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 쉘터]는 [머드]로 호평받은 제프 니콜스 감독이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린 작품입니다. 2011년 작품으로 한국에는 뒤늦게 개봉되었던 영화죠. 영화의 포스터만 보면 마치 재난영화처럼 보입니다만 장르를 규정하기가 조금 모호하긴 합니다. 다분히 초현실적이면서, 어떤 의미로는 가족 드라마에 가까운 플롯을 띄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장르영화의 외피로 교묘히 은폐된 M. 나이트 샤말란의 [해프닝]이나 [싸인] 같은 영화라는 얘긴 아닙니다.
영화는 미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산층 가정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주인공 커티스는 블루컬러이지만 꽤 안정적인 직장과 사랑스런 아내, 그리고 청각장애가 있는 어린 딸을 가진 평범한 가장입니다. 성실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그는 동료로부터 '넌 잘하고 있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지요. 하지만 어느날 심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악몽을 꾸게 되면서 커티스의 삶은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개가 팔을 물어뜯고, 정체모를 사람들이 습격하며, 심지어 자신의 아내마저도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악몽속에서도 커티스는 항상 폭풍과 마주합니다. 급기야 꿈과 현실의 경계를 구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 그는 무리한 대출을 받아 앞마당에 방공호를 짓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남편의 변화에 우려를 나타내고, 커티스 자신도 이러한 행동의 이면에 정신병력이 있는 어머니의 영향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하면서 심리상담도 받아봅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이 예지몽이라고 믿는 커티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폭풍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버립니다.
ⓒ Hydraulx, REI Capital, Grove Hill Productions . All rights reserved.
스토리에서 알 수 있듯 [테이크 쉘터]는 잘 만들어진 한편의 심리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인간이 계속되는 악몽으로 인해 편집증적인 증상을 보이게 되는 과정 자체가 매우 밀도있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딱히 충격요법에 의존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지루하게 여길 관객도 분명 있겠지만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관객이라면 [테이크 쉘터]의 흡입력있는 전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더군다나 영화의 함의적 태도와 문법은 굉장히 세련된 맛이 있습니다.
우선 이 작품은 '미래에 닥칠 폭풍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한 중산층 가장의 불안감'이라는 영화적 소재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키워드를 조금 더 간추리면,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불안감'이 되겠지요. 일각에서는 [테이크 쉘터]의 은유가 너무 불친절하다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영화를 보면 꽤 많은 복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령 커티스의 딸이 청각장애인으로 보청기 시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미국 의료보험의 실태를 돌아보게 만들며 자동차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또는 처방약을 구입하면서 비용에 민감해 하는 주인공, 주말마다 장터에 나와 바느질한 물건들을 파는 아내의 모습 등 영화 전반에 걸쳐 부유하지도 않지만 그냥 저냥 살아가는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구 조건들이 나열됩니다.
[테이크 쉘터]에서 보여지는 폭풍의 실체는 바로 중산층 가장이 겪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표식인 셈이지요. 실제로 그러한 불안감이 커티스를 잠식하면서 그가 하나 둘씩 잃어가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답은 나와 있습니다. 조금 황당하게 느껴질지 모르는 마지막 장면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건 누구나 겪고 있는 미래의 불안감이 실제로 닥쳤을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이 바로 가족간의 믿음과 연대임을 강조하기 때문이지요. 이는 여느 진부한 가족드라마의 공식보다 훨씬 효과적이면서 신선한 결말이기도 합니다.
ⓒ Hydraulx, REI Capital, Grove Hill Productions . All rights reserved.
영화를 끌고 나가는 각본이나 연출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입니다. 난해하고 복잡한 내면을 연기하는 마이클 섀넌의 경우 이 작품으로 [맨 오브 스틸]의 조드 장군이라는 걸출한 배역을 따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명배우가 될만한 자질을 보여주었고, 불안함과 연민이 뒤섞인 눈빛으로 남편을 염려하는 아내 역의 제시카 차스테인 역시 이 작품 이후 [제로 다크 서티]에서 다시 한번 존재감을 과시한 걸 보면 [테이크 쉘터]가 이들 배우에게 얼마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커티스가 걱정이 되어 찾아온 형이 '요즘 같은 세상에 한번 삐끗하면 끝장'이라고 말하는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적어도 미국이라는 나라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기회의 땅이라고 불렸지요. 한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나라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이제 그런 기회의 문은 닫히고 있나 봅니다. 영화의 마지막 보루는 가족이지만 이미 IMF를 겪고 절망을 맛 본 수많은 가정들이 해체되는 상황을 경험한 우리에게 이 영화는 얼마나 현실적으로 와닿는 작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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