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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전에 :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작품의 특성상 정확한 의미를 규정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자기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따른 시각적 견해 차이가 그 어느작품보다 발생하기 쉽다는 것을 미리 밝혀둡니다. 따라서 본 리뷰는 리뷰어 본인의 의견일뿐, 이것이 옳다 그르다를 말할 성질의 글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려드립니다.


일본 로봇애니메이션의 황금기는 나가이 고 원작의 [마징가] 시리즈로 대표되는 1970년대의 슈퍼로봇계열과 토미노 요시유키가 시도한 리얼로봇의 대표작 [기동전사 건담], 이시구로 노보루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로 대표되는 80년대였다. 이후 물론 명맥을 유지하긴 했으나 로봇 만화는 이미 애니메이션의 '주류'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로봇 만화의 전성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1989년, 당시로선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라는 작품 정도로만 알려진 'Gainax'라는 회사에서 OVA인 [건버스터: 톱을 노려라]라는 열혈 로봇 만화를 내놓았다. 신인 감독 안노 히데아키는 이 독특한 작품으로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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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INAX. All rights reserved.

 각종 패러디에 열혈 로봇 컨셉을 첨가한 안노 감독의 데뷔작 [건버스터: 톱을 노려라
]

그리고 6년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이후 5년간 침묵을 지켰던 안노 감독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을 내놓게 되는데, 처음 이 작품이 방영될 때만 해도 반응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매니악한 그의 오타쿠적 성향이(사실 Gainax자체가 오타구 집단이긴 해도) 작품세계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차방영의 끝나자 이를 본 매니아들의 열화와 같은 (문자 그대로 광적이었다) 지지로 [에반게리온]은 일약 센세이션이 되고 만다. 당시 로봇 만화뿐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산업의 전체적인 침체기에 빠져있던 일본에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미 한물갔다고 생각되었던 로봇 만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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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INAX/ Project Eva/ TX. All rights reserved.

센세이션을 일으킨 안노 히데아키의 문제작 [신세기 에반게리온]

무엇이 이 작품을 이토록 돋보이게 하였는가? [에반게리온]은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라, 이웃나라인 한국, 더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Gainax를 일약 애니메이션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 . 사실 그간 Gainax는 기존의 흐름과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일관하였다. 때문에 줄 베른의 '해저 2만리'를 20세기식으로 해석한 [나디아]가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도 Gainax와 안노 감독의 고집 때문에 방송국과의 마찰이 심했고, 결국 방송국의 지원 중단까지 가는 바람에 Gainax는 [나디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바로 [에반게리온]은 그러한 Gainax의 굽히지 않는 작가주의의 결정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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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HK/ 総合ビジョン All rights reserved.

안노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좋은 반응에도 불구하고 NHK의 지원이 중단되어 심한 재정적 압박을 받은 작품


그렇다면 [에반게리온]은 무엇이 달랐던 것인가? 일반적으로 '로봇 만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해 보라. 아마 정의(또는 신념)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불태우는 주인공([마징가 제트]의 가부토 코우지), 악당들을 신나게 쳐부수는 주인공의 멋진 로봇 ([마징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슈퍼 로봇물들이 이에 속한다. [건담] 같은 리얼로봇 계열에는 예외적인 작품이 있긴해도...). 여자 주인공과의 로맨스([마징가 제트]의 코우지와 사야카, 그외 [건담] 시리즈, [마크로스]에도 로맨스는 필수적인 요소다). 악당의 최후..... 뭐 이런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러나 [에반게리온]은 기존의 선례를 완전히 깨부수는 모험을 감행한다.

