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2013년 애쉬튼 커처가 잡스 역을 맡았던 [잡스]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잡스 전기영화다. [잡스] 리뷰(바로가기)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전기영화의 가장 큰 딜레마는 사실과 허구성의 저울질이다. 얼핏 보면 쉬운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해 다큐와 영화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한 전기영화는 그 장르적인 특성 때문에 매우 지루해질 수도, 매우 흥미진진할 수도 있다.
[잡스]의 경우는 안일한 전기영화의 방향을 선택했고 (사실 기반이 된 텍스트 없이 일반화된 이야기를 영화로 구축한 것에 가깝다), 그 때문에 연기력을 다시 보게 만든 애쉬튼 커처의 연기를 제외하면 아주 밋밋한 영화였다.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잡스]가 보여주지 못한 영화 본연의 매력, 즉 ‘팩트’ (혹은 팩트라고 알려진 것들)를 관객에 전달하기 위한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확실히 보여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잡스]의 또다른 버전이 되었을테니까.
일단 이 작품은 윌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 근거한 오피셜 스토리다. 여기에 [소셜 네트워크]의 에런 소킨이 각본을 쓰고, 대니 보일이 메가폰을 잡은 만큼 [스티브 잡스]를 받치고 있는 기초는 꽤 탄탄하다고 볼 수 있다.
ⓒ Universal Pictures, Legendary Pictures, Scott Rudin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기대만큼이나 내러티브의 전달 방식은 신선하다. [스티브 잡스]는 그의 일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된 세 번의 신제품 발표회장을 무대로 삼고 잡스의 위기와 성공, 그리고 그 이면에 놓은 인간관계와 성품에 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종종 액자식 구성의 플래시백이 교차되는데, 대니 보일의 솜씨답게 꽤나 스타일리시한 방식의 교차 편집으로 갈등과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영화가 다루는 연대기의 폭은 [잡스]보단 협소지만 잡스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깊이는 훨씬 깊다. 애쉬튼 커처의 잡스가 그저 성질 더러운 천재 정도였다면, 마이클 패스벤더의 잡스는 인성의 특정 부분이 심각하게 결여된, 흔히들 말하는 ‘성공한 소시오패스’ 캐릭터를 잘 반영한다.
패스벤더의 연기는 오스카 후보에 오를 정도로 좋았지만 잡스란 인물에 대한 공정하고도 객관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 주변 캐릭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개인적으로는 워즈니악을 연기한 새스 로건의 연기가 맘에 들었는데, 새삼 잡스와 워즈니악의 차이가 무엇이었는지를 선명하고도 직관적으로 드러내주는 둘의 관계묘사가 탁월하다.
결론적으로 [스티브 잡스]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전기영화다. 오히려 영화적인 재미가 탁월하다보니 전기영화로서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착시현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진부한 전기영화의 클리셰를 과감히 탈피한 점은 높이 살만 하다.
P.S:
1.어쩌면 잡스라는 인물은 영화 속 워즈니악의 대사처럼 이진법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게는 분명 뭇 사람들에게 칭송받을만한 부면도 있었지만 비난받아 마땅할 결함도 있었고, 이를 평가하는 것은 영화를 본 관객의 몫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에 대한 어느 하나를 덜어내거나 더하려는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2.혹자는 잡스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성공 못했을거라 하는데, 저는 오히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을만한 재능과 성격을 타고난 인물이라고 생각되더군요. 단 여기엔 단서가 하나 붙는데, 잡스가 '금수저로 태어났다면' 이라는 단서입니다.
3.아이패드 프로에 스타일러스 펜을 포함한다는 뉴스 때문에 시끌시끌했을 때, 몇몇 사람들은 잡스가 스타일러스 펜을 싫어했다는 건 패드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쉴드치기에 바빴다지요. 영화가 (그리고 원작이 된 전기가) 밝혀주는 사실은 심플합니다. 잡스는 스타일러스를 싫어했고, 그 때문에 뉴턴 메시지 패드가 망한 것으로 단정짓습니다. 잡스가 원한건 오로지 다섯 손가락을 free하게 사용하는 기계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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