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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인간 - 한국에서 시작된 세계 최초의 탑승형 거대로봇

페니웨이™ 2026. 8. 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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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 태권브이]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청기 감독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최상권 선생의 만화 속에는 한강 인도교가 무너진 뒤, 로보트가 몸을 굽혀 사람들을 건너게 하는 장면이 있다. 내 눈에 그 로보트는 사람이라기보다 오래된 우체통처럼 보였다. 곧게 서 있고, 몸체에 달린 문을 열고 닫으며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묘하게 인상 깊었다. 현실의 사건과 상상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방식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로보트 킹]으로 유명한 故 고유성 화백도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나라에 처음 로봇 만화가 등장한 것이 일본 망가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망가 [철완 아톰]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이비 전문가들이 많은데, 필자가 본 것은 그보다 훨씬 전에 이미 국산 로봇 만화들이 나왔었다.”

 

사실 이러한 증언들은 한국 만화사에서 로봇물을 추적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임에도 주목하는 이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한국의 로봇 만화는 일본에서 은밀하게 수입된 작품들을 표절했다는 인식이 대중문화의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표절의 흔적들은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되는데, 한국 로봇 만화의 오리지널리티를 증명할 만한 반론의 근거는 매우 부족하다.

 

그도 그럴 것이 6·25 전쟁을 겪은 한국 사회의 정서상 사회 취약 계층인 어린아이들이 즐겼던 문화, 그것도 저급하거나 유해한 것으로 취급받았던 것들은 거의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또 정모군의 자살로 촉발된 만화 탄압의 역사와 ‘5월의 화형식으로 대변되는 분서갱유로 영원히 사라진 작품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동아일보.

 

결국 상대적으로 자료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만화 자료는 대부분 기억에 의존하거나 구술로만 존재하는 것들이며, 그나마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한들 일부 소장가들의 은밀한 수장고로 스며들어간 작품들은 그저 수집가들의 재화로서 그 가치를 지닐 뿐, 대중들의 관심사나 역사학적 관점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서, 김청기 감독이나 고유성 화백이 증언하는 내용을 하나의 사실관계로 엮어서 해석하자면, 이들이 활동하기 오래전, 다시 말해 유년 시절 기억에 존재하는 한국 로봇 만화가 분명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일본 로봇물의 시초라고 알려진 [철완 아톰]의 시기를 앞선 것으로, 당연히 일본 작품의 영향권을 벗어난 작품이며, 몸체에 달린 문을 열고 닫으며 사람을 받아들이는, 다시 말해 탑승형 로봇의 형태를 지닌 컨셉을 가진 작품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게다가 김청기 감독의 증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로봇의 형태가우체통을 연상시킨다는 점, 인도교가 무너진 이벤트 발생 후 사람들을 대피시킨다는 점, 무엇보다 이 작품의 작가가 한국 SF 만화의 시조로 평가받는 최상권 작가라는 점은 결정적인 단서다. 이러한 단서들을 종합할 때 이 증언의 신빙성을 증명할 작품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몇 년 전에 나는 그 작품을 찾아냈다고 확인했다. 바로 최상권 작가의 1952년작 [인조인간]이다. 비록 [한국 슈퍼 로봇 열전: 만화편]에는 자세한 내용을 실을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표지만 간신히 소개하고 말았지만, 그나마 현재까지도 세상에 남아 있는 건 전체 분량 중 2권에 해당하는 분량으로 많은 정황들을 추론해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적어도 이 작품에서 많은 의미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인조인간 2권 표지 (AI로 일부 수정) ⓒ 한국만화박물관

 

[인조인간]의 대략적인 플롯은 이러하다. 송 박사가 인간이 탑승하는 형태의 거대 로봇인인조인간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행방이 묘연해진다. 악당들이 인조인간을 탈취한 것. 하지만 인조인간을 조종하는 데 실패한 도적단은 오히려 자신들의 본거지가 파괴되는 예상 밖의 사태를 맞이한다.

