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계에서 장진 감독처럼 고유의 색깔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영화인도 드물다. 그는 이른바 '장진사단'으로 불리는 고정 스탭과 캐스트를 보유한 몇 안되는 감독이며, '장진식 코미디'로 일종의 장르적 특화에도 성공한 사람이다. 그가 흥행 감독인지에 대해 누군가가 질문을 던진다면 그 대답에는 아직까지 의문부호가 따라 붙을지 몰라도 장진이라는 이름만으로 극장을 찾을 관객들이 제법 많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장진 감독은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 왔다. [간첩 리철진]같은 변종 첩보물이나 [아는 여자]같은 로맨틱 코미디, [박수칠 때 떠나라]의 수사극, [거룩한 계보]의 조폭물까지 그의 영화에는 경계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장진의 영화는 늘 '코미디'라는 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남들처럼 수백만 관객을 동원한 빅히트작 없이도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참여한 작품중 가장 성공을 거둔 [웰컴 투 동막골]은 박광현 감독의 영화다) 그는 정재영,신하균,이문식 같은 스타들을 배출했고, 자신을 팬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장진 감독의 장르편력은 이번에도 계속된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다소 독특한 반전극을 시도한 [아들]의 실패 이후 2년만에 공개된 장진 감독의 신작으로 이번에는 정치극에 도전하고 있다. 올해에만 두명의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낸 지금,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정치권의 심장부에 위치한 '대통령'을 소재로 다룬다는 점에서 꽤나 눈길을 끈다. 불편한 정치적 논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려 장동건씩이나 되는 초특급 스타를 대통령 역에 캐스팅한 것만 봐도 장진 감독의 엉뚱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 소란플레이먼트/CJ엔터테인먼트/KnJ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단지 장동건의 스타성에 기댄 영화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의 캐스팅이 관객동원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건지는 부수적인 문제일뿐, 아쉽게도 이 작품은 장동건이 원톱 주연을 맡은 영화도 아니거니와 엄연히 장진 감독의 전매특허가 십분 발휘되는 영화다. 특유의 유머감각과 현실세계의 판타지가 고스란히 녹아있고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희극적이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박해일과 장동건의 조우씬에서조차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포복절도할 취조실 장면을 대면하게 된다. 이렇게 웃기는 장동건을 예전에 스크린에서 접할 수나 있었던가.
관객을 즐겁게 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장진 감독의 작품 중 단연 최고의 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이른바 장진 사단의 감초 연기자들(정규수, 이한위, 류승룡, 장영남, 주진모 등) 대부분이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 이순재, 고두심 등 베테랑 연기자들을 비롯, 임하룡, 한채영, 정유미, 공형진, 박해일 등 어지간한 영화들에서 주연급 연기자로 손색이 없는 배우들이 작은 역할을 마다않고 등장해 감칠맛 나는 연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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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의 다른 영화가 그렇듯 [굿모닝 프레지던트] 역시 웃음뒤에 감춰진 현실풍자의 코드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소재가 소재이니 만큼 촛불시위, 100분 토론, 부동산, 좌파정부, 대일,대북관계 등 굵직굵직한 사회,정치적 이슈들을 양념처럼 교묘하게 배치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데 그럼에도 진지함이나 부담감을 느끼기가 힘든건 장진식 코미디의 위력에 대부분 희석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혹자는 보다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풍자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으나 뭐 어쩌랴. 장진식 영화는 늘 이래왔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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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각 대통령의 이야기를 연결한 옴니버스식 구성의 시도도 좋다. 각 에피소드는 세 명의 대통령과 그 주변의 상황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분량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과정 또한 매끄럽다. 2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이 빨리 지가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러한 옴니버스식 구성의 효과적인 배치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영화는 짜임새 있고,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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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전형적인 장진식 코미디임을 잊지 말자. 이는 곧 영화가 기존 팬들에게 최적화되어 있음을 뜻한다. 장진 감독의 판타지는 이번 작품에서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적인 대통령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으며, 현실 정치에 대한 혐오나 불신의 대리만족을 웃음과 희화화된 인물들을 통해 채우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가진 비현실성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와닿을 것인가는 나로선 알 수 없다. 분명한건 필자는 그간 장진 감독의 영화를 매우 즐겨왔으며 이번 작품도 여전히 만족스러웠다는 점이다. 국민을 위해 자신의 신장 한쪽을 기꺼이 내어주고, 당첨된 복권 당첨금을 쾌척하며, 이혼위기에 몰렸어도 끝끝내 남편을 만나러 시댁을 찾는 대통령의 모습. 영화에서가 아니라면 언제 볼 수 있으랴.
