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특집 #1
1960년대 초, 마블 코믹스의 편집장이었던 스탠 리는 천편일률적인 슈퍼히어로물의 자기복제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만화가로서의 꿈을 접으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러한 리의 결심을 바꾸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사인 DC 코믹스의 '어떤 작품' 때문이었다. 당시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가 총출동한 '저스티스 리그'의 엄청난 성공이 마블의 발행인이었던 마틴 굿맨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사실 마틴 굿맨과 스탠 리는 창작상의 이견 때문에 충돌이 잦았었는데, 이는 스탠 리가 마블을 떠나려고 한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저스티스 리그'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굿맨은 마블에도 팀 플레이를 하는 슈퍼히어로 시리즈를 만들자고 리에게 제안하게 되었고, 때마침 메너리즘에 빠진 마블 코믹스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원했던 스탠 리는 이를 계기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슈퍼히어로물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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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1961년작 '판타스틱 4'였다. 이 작품이 파격적이었던 이유는 슈퍼히어로물에서 그간 맛볼 수 없었던 리얼리티가 살아있으며, 더군다나 주인공들이 갖게 된 초인적인 능력이 축복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것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판타스틱 4'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마블 코믹스의 세계관은 불의의 사고에 의해 유전적 변이를 일으킨 두 명의 또다른 슈퍼히어로, '인크레더블 헐크'와 '스파이더맨'을 탄생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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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탠 리는 이들 작품만으로는 독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크레더블 헐크', '스파이더맨'으로 이어지는 유사한 패턴의 반복은 결국 또다시 '판타스틱 4' 이전에 겪었던 고민을 되풀이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스탠 리는 동료 작가인 잭 커비와 함께 다른 패턴의 슈퍼히어로 팀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기서 잠깐. 스탠 리가 이런 고민을 하던 시기적 상황을 돌이켜 보면 당시 미국 사회는 소수(또는 억압받는 이들)의 인권문제가 폭발적으로 표출되던 시기였다. 그 당시 미국은 보수와 진보가 거센 충돌을 반복하던 시기였으며, 반전시위와 인권운동이 정점을 이루던 때이기도 했다. 이러한 인권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인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던 스탠 리에게 결정적인 모티브를 제공하게 된다.
This Picture is donated to the Library of Congress.
제목이 '돌연변이들 (Mutants)'로 결정된 이 작품은 'X Gene' 이라는 돌연변이 형질의 유전자를 가진 일련의 사람들이 두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된다는 컨셉으로 구성되었는데, 제이비어 교수와 메그니토로 대변되는 이들 두 집단은 온건하며 화합 중심적인 태도와 과격하고 무력 중심의 성향을 가진 두 인물의 성격을 대비시킨다. 이는 바로 현실 세계에서 온건주의자였던 루터 킹 목사와 인권을 위해서는 무력 사용도 용인한다는 말콤 X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스탠 리가 '돌연변이 (Mutant)'라는 단어를 선택했던 이유는 돌연변이가 현실적으로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자연적 현상이며 이는 '소수성'을 다루는 작품의 주제 의식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정처럼 '돌연변이들'이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던 스탠 리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당시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서 'Mutant'라는 단어가 생소할 것이라고 여긴 마틴 굿맨이 반대했던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1963년 9월에 '엑스맨'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러나 스탠 리는 굿맨의 방해에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엑스맨'의 초판본을 받아든 마틴 굿맨은 처음에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타이틀의 메인 카피가 '가장 이상한 슈퍼히어로들! (The Strangest Super-Heroes of All !)'이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강한(Strongest)'이 아니라 '가장 이상한(Strangest)'이라고? 굿맨은 이러한 도발적인 문구가 슈퍼히어로물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무모한 일이라고 노발대발했으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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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타이틀 문구는 단순히 제목을 바꾸라고 강요한 굿맨에 대해 항의하려는 의도만은 아니었다. 'Strangest'라는 단어는 스탠 리가 조명하려했던 '엑스맨'의 세계관에 가장 어울리는 것이었는데, 슈퍼히어로를 소외된 소수자로 그려낸 '엑스맨'은 분명 기존 슈퍼히어로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이상한' 것이었다.
특히나 이 작품은 주인공들이 어떤 불의의 사고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슈퍼히어로가 된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초인적인 능력을 타고났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보였다. 소수인권의 존중을 주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엑스맨'의 주인공들은 현실 그대로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억압받는, 슈퍼히어로 사상 가장 이상한 영웅들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총 6명의 캐릭터(제이비어, 싸이클롭스, 마블 걸, 엔젤, 비스트, 아이스맨, 메그니토)로 시작한 '엑스맨'은 이러한 소수성의 차별을 다룬 시도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결국 초기 '엑스맨'은 66호만에 발행이 한차례 중단되는 수모를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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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간헐적으로 67권부터 93호까지 발행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엑스맨'이 새로운 분수령을 맞이한 것은 1975년에 발행된 94번째 작품, 새롭게 리뉴얼한 '자이언트 사이즈 엑스맨'의 1호부터였다. 여기에는 주목할 만한 캐릭터들이 대거 합류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바로 '울버린'이었다.
'울버린'의 합류는 향후 '엑스맨'의 인기를 견인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원래 울버린은 1973년에 발간된 ‘인크레더블 헐크' 181호에서 헐크의 적으로 처음 등장했던 캐릭터였는데, 2년뒤에 엑스맨 시리즈로 합류하게 된 울버린은 예상밖의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후에 자신만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건 시리즈물을 비롯, '엑스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등공신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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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복잡한 고뇌와 함께하는 이들 '엑스맨'의 히어로들은 스탠 리가 구상했던 정치색과 사회상의 반영하며 꾸준히 성장해 일반성과 소수성의 충돌이라는 화두를 각 시대에 맞게 변형시켜가며 히어로 만화에 있어서 '판타스틱 4', '인크레더블 헐크'와 함께 슈퍼히어로계의 일대 혁신을 일으킨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제 이들 '엑스맨'은 보다 더 큰 프로젝트를 향해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 [엑스맨] 코믹스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Marvel Comics.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스탠 리 사진(ⓒ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 (This Picture is donated to the Library of Con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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