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시리즈로 남을 수도 있었던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제임스 카메론이 손을 뗀 시점부터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지사 생활 직전에 마지막으로 선택한 [터미네이터 3]부터 리부트를 선언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까지 총 3편의 [터미네이터]가 더 제작되었지만 어느 것 하나 원조의 명성을 조금도 따라잡지 못했지요.
마침내 제임스 카메론에게 다시금 판권이 회수되자 카메론은 지금까지의 곁가지를 흑역사화 시키고 [터미네이터 2]에서 이어지는 적통의 속편을 만들겠다고 선언합니다. 그것이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입니다.
[아바타]로 발목이 잡힌 카메론 대신 [데드풀]의 팀 밀러가 감독을 맡은 이 작품은 원조 사라 코너인 린다 해밀턴의 전격적인 귀환으로 큰 관심을 모았었죠. 여기에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합류, 막판에 “에드워드 펄롱이 존 코너로 돌아온다”는 카메론의 깜짝 발언으로 기대치가 치솟게 됩니다. 그야말로 “드림팀”의 완성이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핵심적인 부분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이 작품의 홍보에 카메론이 이러 저러한 설레발을 치고 있긴 해도, 정작 그는 이 영화의 감독이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조나단 모스토우, 맥지, 앨런 테일러 등 재능있는 감독들도 [터미네이터] 시리즈 하나로 치명상을 입었다는 점은 [터미네이터]가 제임스 카메론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그러한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카메론이 빠졌던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제임스 카메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한 가지 설정을 통해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꽤나 충격적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큰 무리수를 둔 셈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미래의 반군 지도자를 지키기 위해 한 명의 여성이 파견되고, 곧이어 터미네이터가 뒤를 쫒는데, 여기에 사라 코너와 사이버다인 101 터미네이터가 끼어들면서 굉장히 복잡한 양상을 띌…..듯 하지만 스토리가 산으로 가버립니다. 설정 구멍은 숭숭 뚫려있고, 개연성 제로에, 뭐 하나 납득할만한 구석이 전혀 없다는 얘기지요.
가장 큰 문제는 영화의 본질, 즉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실은 ‘타임 패러독스’의 묘미를 은근히 녹여낸 시간 여행물이라는 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한가지는 1,2편이 갖춘 스릴러적인 요소 또한 거의 드러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초기 [터미네이터]를 잘 관찰하면 터미네이터가 지닌 무시무시함과 질기도록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그 자체로도 공포감을 유발한다는 것인데, [다크 페이트]에서의 터미네이터는 성능이야 어쨌든 그러한 공포를 전혀 전달하지 못합니다.
결국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시리즈의 적통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이 역시도 기존의 팬픽 수준에 불과했던 작품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사족에 불과합니다. 감흥도 없고, 그나마 있는 볼거리도 그냥 여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불과한 느낌을 줄 뿐이지요. 이제 이 시리즈는 놔 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심폐소생술로도 살리지 못할 프렌차이즈는 기억에 묻는 것이 정답일 듯 싶네요.
P.S
1.쿠키 없습니다.
2.[터미네이터]의 상징적 존재인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비중이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이는 시리즈의 쇠락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겠지요.
3.액체 터미네이터 설정은 무려 25년이 지난 구닥다리입니다. 그 당시엔 참신했을지 몰라도 이젠 뭔가 더 새로운 게 나올 법도 한데 너무 나태한 게 느껴져서 짜증이 나더군요.
4.헐리우드의 안티 에이징 기술은 정말 놀랍습니다. 아마도 이게 미래의 헐리우드 산업에서 굉장한 역할을 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사망유희]의 완전판을 내놓는 걸 두 눈으로 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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