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일본애니메이션계에 큰 화제를 몰고온 한편의 OVA가 있었다. [R.O.D]라는 다소 생소한 제목의 이 애니메이션은 OVA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의 퀄리티를 자랑하며 다음편을 기다리는 무수한 팬들의 소문을 낳은 화제작이었다. 이미 쿠라타 히데요키와 야마다 슈타로의 소설과 원작만화가 출간된 바 있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진 못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화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 Hideyuki Kurata/Shutaro Yamada /SHUEISHA.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OVA는 이러한 원작의 기본적인 설정과 한두명의 인물만을 따왔을뿐 전혀 다른 오리지널 스토리로 제작되어진다. 즉, 여러가지 진부함에 파묻혀 자칫 지나칠지도 모르는 독특한 장점만을 추려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소설의 원작자이자,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의 각본을 집필한 쿠라타 히데유키는 애니메이션을 일종의 패러렐 월드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원작의 설정과 인물만을 따온 전혀 다른 별개의 작품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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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떤 장점을 지니고 있는가? 우선 주인공의 독특함이다. 주인공인 요미코 리드먼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독자라는 뜻의 요미코와 리드먼의 결합) 요미코는 엄청난 독서광에다가 책수집가이다. 이런 병적인 그녀의 취미는 과연 한편의 액션물을 책임질 주인공에 걸맞는가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그녀가 지닌 능력, "종이술사"라는 설정은 이전 어떤 작품에서도 시도하지 못한 매우 독특한 설정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직업은 대영도서관 특수공작부의 에이전트, 코드네임 "더 페이퍼". 이를테면 '제임스 본드' 같은 일종의 첩보원인 것이다. 그 점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작품의 오프닝은 마치 007영화의 오프닝을 보듯 야시시한 여인의 실루엣으로 일관되는데 이 역시 작품의 성격과 매우 잘 조화되는 선택이었음에 틀림없다. 또한 <바람의 검심- 추억편>에서 웅장한 음악을 선보인 이와사키 타쿠의 OST또한 이 작품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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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요미코의 주변인물들은 어떤가? 두 번째로 비중있는 배역인 낸시 마쿠하리는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인데, 같은 에이전트로서 사물을 통과하는 능력을 지녔다. 역시 새로 등장하는 드레이크라는 에이전트는 다소 무뚝뚝하지만 화기류를 잘 다루는 전형적인 용병이고, 대영도서관의 진두지휘를 맡는 조커라는 인물은 원작에서 다소 사이코틱한 광기어린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미스테리한 매력을 지닌 사람으로서 007시리즈의 "M국장"같은 캐릭터로 거듭났다. 이렇듯 원작에서의 어설펐던 설정들이 OVA화 되면서 확실히 뺄 것은 빼고 부각시킬부면은 부각시킴으로 좀 더 프로다운 에이전트들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뿐이 아니다. 1화의 시작에서 한 괴인이 백악관을 폭파시키는 시퀀스는 영화<인디펜던스데이>의 그것보다도 더 인상적이면서 박진감넘치는 명장면으로 차후 이 작품이 보여줄 역동적인 액션씬의 방향을 보여준다. 기대에 부흥이라도 하듯 1편은 30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내내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전개와 높은 작화수준, 그리고 빠른 템포의 액션을 보여주여, 다음편은 언제 나오나 하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키에 충분한 것이었다.
원작을 따르지 않은 스토리의 선택도 탁월하다. 위인의 DNA복제를 통해 그 능력을 극대화한 클론들의 공격이라는 색다른 소재는 기존의 악의 세력과는 좀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책"이 있고, 따라서 독서광인 요미코 리드먼의 활약은 너무나도 이러한 설정과 잘 조화되는 것이다.
물론 단점도 없지는 않다. 1화의 놀라운 퀄리티로 인해 오를만큼 오른 팬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기엔 2화는 기대에 한참 못미치기 때문이다.물론 졸작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1화만큼의 수준을 보여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분명히 남는다. 또한 그런 아쉬움이 더 한 이유는 이 작품이 엄청난 스케일의 전개를 고작 3화에 완결해야 한다는 부담때문이었다. 실제로 1화를 접한 관객은 이 정도의 스케일있는 작품이 과연 3화로 완결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3화에서는 어느정도 기대치에 부흥하는 퀄리티와 비교적 만족스러운 마무리로 인해 이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보여준다. 다만 애니메이션을 제법 봤다고 하는 관객들이라면 결말을 유추해 낼 수 있을 정도의 반전을 택한 것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3화가 발표되기전에 이미 여러 통신망의 애니메이션 동호회에선 결말을 예측하는 글들이 난무했고 결과는 그러한 예측 그대로 진행되었으니 수작의 반열에 오를만큼의 스토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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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영화 <쉬리>의 라스트씬을 사실상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던 문제의 결말장면
어쨌든 R.O.D 3부작 OVA가 이렇게 비교적 성공적으로 완결되자 급기야는 TV판이 새로 제작되어지게 된다. 놀랍게도 TV판에선 원작에서 요미코와 투톱으로 주연을 맡았던 스미레가와 네네네가 등장하며 작품의 중심인물인 요미코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대신 다른 3명의 종이술사가 요미코를 대신해 주인공을 맡았으며, 이후의 스토리는 OVA에 연계선상으로서 거의 완벽한 후속작의 성격을 띄게 된다.(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생략한다) 이 점은 TV판의 완성도가 어찌되었든건에 상당히 신선한 발상임에는 틀림없다. (OVA->TV판으로의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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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 3부작 OVA는 분명 독특한 취향의 SF액션물이다. 터프하지도, 관능적이지도 않은 오히려 어리버리하고 어딘가 나사빠진것 같은 여주인공의 통쾌한 액션물을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으로 90분간의 부담없는 시간동안 관람하기에는 딱 좋을 것이다.
* [R.O.D OVA]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スタジオオルフェ/アニプレックス / SONY.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R.O.D(ⓒ Hideyuki Kurata/Shutaro Yamada /SHUEISHA. All rights reserved.), R.O.D TV(ⓒ スタジオオルフェ/アニプレックス / SON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