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철의 여인]은 영국 최초의 여성총리로 내리 3선을 지낸 마가렛 대처 수상의 이야기입니다. [더 퀸], [킹스 스피치] 등 현대사를 살아온 영국 권력자들의 영화는 하나같이 좋은 평가를 받아온게 사실이니만큼 영화소재로서는 손색이 없습니다. 여기에 현존하는 최고의 실력파 여배우 메릴 스트립이 대처 수상을 연기하니 이보다 더 구미가 당길순 없겠지요. 게다가 감독은 [맘마미아!]에서 메릴 스트립과 찰떡궁합을 보여준 필리다 로이드에요. 적어도 이번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 하나쯤은 너끈히 건질 수 있을 만한 느낌이 팍팍 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철의 여인]은 대처 수상의 재직당시 그 파란만장했던 정치사를 다루는 영화가 아닙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정치적 행보를 어느 정도 묘사한 영화이긴 한데, 그보다는 노년의 노망든 할머니의 심리적 공허함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하는게 맞겠네요. 영화는 회상을 통해 대처의 어린시절, 그리고 여성으로서 정치판에 몸담고 수상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내지만 이를 드라마틱한 전개로 꾸미진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에 담긴 의미를 캐치하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뭔가 전기영화에서 보여지는 극적인 구성이 돋보이질 않다보니 관객들은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조금 당혹스럽게 되지요. 계속 환영으로 나타나는 죽은 남편에 대한 애절함을 그린 영화라고 보기엔 남편과의 단란했던 과거를 조명하는 연결고리가 빠져 있고요, 남자들의 전유물인 정치판에 몸을 맡긴 철의 여장부를 부각시키기엔 이를 받쳐주는 사건들의 임팩트가 그리 크게 와닿지 않을 뿐더러 재직시절에 대한 에피소드가 너무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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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느껴지는 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한 여성으로서 노년에 그 모든 과거를 감당하기엔 너무 나약하다는 뭐 그런 것 정도인데, 이마저도 흐릿하게 주어지는 여러 실마리 중 하나에 불과할 뿐 뭔가 관객에게 명확히 주어지는 주제의식은 없어 보입니다. 한 시대를 휘어잡은 철의 여인도 늙으면 별 수 없구나 식의 이야기는 굳이 영화까지 만들어가며 얘기할 필요가 없잖습니까.
역시나 [철의 여인]에서 건질 수 있는 건 메릴 스트립의 연기입니다. 노년부터 중년 이후의 대처를 완벽한 메소드 연기로 재현한 그녀의 재능에는 그저 탄복할 따름이지요. 영화 속에 메릴 스트립이란 배우는 없습니다. 메릴 스트립을 닮은 대처 수상이 있을 뿐. 대처 수상 특유의 목소리까지 따라한 그녀에게 할 수 없는 배역이라는게 과연 있긴 있는 걸까요?
결과적으로 [철의 여인]은 많이 아쉬운 영화입니다. 소재로보나 배우로보나 이보다는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와줬어야 하는데, 감독의 연출력이 부실한 건지, 아니면 각본에 결함이 있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영화의 잠재적 가치를 모두 보여주는데는 역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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