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76
1990년대 초반을 장식한 인기 스포츠를 꼽으라면 역시 농구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초 인기만화 [슬램덩크]와 TV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영향, 그리고 인기팀 연세대학교 농구부의 농구대잔치 우승으로 인해 바스켓볼 신드롬이 한국 전역을 휩쓸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저도 그때부터 농구를 시작해 아직도 가장 좋아하는 운동을 선택하라면 단연 농구를 꼽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농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것에 반해 전국 각지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때아닌 피구 열풍이 불어닥쳤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지요. 그 원인은 다름아닌 [피구왕 통키(원제: 불꽃 투구아 닷지 단페이 炎の闘球児 ドッジ弾平 )]라는 한편의 애니메이션 때문이었는데요, 사실 한국에서는 이미 1992년에 '매직 슈퍼볼'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만 이 당시 상당수 애니메이션이 그러했듯 비디오 출시 당시에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듬해인 1993년 SBS를 통해 [피구왕 통키]라는 제목으로 공중파를 타면서부터 엄청난 붐을 일으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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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폭발적인 인기와 시청률에 힘입은 [피구왕 통키]는 1997년까지 무려 4차례나 재방영 되는 등 SBS의 최고 인기 애니메이션으로 자리잡게 되는데요, 원산지인 일본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어 2007년에는 '코로코로 코믹스 탄생 30주년 기념 전설의 애니메이션'에 뽑힐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또한 피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게임으로도 좋은 소재였기 때문에 역시 다양한 콘솔 베이스의 게임으로도 출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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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피구왕 통키'가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피구가 아닌 일종의 배틀처럼 진행되는 전투방식의 스포츠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며, 더욱이 등장 캐릭터 하나하나가 나름의 필살기를 보유한 독특한 능력의 소유자들이었다는 점도 인기몰이의 요소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통키의 주특기인 '불꽃슛'은 여러 가지 형태로 패러디(이를테면 '불꽃싸대기' 라던지.. )되어 어른이나 애 할것없이 누구나 입에 달고다니는 기현상을 보일 정도였지요.
어쨌거나 '피구왕 통키'가 이렇게 화제가 될 무렵, 한국 영화계의 음지 한켠에서는 인기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에 대한 욕망을 뿌리치지 못한 용자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1993년 여름, 드디어 사고를 치고 말았는데 [피구왕 통키]의 실사판이 원저작권자와는 일체의 상의없이 무단으로 제작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맙니다. 하아~
이 실사판 [불꽃슛 통키]는 또 하나의 무판권 실사판 [북두의 권]과 더불어 한국 실사영화계의 대표적인 괴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서 [피구왕 통키]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가볍게 ← 버튼을 누르시면 그나마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벗어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알고 싶으시다고요? 훗. 그럼 [불꽃슛 통키]를 살펴보도록 하죠. 우선 스토리 먼저..
[불꽃슛 통키]는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를 기본 베이스로 해서 통키의 태동국민학교 전학부터 상아국민학교의 에이스, 타이거와 대결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두 남자가 달밤에 1:1 피구 대결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요, 라이벌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끝장을 보자며 피구공을 서로에게 던지고 그 중 한쪽이 회심의 불꽃슛을 작렬시키자 쓰러진 한쪽은 '내가 졌소~' 하며 원통해 합니다.
장면이 전환되어 어느날 엄마손을 붙잡고 시골의 태동초등학교에 전학온 통키는 선수용 피구공을 들고다닌 다는 이유로 같은 학교 피구부 선배에게 공을 압수당하고 분노에 사무쳐 이를 갈던 통키는 선배들과의 대결에서도 패배해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며 친구인 맹태와 산속에 들어가 특훈을 하던 중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피구 특훈용 장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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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실력을 쌓은 통키는 피구부 사천왕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피구부에 입단하게 되는데요, 어느날 상아초등학교 피구부 주장 타이거와 대면하게 된 통키는 이상하리만큼 적대적인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그의 시합 제의를 태동초등학교 피구부 쫄다구 자격으로 받아들였다가 주장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습니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도내 1위 상아초교와의 시합을 하게 된 태동초교는 몇 명 되지도 않는 피구부원 가운데서 선발 시험을 보는게 되는데 테스트 도중 통키는 자신의 현란한(?) 묘기를 선보이다가 친구인 맹태와 부딪치는 바람에 탈락합니다. 맹태에게 비난을 퍼붓던 통키는 맹태에게 외나무 다리에서의 1:1 대결을 신청하게되고 이 시합에서 패배 직전에 몰린 통키의 얍삽한 공격에 맹태가 추락해 다리가 부러지고 그 대신 통키가 보결로 다시 선발의 자격을 꿰찹니다. (헐~ 사악한 통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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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자신이 한짓에 괴로워 하며 나홀로 특훈을 계속하던 통키는 왠 괴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영화의 처음에서 통키 아버지의 불꽃슛에 나동그라진 바로 그 사나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괴인은 자신들이 못이룬 꿈의 대결을 아들들의 대결에서 이루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앞세워 통키에게 모든 비장의 기술을 전수시켜 줍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갖춰진 통키. 과연 태동초교와 상아의 대결은 누구의 승리로 끝날 것인지? (안봐도 DVD 아니겠나효)
뭐 내용을 저렇게 써 놓으니 그럴 듯 하지만 사실 영화 자체는 상당히 뒤죽박죽입니다. 아무리 아이들을 타켓으로 만들었다지만 초점이 없는 스토리 하며 원작 캐릭터와의 싱크로는 1g도 염두해 주지 않는 무성의한 연출 등 도저히 장점을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런 작품 되겠습니다. 일단 영화에서 상당히 거슬리는 점들을 열거해보면
① 통키가 주인공이 아니라 악당처럼 숭악하다는 점.