P.S:
1.'배우 장동건'이 정말로 다음 대선때 출마를 선언한다면 어떤 양상이 벌어질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2.눈이 휘둥그래지는 초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아쉬움이 마음 한켠을 자리잡고 있었는데, 영화가 끝나고서야 그 아쉬움의 정체를 알았다. 이 영화는 장진의 장편영화 중 그의 페르소나인 정재영이 참여하지 않는 유일한 영화다.
3.정유미를 스크린에서 본게 올해만 벌써 5번째([그녀들의 방],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차우], [10억], [굿모닝 프레지던트])다. 오는 11월 12일에 [어떤 방문]이라는 옴니버스 영화도 개봉대기중이니 아마 올 한해 가장 바쁜 여배우가 아니었을까 싶다.
*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소란플레이먼트/CJ엔터테인먼트/KnJ엔터테인먼트.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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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보러가는데 기대하고 있습니다. '장진'표 코미디에 흠뻑 빠져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에... =)
2009.10.22 10:23장진식 코미디의 팬이라면 이번 작품도 대만족일겁니다. 사실 그간 장진 작품들은 어딘가 한구석 불편한 점도 없잖아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아주 대중적인 편이라고 봅니다.
2009.10.22 10:25 신고대중적이라... 안 그래도 장진표 영화는 마니아와 대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현실 정치가 하도 지랄같은지라 보고 나면 서울 어딘가로 달려가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암튼 보러 가야겠습니다. 워낭소리 보고 헛소리 하던 마우스 대통령은 이 영화를 볼까요?
2009.10.22 11:00확실히 장진 감독의 성향이 그렇긴 합니다만 이거보고 많이 순화되었구나 싶었습니다.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가는듯한 느낌이랄까요.
2009.10.22 16:50 신고로맨틱 코미디 이외의 장르를 그리 좋아하지 않다보니 장진 감독의 영화는 '아는 여자'밖에 못 보긴 했지만 상당히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2009.10.22 11:15장동건이 나오는 것도 그렇지만, 역시 이순재 선생님의 코믹 연기를 큰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기대되는군요.
대통령 캐릭터로만 치자면 이순재씨의 캐릭터가 가장 코믹하고 만화같지요. 장동건은 ㄷㄷㄷ 폭풍간지.
2009.10.22 16:50 신고개인적으로 대통령 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건 의외로 고두심씨였습니다. 역시 관록의 연기가...
2009.10.22 16:51 신고약간의 스포라도 있을 것 같아서 리뷰를 못 읽겠습니다..ㅡㅜ 그런데 영화정보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보니 이거 어쩌면 지금의 정부를 살짝 비꼬는 듯한 부분도 있는 것 같던데 실제로도 그런가요?
2009.10.22 16:48언제나 그렇듯 제 리뷰에는 스포가 거의 없습니다. 아무래도 장르가 정치영화다보니 현정부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닥 노골적이지는 않은 편입니다.
2009.10.22 16:52 신고장진 감독 작품을 박수칠 때 떠나라 딱 한 편 밖에 안 봤는지라
2009.10.22 17:02 신고(게다가 기억도 가물가물... --a)
어떤 작품을 만드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고...
그냥 언뜻 보고 판단하기에는 이 작품 자체가 그다지 끌리진 않던데...
직접 보면 어떨지 모르겠군요. 볼까 말까... 크
장진 작품에 입문하시려거든 [아는 여자]와 [간첩 리철진]은 필수입니다. 단 요즘 구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품절크리.
2009.10.22 17:05 신고DVD로도 나오지 않는 "기막힌 사내들"은
2009.10.22 21:15비디오 가게에서 비싼 돈 주고 구입했지요..ㅠ
모 케이블에서 하는 [잃어버린 사골을 찾아서]를 보다 들어와 봤습니다.(한국 케이블 방송사 정말 너무 합니다.... 하도 볼 게 없어서 -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마치 지상파 볼 것 없음, 케이블 보셈 ㅋㅋㅋㅋ스러워서 요즘 지상파는 거의 안 봅니다. 특히 뉴스는
- 틀면 더블 타겟, 나는 전설이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인사동 스켄들만 줄창......) 이미 토요일 낮 모 영화 프로그램으로 인해 엄청난 스포를 봐 버린지라(이것도 문제죠 정말..... 덕분에 요즘 전 극장가 거의 안 찾죠...) 유감스럽게도 별 감흥이 없네요....(영화도 보기전에 박해일이 무슨 역할로 나오는지 알아버렸다는 건 정말.........에휴...)
