 상당수 지브리 팬들에게 있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미야자키 하야오는 장남인 미야자키 고로를 후계자로 삼고 자신은 은퇴를 저울질한다. 하지만 어슐러 K. 르 귄의 유명한 판타지 '어스시의 전설'을 각색한 [게드전기]는 네러티브의 부조화, 영상미의 퇴보 등 지브리의 흥행력과는 별개로 완성도에 있어서 큰 오점을 남겼다. 확실히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정점으로 완만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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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브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는 [원령공주] 이래 성인관객을 흡수하려 했던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에게 동심을 주는 작품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종이에 그려 움직이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근원'이라는 취지하에 현 애니메이션계의 추세인 CG를 배제시키며 100% 수작업의 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등 과거 지브리의 전성기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던 [벼랑위의 포뇨]는 제작초기부터 악재를 만난 것이다. 캐릭터 디자이너 나쿠라 야스히로가 블로그를 통해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금붕어의 이야기를 다룬 자신의 작품집을 지브리에서 표절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관련 포스트 바로가기) 이같은 표절시비가 제작중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지브리측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2.훌륭한 작화와 음악
[벼랑위의 포뇨]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장담했듯 수작업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이가 그린 듯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장면을 손 터치로 그려낸 작화의 분위기는 CG에서 묻어나는 인공적인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작화 작업 후 채색 과정은 디지털로 이루어 졌기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천공의 라퓨타]같은 아날로그적인 질감은 없지만 확실히 [게드전기]때의 묘한 위화감은 많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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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역시 지브리의 영원한 동반자 히사이시 조가 참여했는데, 그가 작곡한 주제가 崖の上のポニョ는 10월 말 기준으로 32만장의 음반이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작화나 음악에 있어서 만큼은 '역시 지브리!'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
3.불명확한 주제의식
[벼랑위의 포뇨]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바다에 사는 인면어 '포뇨'가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준 소스케와 함께 살고 싶어 인간으로 변한다는 그런 얘기.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 바탕을 두었다는 사전지식이 없이도 충분히 [인어공주]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인어공주가 흠모했던 왕자님과의 비극적 사랑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바닷가 마을에 사는 5살 소년 소스케와 소녀가 된 인면어 포뇨와의 관계로 각색되었으며 드라마틱한 스케일을 강조하기 보다는 [이웃집 토토로]와 같은 현실 세계의 소박한 동화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이와 어른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던 과거의 지브리 작품들에 비해 [벼랑위의 포뇨]는 아이들에게 조차 싱겁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더군다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원령공주] 심지어 [이웃집 토토로]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환경문제의 메시지도 이번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비주얼과 음악, 스토리, 캐릭터가 기존 지브리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는 있지만 이번 작품은 확실히 심심한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65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 출품된 [벼랑위의 포뇨]는 같이 출품된 오시이 마모루의 [스카이 크롤러]와 함께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작품이기는 하나 대상을 받기에는 메시지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작품성의 한계를 드러냈다.
또한 '재팬 타임스'의 마크 실링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고 인기작 [이웃집 토토로]보다도 더 단순한 이야기'라고 평가했는데, 이것이 비록 초심으로 돌아온 미야자키에 대한 호평이었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눈높이를 낮춘 점에 있어서 만큼은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사항임에 틀림없다.
4.절반의 성과, 앞으로의 문제점
다행히 [벼랑위의 포뇨]는 개봉 첫주 15억7581만엔(1480만달러)을 벌어들이며 박스오피스를 점령했다. 이후 헐리우드 대작 [다크 나이트]의 전세계적인 돌풍이 무색할 정도로 [벼랑위의 포뇨]는 6주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며 전통의 강호 지브리의 흥행 파워를 과시했으나 작품의 전체적인 호응도에 있어서는 미야자키 감독 스스로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 시사회에서 아이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미지근했던 것을 두고 '아이들을 위해 만든 것인데, 헛수고였다'며 푸념섞인 발언을 한 감독 자신이 이 작품의 부족함을 가장 잘 알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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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브리표 동화의 명성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 의심치 않지만 확실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절정을 이룬 폭발적인 상상력의 발현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시작된 외국 소설의 각색이 되풀이되고 있는것도 그렇지만 제작초기 표절시비에 휘말릴 정도로 지브리 작품들은 심각한 아이디어 고갈에 직면한 듯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잇는 후계의 양성이다. 아무리 거장이라 한들, 전성기 때의 기량이 쇠퇴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며 고인이 된 콘도 요시후미가 보여주었던 후계체제의 가능성을 다시금 시험해봐야 할 때다. 아직도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철옹성 같은 존재가 아닌가.
P.S: 미야자키 하야오가 한국인을 싫어한다는 일부 루머는 역시 사실이 아닌 듯 보인다. 이번 [벼랑위의 포뇨]를 위해 직접 타이틀을 한글로 디자인해 보내주었다는 그의 열의를 봐서라도 말이다.
* [벼랑위의 포뇨]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2008 二馬力・GNDHDDT.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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