여기서의 주인공 통키는 애니메이션과는 달리(원래 원작에서도 좀 건방지긴 했습니다만) 정말 찌질함의 극치를 달리는 캐릭터입니다. 이기적이고 냉혹하며 말을 죽어라 안듣고 능글맞기까지 한 아역 캐릭터 사상 최악의 극악무도한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학교 지각은 밥먹듯이 하며 숙제 안해오는 건 기본. 그나마 선생님이 벌로 화장실 청소를 시켜도 연습 핑계로 땡땡이. 지맘에 안들면 선배들에게 반말을 찍찍 갈기다가도 필요할땐 바로 비굴모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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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싱글맘 생활을 청산하고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엄마의 맞선을 대놓고 반대하며, 꽤나 신사적이고 정중한 타이거를 아무 이유없이 적대적이고 까칠하게 대하는 점이나 특히 갓 전학온 자신을 사심없이 대해준 맹태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이녀석이 주인공인지 악의 대마왕인지 싶을 정도로 선악의 캐릭터가 모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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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무리하게 따라한 원작의 묘기
피구라고는 하지만 실상 경기나 연습 내용 자체는 아크로바틱한 서커스에 가깝습니다. 뭐 원작 자체가 황당무계한 불꽃슛이니 총알슛이니 도끼날슛 같은 필살기를 남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왜 볼을 받아내면서 불필요한 텀블링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면서 받아내는 것인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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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불꽃슛을 던지면 불덩어리가 날아가고, 총알슛을 던지면 총알이, 도끼날슛을 던지면 도끼날이 날아가는 (피구하다 죽었다던 통키 아버지가 이해되는군요. ) 원초적 표현법도 쌈마이 실사영화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지요. 차라리 그 부분은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는게 나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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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슛을 던질때는 무슨 지들이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왜 하늘을 저만치 솟아올라 던지는 것일까요? 또 발로 공을 받는 피구시합은 어느나라 규정인지?
③ 설정상의 캐릭터와 실제 배우 나이의 미스매치
② 에서처럼 아크로바틱한 묘기가 자주 등장해서 일까요? 태동초등학교 피구부 사천왕 및 상아초등학교의 장도끼는 설정상 '초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 아이가 둘은 있을법한 학부형들이 이 배역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른들 틈에 초딩 몇 명이 낑겨서 피구시합을 하는 꼴사나운 광경이 펼쳐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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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배우들은 엄청 진지하게 연기한다는 거... 그렇게 진지하게 하늘을 날아 슛을 날리거나 현란한 텀블링을 하는 와중에 보이는 와이어의 압박은 도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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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열거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당장 한국인 이름이 나통키라는 것 부터가 아스트랄하지만 머리색을 일부러 빨갛게 물들이느라 더 어색해진 것 하며, 타이거의 노랑머리는 완전 조폭 수준.
그나마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이라면 전문 성우들이 목소리를 맡아 더빙을 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SBS 더빙판의 오리지널 캐스팅은 아니었지만 통키 역의 지미애나 권총탄 역의 강수진 같은 성우들의 연기는 그나마 안습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한다고나 할까요.
무술감독 및 연기자 출신으로서 1984년 한국 무협영화 속 영웅담의 전형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주었던 최기풍 감독은 [반달가면], [슈퍼 홍길동 8] 등 아동 영화의 기획을 맡거나 전영록 주연의 쌈마이 람보 아류작 [독불장군] 등을 감독하는 등 전반적인 한국영화 침체기에 휩쓸려 그저 그런 영화들을 양산하다가 [불꽃슛 통키]을 만든지 2년뒤인 1995년 김유정 원작의 [소낙비]를 끝으로 연출을 접고 맙니다.
[불꽃슛 통키]를 보고 난 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 영화에는 한가지 놀라운 반전이 자리잡고 있었는데요, 바로 주인공 통키 역을 맡은 아역 배우가 여자아이었다는 것! 이미림이라는 이 배우는 아마도 체조선수 지망생 중 하나를 데려다 썼을 것이라고 추정되는데요, 어찌된 영문인지 [불꽃슛 통키] 이후에는 어떤 영화에도 출연한 사실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출연했을 터인데 괜히 이 작품 때문에 트라우마라도 겪고 있지는 않을런지 심각하게 걱정됩니다.
이제는 뭐 다 지난 과거의 일입니다만 기왕 무판권을 낼거 꼭 이렇게 만들어야만 했을까요? 아이디어도 참신함도 전무한 도작에 불과했던 이 안타까운 현실이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 [피구왕 통키]의 캐릭터 및 저작권은 ⓒ SHOGAKUKAN / TX.에 있습니다.
* [불꽃슛 통키]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영음사/ 대경 DVD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피구왕 통키(ⓒ SHOGAKUKAN / TX. All rights reserved.),피구왕 통키 게임(ⓒ SunSof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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