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열전(續篇列傳) No.11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콤비가 의기투합한 [레이더스]는 1980년대 이후의 모험영화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국으로 가는 길], [용형호제], [쿼터메인], [구니스] 등 메이저와 B급 영화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온 어드벤처물은 어쨌거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영향력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물론 이런 작품들 가운데는 단순히 시류에 편승한 아류작도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영화도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로맨싱 스톤]은 단순한 아류로 보기에는 꽤나 잘만들어진 작품이었습니다.
ⓒ 20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의 아들로 영화계에 입문해 당시로서는 배우보다 제작자로 더 지명도가 높았던 마이클 더글라스와 [보디 히트]로 일약 1980년대 섹시 스타가 된 캐서린 터너가 커플을 이룬 [로맨싱 스톤]은 보물을 찾아 나선 남녀라는 [레이더스]의 기본 공식을 따오긴 했지만 이를 할리퀸 로맨스 소설을 연상시키는 달콤한 러브 판타지로 변주시켜 독창적인 재미를 구축했던 영화로 전세계 1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공을 거뒀습니다. B급 색체가 [레이더스]에 비해 좀 더 두드러지긴 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심지어 악당인 대니 드 비토까지도) 캐릭터들의 생생한 매력 덕택에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지요.
영화를 연출했던 로버트 저맥키스는 이를 계기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눈에 띄어 스필버그 사단에 합류해 [백 투 더 퓨쳐]라는 또다른 히트작을 양산하는 등 영화계에 성공적으로 안착, 나중에는 [포레스트 검프]로 아카데미를 정복하는 쾌거를 거두게 됩니다. 또한 스필버그에게 영원한 음악 조력자 존 윌리엄스가 있듯 저맥키스 감독과 작곡가 앨런 실베스트리의 조합은 [로맨싱 스톤] 이후 끈끈한 공조체제를 이후며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이렇게 [로맨싱 스톤]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자 영화사 측에서는 당연히 속편의 제작을 기획하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작의 흥행만큼 든든한 보증수표가 될 만한 것도 드문 일이니까 말이죠. 하지만 속편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먼저 전편의 일등 공신인 로버트 저맥키스가 [백 투 더 퓨쳐]의 연출자로 발탁되어 속편의 연출을 거절하게 되면서 속편 제작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앨런 실베스트리도 저맥키스를 따라 [백 투 더 퓨쳐]에 동참하게 되었지요.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래서 대타로 기용된 인물이 바로 루이스 티그 감독입니다. 이 사람은 [엘리게이터], [쿠조] 등 주로 동물이 등장하는 B급 호러물을 연출하면서 비용대비 짭잘한 흥행력을 보여주었던 감독인데요, 이미 지명도면에서 메이저급으로 급성장한 [로맨싱 스톤]의 속편을 맡기에는 사실상 검증이 덜 된 상태였지요. 아마도 제작사측에서는 제작비를 덜 쓰고 높은 흥행성을 타진할 수 있는 고효율면에서 루이스 티그를 선택한 듯 합니다.
한편, 또다른 문제가 발생했는데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주인공 캐서린 터너가 출연을 포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전편에서의 실질적인 주연이었던 캐서린 터너가 빠진다면 영화가 망할 것은 자명했으므로 폭스사 측은 터너에게 25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이 사태를 수습합니다.
결국 1985년, 우여곡절끝에 [로맨싱 스톤]의 속편인 [나일의 대모험]이 개봉됩니다. 전편에서 6개월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 [나일의 대모험]은 주인공 커플이 일상적인 삶에 무료함을 느끼다가 나일강 유역의 한 나라에 여행을 떠나면서 겪게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로케이션 촬영이 진행되었고 수 만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는 등 스케일을 더욱 키웠습니다만 내용자체는 무척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 20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캐서린 터너, 마이클 더글라스, 대니 드 비토 등 전편의 주역 3인방이 고스란히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매력은 전편에 한참 못미치는 편이었고, 특히나 터너가 맡은 조앤 와일더의 경우는 [로맨싱 스톤]의 에너제틱하고 능동적인 여성에서 소리만 꽥꽥 질러대는 평면적인 캐릭터로 변질되어 버렸죠. 억지스런 전개에 악당조차 별다른 특색을 살리지 못한탓에 영화는 상당히 밋밋해져 버렸습니다.
반면 [나일의 대모험]의 흥행성적은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습니다. [로맨싱 스톤]에는 다소 못미쳤습니다만 전세계 박스오피스에서 96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흥행에 성공을 거두게 되었지요. 또한 빌리 오션이 부른 삽입곡 'When the Going Gets Tough, the Tough Get Going'은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기록하며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나일의 대모험]이 개봉된 1985년의 흥행 1위작은 로버트 저맥키스 감독의 [백 투 더 퓨쳐]였습니다. 여러모로 저맥키스에게는 [나일의 대모험]보다 [백 투 더 퓨쳐]를 선택한 것이 현명한 일이 된 셈입니다. 물론 그가 속편까지 연출했더라면 좀 다른 결과물이 나왔을런지도 모르겠네요.
전편과는 달리 평단에서 쏟아져 나온 악평으로 인해 결국 3부작으로의 이행은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마이클 더글라스와 캐서린 터너 역시 2편까지만 계약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3편의 제작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이때의 인연으로 더글라스-터너-드 비토 3인방은 4년 뒤 [장미의 전쟁]이라는 작품에서 다시 한번 뭉치게 되는데요, 사소한 부부싸움이 살벌한 전쟁으로 변하는 코믹 풍자극인 이 작품은 워낙 자연스런 커플로 자리잡은 마이클 더글라스와 캐서린 터너 덕분에 마치 [나일의 대모험] 이후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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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에서는 [로맨싱 스톤]의 속편이라며 각종 월간 영화잡지에서 연일 [나일의 대모험]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 기대치를 키웠습니다만, 정작 한국에 [나일의 대모험]이 상륙한 시기는 북미쪽보다 6년이나 지난 1991년에서야 개봉을 하게 됩니다. 가뜩이나 전편에 비해 재미도 없었는데 시기를 놓친 탓에 소리소문없이 개봉했다가 조용히 간판을 내렸지요. 예나 지금이나 개봉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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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로맨싱 스톤]은 2편으로 단명한 시리즈이긴 합니다만 이제 2011년 개봉을 목표로 [퍼펙트 웨딩]과 [어글리 트루스]의 로버트 루케틱 감독이 각본가 댄 맥더모트와 함께 [로맨싱 스톤]의 리메이크작을 만들고 있다고 하는군요. 과연 새로운 작품은 오리지널을 뛰어넘어 못다한 3부작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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