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미쳤나보다. 한국의 겨울날씨는 삼한사온이라더니 칠한영온으로 바뀐지가 한달은 족히 된 것 같다. 다니엘 우드렐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윈터스 본]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요즘같이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 제격인 작품이다. 비단 영화 속 배경이 겨울이라서가 아니라 영화의 내용이나 연출 스타일이 매우 건조하고 차갑기 때문이다. '적막', '공허', '암울'. 이 삼박자의 이미지가 딱 맞아 떨어지는 [윈터스 본]은 마치 [이끼]를 연상시키듯 한 마을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은폐와 불쾌한 진실에 대한 영화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아는 조그마한 시골마을. 마약중독에 빠져 폐인이 된 엄마와 집나간 아버지, 그리고 어린 동생 둘을 데리고 홀로 소녀가장노릇을 하고 있는 리(제니퍼 로렌스 분)는 어느날 출소한 아버지가 가석방 조건부 출석을 이행하지 않아 보석금으로 담보를 잡힌 집이 날아갈 위기에 처했음을 알게 된다. 정해진 기한안에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식구가 모두 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이다.
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가지 아버지를 다시 찾아오거나, 아니면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담보계약을 무효화시키는 방법 뿐이다. 그러나 연을 끊다시피한 아버지의 행방은 묘연하기만하고 이제 리는 사라진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 홀로 탐문길에 오른다. 하지만 아버지와 관계된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고, 그의 행방을 더 이상 쫓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소녀는 온 마을로부터 '적'으로 간주된다. 기묘하고 무엇인가 은폐되어있는 듯한 마을의 분위기. 도대체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 것일까?
ⓒ Anonymous Content/Winter's Bone Productions. All Right Reserved.
[윈터스 본]의 장르적 베이스는 분명 미스테리 스릴러의 범주에 해당되지만 기실 영화의 느낌 자체는 잘만든 한편의 심리극을 보는 듯 하다. 아버지의 실종과 그 이면에 쌓인 진실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과정은 전혀 긴박하지 않으며 지나치게 차분하고 잔잔한 가운데 무채색으로 덧칠된 현실의 잔혹함만이 덩그러니 존재하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정서적 울림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너무나도 무미건조한 시선을 드리우는 탓에 장르영화의 묘미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윈터스 본]이 해외에서 극찬을 받은 이유는 주인공 리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의 열연 때문이리라. 안개속을 걷는 듯 흐릿하고 불명확한 영화의 시계(視界)속에서 제니퍼 로렌스의 존재는 유독 밝게 빛난다. 어지간한 성인 배테랑 배우도 소화하기 힘든 무표정의 다양한 감정 표현을 이제 갓 20세를 넘긴 배우가 해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이것은 스티븐 시걸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니 착오없길 바란다)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나선 소녀가장의 이야기의 끝자락에는 과연 가족의 재구성이라는 따뜻한 결말이 자리잡고 있을까? 그 결과를 알기 위해서라면 필히 영화를 관람하시길 바란다. 단, 그 결과를 알고나서 찾아오는 공허와 쓸쓸함의 후유증은 책임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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