먼저 주인공 이카리 신지는 기존 주인공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정의감에 불타오르지도 않으며 에바에 타기를 누구보다도 꺼려한다. 아버지가 시키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에바에 탈 뿐이다. 게다가 용맹스러움은 온데간데 없고, 자신에게 일말의 애정도 표현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찬 나약한 소년일 뿐이다. 그 뿐인가? 여주인공을 리드하는 기존의 캐릭터들과는 달리 오히려 여자들에게 휘둘리며 심지어 뺨도 수차례 얻어맞고... 아뭏든 남자다움을 보여주는 구석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이런 약해빠진 놈이 주인공이라니! [에반게리온]의 주인공은 상식을 뒤엎는 설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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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INAX/ Project Eva/ TX. All rights reserved.

 

그뿐만이 아니다. [에반게리온]에는 정형화된 "악(惡)"의 존재가 모호하다. 분명 네르프와 싸우는 "사도"라는 존재가 있긴해도 이 작품은 시종일관 이 사도의 정체와 그들이 인간을 습격하는 목적, 그들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사전 지식을 전혀 제공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사도가 과연 악한 존재인지, 그들이 적인지조차 분간할 수가 없다.

주인공들이 탑승하는 기체인 에반게리온 역시 기존 로봇들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이것이 과연 인간의 편에서 싸우는 정의의 사자인 것인지, 아니면 사도보다 더 위험한 그 어떤 존재인지, 관객들은 불안한 마음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에바는 때론 조종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폭주하기도 하며, 섬뜩하리만치 끔찍한 일을 자행하기도 한다. 실제로 겉모습에서도 에바에게는 알 수 없는 사악한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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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INAX/ Project Eva/ TX. All rights reserved.

지구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에반게리온. 어딘지 모르게 사악한 분위기가 내제되어 있다.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특이한 성격들을 가지고 있다. 집안일에 게으르고 난봉꾼같은 기질이 다분하지만 전투참모로서의 역할만큼은 확실한 미사토, 무표정한 얼굴과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 에바 0호기를 타는 레이, 엘리트 정신과 자존심으로 똘똘뭉친 2호기의 조종사 아스카,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어머니가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하는 자기혐오에 빠진 리츠코 등 모두가 청순가련형 여주인공이나 여전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이렇게 [에반게리온]은 기존의 틀을 깨고 90년대라는 새로운 트랜드에 맞게 로봇 만화의 기초를 염세주의적인 시각에서 다시 세웠다. 청춘의 성장, 고뇌, 방황, 고독감,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스스로의 고립이라는 로봇 만화로서는 표현하기 힘든 주제를 작품속에 표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지금까지도 [에반게리온]에 대한 매니아층과 안티매니아층을 만들 정도로 획기적인 발상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럼 [에반게리온]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사실 지금까지도 [에반게리온]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과연 알맹이가 실제로 있는 것인가, 아니면 쥐뿔도 없으면서 뭔가 있는 듯 허세를 부린 작품인가 하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 GAINAX/ Project Eva/ TX. All rights reserved.


기본적으로 [에반게리온]은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주축이 된다. 한명은 십대의 심리를 표현하는 주인공 이카리 신지, 또 한명은 어른들의 세계를 대변하는 카츠라기 미사토이다. 둘 다 실제적으로는 가족이 없는 외로운 존재다. (신지는 아버지에게 버림받다 시피 했으며, 미사토는 부모를 여의고 홀로 온천팽귄인 펭펭과 함께 살고 있다)

이 둘의 기묘한 동거는 현대 사회에서 보여지는 현상, 즉 스스로를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고립시키는 현상을 뜻한다. 타인과 자신을 가로막는 '마음의 벽'은 작품속에서 다른 모습 즉, 'AT필드'로 묘사된다. 더 나아가 현대인의 대부분이 겪고 있는 애정결핍에 대한 문제의 표출이기도 하다.

ⓒ GAINAX/ Project Eva/ TX. All rights reserved.

실제로 작품속의 모든 인물들은 애정결핍이라는 공통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아카키 리츠코는 겐도 사령관으부터의 애정에 목말라한다. 이는 가족없이 혼자사는 미사토에게도 마찬가지다. 레이 역시 누구에게도 애정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존재이며, 아스카의 경우는 더욱 심한 애정결핍 증세를 보인다. 겐도 사령관도 아내를 잃고 심한 상실감을 느낀 듯 하다.

