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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접한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국의 판타지 문학 가운데서도 대단히 기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이야기와 사이코틱한 캐릭터들의 등장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있어 그다지 호감을 주는 편이 아니었다. 훗날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이 소설이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기 보단 빅토리아 시대의 풍조를 비꼬는 부조리극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무릎을 탁하고 친 적이 있다.

팀 버튼이 조니 뎁과의 7번째 작품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든다고 했을 때 나름 기대가 되었던 건 그동안 선보여왔던 팀 버튼의 동화적 스타일의 연출기법이 원작의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릴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작품이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원작에서의 주인공 앨리스가 성장한 시점 즉, 약혼을 앞둔 19살의 처녀로 성장한 이후에 다시한번 원더랜드로 돌아가는 이야기, 말하자면 스필버그의 [후크]에 더 가까운 컨셉이니 원작이 주는 부담을 덜고 감독의 스타일을 자유롭게 표현하기에 더 수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거나 내 예상 중 절반은 맞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작품이 아닌 팀 버튼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 쏟아지는 혹평의 상당수는 원작과 비교되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그 점만 빼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냥 무난한 가족용 판타지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실에서는 약자에 불과한 이가 환상속의 세계로 가게 되면서 결국 위기에 처한 그 세계를 구원하는 영웅으로 탈바꿈한다는 내러티브는 여느 판타지 물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내용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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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lt Disney. All rights reserved.


문제가 되는건 이토록 평이한 서사구조를 왜 하필 그 자체만으로도 기괴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적용시켰나 하는 점이고, 그걸 또 하필 팀 버튼이 연출하게 되었나 하는 점이다. 영화속의 그로테스크한 잔혹동화같은 풍경과 미치광이 같은 캐릭터들의 향연은 분명 팀 버튼의 트레이드 마크이지만 돌다리를 두들겨보고 건너듯 조심스럽게 안전한 이야기를 택한 팀 버튼의 선택에는 도무지 동감하기 힘들다. 아마도 감독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모순을 꼬집고 이를 극복해나가려는 앨리스라는 소녀를 통해 보다 이해하기 쉬운 성장영화로 발전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허술한 개연성과 더불어 너무나 진부한 극의 흐름, 그리고 빈약한 상상력은 악동 팀 버튼의 명성에 한참 못미친다. 애초에 그의 장기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나가는 게 아니라 그 반대였지 않았나? 현실적으로 보자면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영화의 결말이 오히려 팀 버튼식 악취미가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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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lt Disney. All rights reserved.


그 외에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수없이 그와 손발을 맞춰 온 대니 엘프만의 음악은 여전히 명불허전이며 모자장수 조니 뎁의 연기는 여전히 그가 팀 버튼 사단의 핵심 멤버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도 남는다. 팀 버튼은 현 부인인 헬레나 본햄 카터의 얼큰이 여왕 캐릭터는 딱 그녀만을 위한 맞춤형 캐릭터다. 앤 해서웨이는 말 그대로 공주병에 걸린 우아한 여왕님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코믹한 연기를 보여준다. 타이틀 롤인 미아 바쉬이코브스카 역시 쟁쟁한 배우들 틈새에서도 가장 비중이 큰 배역으로 손색없는 히로인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다. (그러나 사실 여배우로서의 매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편)

분명 영화의 이미지만을 놓고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딱 걸맞는 팀 버튼 특유의 컬러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기교적인 면에 너무 치우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피해갈 순 없을 듯 하다. 결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매너리즘에 빠진 팀 버튼의 범작이다. A급 작품에서 묻어나는 B급 감수성의 재기발랄함은 이번 작품에서 옅은 흔적만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팀 버튼에게 가장 어울릴 만한 영화의 결과가 이런 평범한 영화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긴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Walt Disney.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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