2009.10.22 20:30출발 스포일러 여행을 비롯한 각종 영화프로는 안본지 5년도 더 됐습니다. ㅡㅡ;;
2009.10.23 09:42 신고장진식 코미디라니....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2009.10.22 20:43장진 감독님 영화는 아이디어도 좋고 신선한데 항상 뒷심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뭔가 강한마무리가 필요한듯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장진 영화중 최고는 간첩 리철진 이었습니다.
역시 최고는 [간첩 리철진]이죠. 개봉당시 [쉬리]와 맞붙어 본의아니게 B급 짝퉁취급을 받았던 불운의 작품.
2009.10.23 09:43 신고주말에 마눌님과 심야로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2009.10.22 21:14 신고원래 저희 커플(ㅋㅋ)은 장진 감독과 코드가 잘 맞다고 생각하는데, 더욱 기대가 커지네요.
장진 코드를 읽을 줄 안다면 필견의 영화죠.
2009.10.23 09:43 신고신하균, 정재영 등 기존의 장진사단 모두 다시 한 번 모이면 좋을텐데 말이죠 ㅠ
2009.10.22 21:14장진감독이 신하균씨와 소속사(?)를 바꿀 때 즈음 찍은 영화가 "박수칠 때 떠나라"라고 하던데..ㅠ
얼마든지 다시 모이지 않을까요? 장진의 인맥을 생각하면 뭐 ㄷㄷㄷ
2009.10.23 09:44 신고비밀댓글입니다
2009.10.22 21:18장진감독 팬중 한명으로 제작이든 시나리오든 감독이든 장진감독이 관여만하면 늘 관심의 대상이었고 기대작이되었는데 이 작품역시 빨리 확인해야겠습니다.
2009.10.22 22:00전 대체로 다 좋았습니다. ^^ 전작인 [아들]은 약간 핀트를 벗어난듯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재밌게 봤구요.
2009.10.23 09:45 신고장동건대신 정재영이 대통령으로 나왔다면 어떤 분위기가 되었을까요(...)
2009.10.22 22:29저도 그 생각 했습니다. 정말 재밌을것 같은데..
2009.10.23 09:46 신고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저에게는 지금이 장진식 장점과 한계점이 점점 보여지는 시기같습니다.
2009.10.23 09:54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더 나아가거나 아님 더 퇴보할 거 같은 얘감이 드네요...
아무래도 한가지 색깔만 가지고 승부를 하려니 그렇겠지요. 본문에도 있듯이 장진 감독의 영화중 코미디가 아닌 작품이 단 한개도 없으니...
2009.10.23 16:13 신고ㅎㅎ 업계 종사자라 더 와닿는건지, 전 미디어 풍자부분이 정말 재밌더라구요.
2009.10.23 10:35개봉일에 맞춰 꼭 봐야 한다며 표를 예매한 직장 동료와 함께 오랜만에 실컷 웃었습니다.
아.. 동건씨는 너무 멋진것 같아요.~♡
앗. ㅎㅎㅎ
2009.10.23 16:14 신고그래도 동건씨보다는 낭군님께서 더 멋있겠지요? ^^
맞습니다. 장진과 정재영은 팀버튼과 조니뎁 처럼 떼놓을 수 없는 사이죠.
2009.10.24 03:11그런데 까메오로도 안나오나요? 왠지 너무 아쉬운데요..기대하는 작품입니다.
덧>
80년대 후반에 가수 이상은씨가 출연했던 영화 중에 '굿모닝 대통령'이라는 영화가 있지 않았던가요.
이상은씨가 외국에 유학나간 학생 역으로 나오는데, 외국인들이 그녀에게 이름을 물어보면 "아임 대-통-령"이랬던거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
까마오로도 안나오니 아쉬울 뿐입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은 작품인 것이고요..
2009.10.24 09:42 신고덧글에 쓰신 [굿모닝 대통령]은 제목으로만 들어봤지 저는 미감상입니다. 이런 작품들은 DVD로도 안나오니.. ㅠㅠ
안녕하세요!

2009.10.26 09:25문화메타블로그 난장의 운영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문화메타블로그의 글들 중
우수한 포스팅을 모아 오픈캐스트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퍼니웨이님의 글이 우수하여 문화메타블로그 난장 오픈캐스트
http://opencast.naver.com/NJ555 에 실었습니다.
우수한 포스팅을 난장에 제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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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