신지의 경우, 아버지에게 버림받고나서 남에게 상처받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 한 나머지,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며 그것은 또다시 신지를 고립시키는 악순환을 낳게 한다. 작품속에서 가장 핵심으로 떠오르는 '인류보완계획'은 바로 '마음의 벽'인 AT필드가 없어지고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없어져서, 모두가 하나되는 세계를 말한다. [에반게리온]이 무엇인가 말해주고자 하는 주제가 있다면 필자의 견해로는 이것뿐이다.

사실상 [에반게리온]이 뚜렷한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인가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그렇지는 않다'라고 말하고 싶다. 안노감독 자신도 '인류보완계획'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원래부터 거창한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걸로 봐서 (바꿔말하면 이야기를 진행하다보니 거창해지더라..뭐 이런 얘기) 필자가 생각한 의미 이상의 깊이를 가진 작품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설정상 감독이 의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호함으로 인한 주제의 다변화랄까... 물론 이것이 지나치게 작용하여 TV판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완결되었을무렵, (아마 안티팬들로부터의 대규모 항의가 시작된 것도 이때쯤일 것이다) 의문점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급조한 듯한 결말로 막을 내렸다가, 후에 극장판으로 TV시리즈를 완결하겠다는 이례적인 발표를 하게 된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이 작품은 2개의 엔딩을 가지게 된 셈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 어떤 엔딩이라도 감독이 전달하려 했던 의도는 동일하게 풀이된다.

덧붙이자면 TV판 오프닝인 '잔혹한 천사의 테제'는 이 작품의 모든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아마 관객들은 스토리가 중반 이후를 넘어가야 그 사실을 눈치채겠지만 이미 안노 감독은 [에반게리온]의 모든 정보를 오프닝의 장면들과 가사속에 심어 놓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에반게리온]은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총 4번 감상하였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드는 애니메이션은 이 작품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괄성있는 작화와 스타일리쉬한 전개, 그리고 너무나도 훌륭한 성우들의 열연, 최고라는 찬사를 들을 만한 오프닝과 엔딩... 뭐하나 빠질 데가 없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안노 감독 역시 이 작품에 대한 꾸준한 업그레이드로 팬들의 구미를 맞춰주고 있다. (물론 얄팍한 상술이라고 비난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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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INAX/ Project Eva/ TX. All rights reserved.

[에반게리온]의 외전격인 게임 <강철의 걸프렌드>에 등장하는 히로인, 키리시마 마나


DVD로는 구버젼의 화면과 사운드를 대폭 업그레이드한 리뉴얼 버전을 선보였으며, TV판 21~24화의 내용을 첨가해 다시 편집한 확장판 버젼을 내놓았다. 지나친 울궈먹기라는 비난이 있을 정도로 게임 발매도 활발한데 PS2, PSP로 '에반게리온 2'가 출시되었으며, PC판으로는 [강철의 걸프렌드 1,2]라는 사이드 스토리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점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에반게리온]이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GAINAX는 새로운 비쥬얼을 선보일 총 4부작으로 구성된 가칭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리빌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2007년 초여름부터 2008년 초여름까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사골게리온'이라는 별명이 아깝지가 않을 정도다.

사실 어떤 작품보다도 [에반게리온]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것이 필자로서는 가장 부담이다. 역시 써놓고나니 수박 겉핥기 같은 리뷰가 되어 버린거 같아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에반게리온]의 논란은 둘째치고라도 애니메이션에 입문하는 분들께는 반드시 권하는 작품이다.




*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GAINAX/ Project Eva/ TX.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신비한 나라의 나디아(ⓒ NHK/ 総合ビジョン All rights reserved.), 건버스터( ⓒ GAINAX. All rights reserved.), 강철의 걸프랜드(ⓒ GAINAX/ Project Eva/ TX.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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