 

조종석이 빈 상태에서 가동된 인조인간은 시가지로 진입해 전차와 자동차, 건물을 파괴한다. 한편 연구소에 갇혀 있던 영이와 철수는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 우여곡절 끝에 시가지에서 난동을 피우던 인조인간의 내부에 들어가 인조인간을 정상화시킨다. 이제 인조인간은 큰 짐을 나르거나 건설 현장을 돕는 일, 끊어진 철교에서 사람들을 돕는 등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선다. 철수와 영이가 사라진 송 박사를 찾아 나서는 것으로 2부가 끝나지만 이후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동시기 같은 작가의 SF 만화인 [헨델 박사]가 총 3부작 완결 구조를 가진 것으로 보아, [인조인간] 역시 3부작 혹은 그에 준하는 분량의 서사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로서는 안타깝지만 구체적인 전체 내용을 알 길이 없다)

 

일단 확인 가능한 선에서 [인조인간]을 살펴보면 앞에서 언급한 김청기 감독의 증언, 이를테면우체통을 연상시킨다던지, 무너진 다리 위에서 사람을 구출한다든지 하는 뚜렷한 기억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들이 발견된다. 아마도 김청기 감독이 봤다던 그 작품, 그리고 고유성 화백이 기억한다던 그 작품은 최상권 작가의 [인조인간]임이 틀림없다.

 

[인조인간] 2권 중에서 ⓒ한국만화박물관

 

특히나 [인조인간]이 문화사적으로 가치를 지니는 건 이 작품 속 거대 로봇에 사람이 탑승 가능하다는 점,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서 승객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탑승 후 조종이 가능한 탑승형 로봇의 컨셉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조인간]이 발표된 시기는 1952년이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와중에 이러한 작품이 발표되었다는 것도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1952년은 일본 최초의 거대 로봇이라고 알려진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철인 28]가 소년지를 통해 연재되기 무려 4년이나 앞선 시기이다. 한 발 물러나서 [철완 아톰] 속 거대 로봇플루토가 등장한 시점은 [지상 최대의 로봇] 편이 연재된 1964년이다. [인조인간]이 발표된 지 무려 12년이나 지나서다.

 

1956년 '소년'에 연재를 시작한 [철인 28호] ⓒ 横山光輝

 

그뿐만이 아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에서도 정확히 지적하듯이 [철인 28]의 조종 원리는 리모트 컨트롤 방식이다. 1950년대 중반의 거대 로봇을 논함에 있어서 로봇을 구동하는 방식은 원격 조종이 일본인들의 상식이었던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있어 사람이 직접 탑승해 조종하는 탑승형 거대 로봇의 개념은 나가이 고의 [마징가 제트]가 연재를 시작한 197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등장했다. 그러니까 거대 로봇이라는 컨셉으로도, 탑승형 조종 방식이라는 컨셉으로도 한국의 [인조인간]이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해도 무방하다. 이는로봇물은 일본 것을 베낀 것이라는 일반의 편견을 완전히 뒤엎는 사실이다

 

1868 년 에드워드 실의 단편 소설  [ 초원의 증기 인간 The Steam Man of the Prairies ]에서도 인간을 태운 증기 기관 방식의 거인형 기계 장치가 등장하지만 이는 조종을 위한 것이 아닌 승객운송에 가깝다.

 

이 같은 대중문화의 역사적 증거는 단순히 신기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사실들을 발굴해야 할 과제다. 앞서 고유성 화백은 자신이 경험했던 ‘[철완 아톰] 이전의 국산 로봇 만화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인조인간] 한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존재했을 가능성을 남겼다는 얘기다.

 

이후의 흐름, 즉 이종진의 한국식 [철인 28]가 인기를 끌고 [철완 아톰]의 아류작들이 범람하고, [로보트 태권브이]가 거대 로봇물의 두 번째 붐을 일으키면서 거대 로봇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마치 표절과 모방으로 점철된 것과 같은 현상을 만들어내긴 했으나 거대로봇 장르 계보의 시초에는 놀랍게도 한국만의 오리지널이 존재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오리지널이 왜 [철인 28]와 같은 파급력을 가지지 못했는가 하는 점들은 문화사적 측면에서 반드시 연구되어야 할 과제다.

 

나는 이와 같은 사실이 왜 아직도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지 못하는지, 왜 사람들이 관심조차 갖지 않는지 모르겠다. 표절 운운하며 부끄러움을 표출하기 이전에 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을 발견하려 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한국의 과거 문화는 항상 부끄럽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남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도 관심조차 갖지 않는 과거의 유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로스트 미디어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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